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고민거리는 한결같습니다. 1년 열두달 언제나 ‘과연 현대여성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합니다.”서경배 태평양 대표이사 사장(40)의 고민 속에는 그의 경영철학이 담겨 있다. 주고객인 여성의 관점에서 사고하며 소비자의 ‘아름다움과 건강’에 대한 기쁨과 즐거움을 끊임없이 탐구한다.이 같은 철저한 ‘고객 관점’의 경영이 바로 국내 화장품업계의 리딩기업 태평양을 만든 원동력이다. 지난해 1조575억원의 매출을 올린 태평양은 올해 사회 전반의 불황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순조로운 성과를 보였다.서사장은 IMF 환란 직전인 97년에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해가며 그는 태평양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야겠다는 결심을 굳건히 다지게 됐다. 1945년 설립 이래 한국 화장품업계 1위의 자리를 지켜왔지만, 한국에서만의 1등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 것.“90년대 들어 태평양은 계열사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해 왔습니다. 91년 태평양증권 매각을 시작으로 95년 태평양 돌핀스 프로야구단, 96년 태평양 패션, 97년 농구단, 98년 한국태양잉크, 태평양정보기술, 99년 태평양생명보험 등을 매각했습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한가지인 핵심역량에 집중할 수 있는 사업 체질로 거듭난 것입니다. 수익성 중심의 가치경영은 글로벌시장으로 뻗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보유한 세계 속의 스트롱 브랜드 기업(Strong Brand Company)이 되기 위한 태평양의 노력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90년대 초 프랑스와 중국에 각각 설립했던 현지공장은 최근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프랑스 시장에서는 향수 ‘롤리타렘피카’가 선전하고 있습니다. 97년 4월 출시 후 8개월 만에 1%에 가까운 시장점유율로 프랑스 향수 시장에 자리잡았습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프랑스 여성 향수 시장에서 2.6%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며 4위를 차지했습니다.”롤리타렘피카는 세계 권위의 향수협회(FiFi)가 선정하는 ‘최우수 여성 향수상’ ‘최우수 남성 향수상’을 수차례 수상했다. 화장품과 향수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있는 프랑스 현지에서의 성공은, 글로벌 기업으로의 발판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중국어 문화권에서는 라네즈 브랜드 등이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94년 말 중국 선양에 만든 법인은 매년 꾸준한 성장을 지속해가며 현재 중국 동북시장에서 시장점유율 4~5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지난 2001년 중국 상하이에 설립한 법인은 상하이, 베이징 지역의 주요 백화점뿐만 아니라 기타 주요 거점도시의 백화점으로도 활발히 진출하고 있습니다.”또 연내에 중국 30여개 백화점 매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2006년까지는 200여개 매장에서 라네즈 브랜드를 판매해 라네즈를 아시아의 대표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갖고 있다.“중국에서도 특히 홍콩과 상하이의 매출성과가 높습니다. 중국 패션의 창이며 리딩 도시인 이들 지역에서 태평양 화장품이 잘 팔린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다른 도시로의 확산 가능성이 높다는 방증이죠. 향후 수출국을 다각화할 겁니다.”지난해 태평양은 6,000만달러(약 720억원)의 해외매출을 올렸으며 올해는 6,5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에는 1억달러까지 끌어올려 현재 6%대인 해외 매출비중을 내년에는 8~10%로 신장할 계획이다.서사장이 늘 강조하는 CEO, 리더의 덕목이 있다. 직원 조회시간이나 간부회의 등에서 3가지 덕목을 역설한다.“CEO는 ‘선견능력’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도래할지 예측할 수 있는 CEO가 기업의 바람직한 수장입니다. 또 ‘결단력’도 보유해야 합니다.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미봉책으로 나둘 수 없는, 판단을 내려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마지막 덕목은 ‘국제감각’입니다.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브랜드 없이는 기업의 생존여부가 불투명합니다.”국제감각을 중시하며, 실제로 미국 코넬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는 등 국제사회의 경험도 보유한 서사장. 그러나 그 역시 개성상인의 후예다. 서사장에게 태평양 창업주인 고 서성환 회장의 ‘개성상인 정신’이 어떤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을까.“저의 경영관은 선친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개성상인은 ‘신용’을 중시합니다. 이 같은 ‘신용’은 선진국과 중진국을 가름하는 기준이죠. 선진국과 중진국은 신용사회인지 아닌지의 여부에 따라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부지런하고 성실한 것도 개성상인의 특징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서사장이 출근하는 시간은 오전 8시~8시30분. 주말은 가족과 보내려고 노력하지만 한달에 10~15일 정도의 출장을 주로 주말을 이용해 다닌다.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일을 더 많이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리딩업체로서 책임감을 지니며 한국 화장품의 기술발전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상품의 안전성과 품질관리자료를 협회를 통해 공유하고 있습니다. 모든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생겨야 화장품산업이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책임감에 대한 그의 가치관은 기업의 대사회적 책무에 대한 설명에도 직결됐다. 평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직원들에게도 거듭 강조한다.“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수익성 있게 기업을 운영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입니다. 세금이 존재하고 재정이 튼튼해야 국가가 사회에 필요한 일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태평양은 지난 7년간 세금이 매년 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전 직원은 1년에 2~3일은 사회봉사활동을 합니다.”CEO 접견실에 광개토대왕비 모형을 비치할 정도로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은 그는 경영서적과 더불어 역사서적도 많이 읽는다. 최근 읽은 책은 <경제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 designtimesp=24550>(지용희 작)다. “이순신 장군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 ‘자세’와 ‘능력’을 모두 갖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 좌절하지 않고 기회가 오면 분연히 일어날 수 있는 ‘자세’가 귀감이 됩니다. 대규모 전투인 한산대첩과 게릴라전투인 명량해전 등 각종 전투에서 다양한 전략을 출중히 구사한 ‘능력’까지 갖춘 인물이죠.” 그는 좋은 책을 만났을 때 직원들에게 나눠주며 권장한다. <경제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 designtimesp=24551>도 예외가 아니다.올해의 CEO에 세 번째 뽑힌 그의 행복관 또한 역사서에서 유래했다. <삼국사기 designtimesp=24554>의 한 구절인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가 바로 그가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 기준이 됐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것이 바로 행복하게 사는 모습 아닐까요.”<약력 designtimesp=24558>1963년 서울 출생, 81년 경성고 졸업. 85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87년 미국 코넬대학 경영대학원 졸업, 87년 (주)태평양 과장, 89년 태평양종합산업(주) 기획부장ㆍ기획이사, 90년 (주)태평양 재경본부 이사대우 본부장, 91년 태평양그룹 기획조정실장 상무, 92년 (주)태평양 생활용품사업부 전무이사, 93년 (주)태평양 사업지원본부 부사장, 94년 태평양그룹 기획조정실 사장, 97년 (주)태평양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