한국만큼은 아니지만 미국 정가도 최근 시끄러웠다. 말 많았던 메디케어(Medicare) 법안이 상원을 통과한 것이다. 메디케어는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사회의료보장제도. 이번에 법안이 통과되면서 처방약으로 지원이 확대됐다. 지금까지 메디케어 대상 환자들은 의료비 지원은 받았지만 처방약은 직접 지불해야 했다.메디케어 법안은 단순한 사회의료보장제도 개정처럼 보이지만 한발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잘 짜여진 정치 드라마를 떠오르게 한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라크전쟁으로 타격을 입은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이 메디케어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그럴듯한 명분, 그 아래에 깔린 치밀한 계산이 자못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메디케어 법안 자체만 놓고 보면 사실 특별한 논쟁거리가 없는 듯하다. 제도 자체가 약간 복잡할 뿐이다. 새로운 메디케어제도는 오는 2006년부터 실시된다. 매달 35달러를 내면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약을 구입할 때 최고 2,200달러까지 약값의 75%를 지원받을 수 있다. 약값이 2,200달러 이상 3,600달러 미만이면 환자가 100%를 내야 한다. 만약 3,600달러가 넘으면 다시 메디케어에서 약값의 95%를 지원한다. 여기까지 보면 메디케어 법안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왜 그렇게 논쟁을 벌였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메디케어 법안의 속을 들어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메디케어 법안을 둘러싼 한편의 정치 드라마가 펼쳐진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단연 공화당이다. 공화당이 메디케어 법안을 추진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법안 통과 과정에서 공화당의 기막힌 전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메디케어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전유물이었다. 진보적 성향의 민주당이 국민건강을 앞세워 메디케어 강화를 주장해 왔다. 보수성향의 공화당은 주로 끌려가는 입장이었다. 그런 공화당이 오히려 메디케어를 들고 나와 민주당에 회심의 일격을 가한 것이다.메디케어 법안에는 민주당의 입을 막으면서 보수성향의 공화당 지지층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묘안이 숨어 있다. 새 메디케어 법안은 정부의 역할을 대폭 축소시킨다. 민간보험회사와 제약회사가 막대한 권한을 가져가게 된다. 엄청난 정부 지원금도 흘러들어간다. 메디케어 혜택을 확대하면서 자신의 지지기반인 민간회사에 슬며시 선물을 안겨준 것이다. 민주당은 메디케어 강화를 주장해 왔지만 정부의 역할을 꾸준히 강조했다. 메디케어가 공익 프로그램인 이상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건강이 걸린 문제를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기업에 맡기면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메디케어 법안이 민간회사에 지나친 권한을 준다는 관점에서 반대를 했지만 외견상 메디케어 강화를 반대한 모양이 됐다. 결국 공화당의 절묘한 전략에 민주당이 말려들어간 것이다.메디케어 법안 통과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곳은 민간보험회사와 제약회사다. 미국 정부는 향후 10년 동안 4,000억달러를 메디케어에 지원한다. 메디케어의 운영을 사실상 민간보험회사들이 하기 때문에 지원금은 고스란히 민간회사로 들어가게 된다.메디케어 대상자들의 혜택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몸이 약한 노인들은 당연히 큰 혜택을 볼 수 있다. 건강한 노인들은 오히려 손해다. 매달 들어가는 35달러와 개인 부담 비용 250달러 등을 고려하면 연간 처방약으로 810달러 이상 써야 이익이다. 메디케어 지원을 받는 과정도 까다로워진다. 메디케어 대상자들은 민간회사들이 제공하는 수많은 프로그램 중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골라야 한다. 프로그램에 따라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약이 지원되지 않을 수도 있다.메디케어 법안은 민생과 정치가 교묘하게 맞물려 있다. 그 결과 불완전하다. 그렇지만 미국은퇴자협회(AARP)의 주장처럼 “완전하지는 않지만 개혁을 위한 첫걸음”인 것은 확실하다. 국민들에게 온전히 혜택이 돌아가는 제도가 자리잡으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