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장이 되던 1997년, 54세의 김승유 행장은 시중은행장 중 최연소였다. 불과 6년이 지난 2003년, 이제 그는 가장 연배가 높다. 은행장들의 평균연령이 낮아진 것만큼이나 금융업에는 그동안 경천동지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하나은행 역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당시 ‘후발 소형 은행’에 지나지 않았던 하나은행이 네손가락 안에 드는 주류은행이 될지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김승유 행장은 이 같은 고속성장을 일군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의 CEO’로 떠오른 것으로 해석된다.하나은행이 리딩뱅크 대열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거듭된 합병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중요한 합병의 고비마다 김행장이 버티고 있었다.또한 김행장은 가장 최근의 합병인 서울은행 인수건에서 통합 직후 몰아닥쳤던 첫 위기인 SK글로벌 사태를 맞아 채권단 수장으로 이를 원만하게 넘김으로써 결정적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해외채권단 우대 관행에 인정사정없이 일침을 가한 것이 김행장의 치솟는 인기에 날개를 달아주었다.최근 한 월간지에서는 김행장의 리더십을 ‘성실과 끈기를 기반으로 솔선수범하며 말보다는 행동을 강력히 요구하는’ 스타일로 분류한 적이 있다. 상업적 마인드가 두드러졌던 하나은행의 최연소 행장으로, 경쟁은행보다 빨리 PBㆍ신탁부문을 키우는 등 혁신적 요소들을 나름대로 적잖게 갖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튀는 행동이나 화려한 언변의 이미지는 김행장과 거리가 있다.예를 들어 김행장은 인사파괴와 같은 파격적 방법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서울은행과의 외형통합을 마치자마자 하나은행이 맞닥뜨린 과제는 내부통합과 인력의 질 높이기이며, 이를 위해서는 외부에서 왔거나 내부에서 왔거나 능력 있으면 키우는 열린 조직이 돼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그저 젊은 사람이나 외국에서 일한 사람을 윗자리에 앉힌다고 해서 직원들이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직원들에게 경영진의 진심이 전달되지 못하면 피해의식이 생기고 혁신에 반발을 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여성인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다면 덜컥 발령부터 낼 게 아니라 보육사업을 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예전에 도미니크 바튼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가 김행장을 두고 “일방적 업무 지시 없이 직원 스스로 동기부여를 가지도록 유도하는 특별한 경영기법을 가졌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모다. 이런 면은 과거 합병 전 하나은행 시절에 김행장이 “만약 행장인 내가 대출 압력을 넣는다고 해도 아래 직원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거침없이 ‘들이받는’ 문화가 우리 은행에 만들어져 있다”고 자주 자랑하곤 했던 것에서도 드러난다.‘김승유 = 하나은행’으로 인식될 정도로 김행장은 하나은행 성장의 산증인이다. 지난 71년 한국투자금융에 입사한 이래 지금까지 20년 넘게 한국투자금융과 하나은행에서만 일했다. 그 세월 동안 98년 6월 충청은행, 99년 1월 보람은행, 2002년 12월 서울은행 등 하나은행이 합병을 통해 성장하는 것을 주도했다. 또한 세계적 금융그룹 알리안츠를 전략적 투자사로 유치하기도 했다.하지만 합병이 매번 성공한 것은 아니다. 2000년 한미은행과 합병을 목적으로 오래 ‘연애’를 했으나 결국 파경을 맞았고, 제일은행 인수전에서도 쓴잔을 마셨다. 이런 과정 끝에 정부로부터 서울은행 인수제의를 받은 후에도 처음에는 일사천리로 성사되는 것 같았으나 중간에 끼어든 론스타로 인해 위기를 맞기도 했다.이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하나은행의 인수합병사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심지어 김행장은 서울은행과의 합병 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우리 경영진은 인수합병을 일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최근 중국 칭다오은행의 경영권을 인수해 중국 영업 기반을 마련했고, ‘종합금융네트워크그룹’으로 변신한다는 계획에 따라 앞으로 증권사, 손해보험사 등의 인수를 염두에 두고 있다.또한 하나은행측의 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LG카드 인수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최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김행장이 “LG카드 인수계획 없다”고 못박자 모 기자가 “만약 내년에도 LG카드가 정상화되지 못한다면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에는 상당히 맛있는 먹잇감이 되는 거 아니냐”고 유도성 질문을 했다. 그러자 김행장은 “먹어보지 않아서 맛은 모르겠다”며 좌중을 웃겨 대답을 피하는 재치를 발휘했다. 하나은행이 워낙 인수합병 경험이 많은데다 신용카드부문을 확장할 계획이 있기 때문에 LG카드를 보는 하나은행의 시선은 당분간 계속 금융계의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김행장은 <한경BUSINESS designtimesp=24528>의 ‘올해의 CEO’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로 뽑혔고 한국전문경영인학회의 ‘한국전문경영인 금융산업부문 대상’, 한국능률협회의 ‘한국의 경영자상’을 받는 등 상복이 터졌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자본의 국내 은행 인수가 봇물을 이루며 금융계의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요즘, 김행장과 하나은행의 질주는 더욱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지는 듯하다.<약력 designtimesp=24532>1943년 서울 출생. 61년 경기고, 65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65년 한일은행 입행. 71년 미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졸업. 71년 한국투자금융 입사. 76년~89년 증권부장, 영업부장, 상무이사, 전무이사. 91년 전환 하나은행 전무이사. 97년 하나은행장. 2002년 서울은행 합병 하나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