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중심부가 아니라 변방에 속해 있음을 알았을 때, 모든 의욕과 비전이 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열심히 일해 남부럽지 않은 성취감을 느꼈던 30대와는 다른 상황이었죠. 새롭게 출발해야 할 때가 왔으니, 어떻게든 실행에 옮겨야 했습니다.”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17년 동안 건설회사에서 일한 김인성씨(42)는 지난 2월 퇴직을 결심했다. 회사 내 의사소통 구조에서 자신이 소외돼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였다. 국내 굴지의 L건설 과장이라는 직함에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월급 외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현실은 참을 수가 없었다. 한때 경쟁사로부터 억대 연봉을 제의받을 만큼 인정받았던 것도 ‘지난 일’일 뿐이었다.서툰 창업준비, ‘수업료’ 톡톡히 치러우선 직장생활을 계속하며 새 일을 알아보기로 했다. 재취업보다 창업에 무게를 두고 업종 탐색부터 시작했다. 수학과 컴퓨터를 좋아하는 자신의 적성에다 안정적인 수익이 가능하겠다는 믿음을 더해 보습학원과 PC방을 최종 물망에 올려놓았다.“사업경험이 전혀 없으니 프랜차이즈 가맹으로 가닥을 잡았지요. 하지만 학원은 강사 경험도, 경영 경험도 없어 위험부담이 더 크다고 판단했어요. 결국 PC방을 하기로 하고 프랜차이즈 업체들을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문제는 그때부터였다. PC방 프랜차이즈업체 G사는 입지선정 등 가맹에 앞서 300만원의 가계약금을 요구했고 김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달라는 대로 지불했다. 더구나 가맹계약을 하지 않으면 반환하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계약금은 사업에 처음 뛰어든 데 대한 ‘수업료’가 되고 말았다.“10군데 정도 점포를 소개받은 게 전부였습니다. 입지나 규모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계약을 포기하고 반환을 요구했더니 그제야 딴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어 한국프랜차이즈협회에 제소를 하고 일부 금액을 반환하라는 중재까지 받았는데도 지금껏 회수를 못하고 있어요.”새 출발에 대한 대가를 누구보다 톡톡히 치른 셈이다. 더불어 직장 밖 사회가 퇴직자에게 얼마나 냉혹한지도 경험할 수 있었다.이 일로 몸과 마음이 분주하던 때, 마침 회사에서는 명예퇴직신청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퇴직금에다 1년치 연봉을 주고 전직지원 프로그램도 가동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나마 건설업계에서는 호조건이라는 판단에 미련 없이 신청을 했지만 “대상이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령과 근무연수 등에서 명퇴자대상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씨의 이름은 명퇴자명단에 포함됐다. L건설은 전체직원의 5%를 감원할 계획으로 명퇴신청을 받았지만 2%에 못미치는 인원만이 신청, 기준을 따질 형편이 못됐기 때문이다.6월 말 퇴직과 함께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한국R&C가 마련한 전직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적성검사와 교육 등은 새로운 출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김씨는 PC방 사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른 프랜차이즈를 노크하기도 했지만 시행착오를 옆에서 간접경험한 아내 강은경씨가 동의하지 않았다. 김씨 부부는 20여가지 업종을 놓고 면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안정적 생활기반 마련하려 ‘제과점’ 선택“몇 개월간 퇴직준비를 하면서 실패사례를 많이 들었습니다. 가장 접근이 쉽고 돈도 번다는 외식업이 의외로 위험부담이 높다는 것을 알았지요. 외식업은 다른 업종을 알아본 후 가장 마지막에 고려하기로 하고 탐색을 시작했습니다.”판매업, 서비스업 쪽으로 가닥을 잡던 부부는 결국 깔끔한 이미지가 강점인 제과점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선택의 배경에는 남편의 새 출발을 도우려는 아내의 배려와 장기적 안목이 숨어 있었다.“제과점은 몇 년 하다 마는 유행업종이 아니잖아요. 든든한 점포가 있으면 생활의 기반이 되고, 남편이 새롭게 창업을 하거나 재취업을 하더라도 걱정을 덜 수 있을 것 같아서요….”지난 10월14일, 김씨 부부는 드디어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 인근 아파트촌에 파리바게뜨 가맹점을 오픈했다. 청춘을 바친 회사를 떠나 홀로서기로 마음먹은 지 8개월 만에 만든 매듭이었다.기존의 제과점을 인수, 새단장한 경우라서 복잡한 창업 준비 과정은 생략할 수 있었다.이전 주인이 과도하게 진 빚을 감당하지 못해 내놓은 점포여서 큰 하자는 없었다. 길 하나 사이의 아파트 단지에 2,000여세대가 포진하고 있어 수요층도 탄탄한 편이다.실평 27평 규모의 1층 점포를 마련하는 데 2억5,000만원 정도가 들었다. 아파트를 팔아 전세로 옮기고 퇴직금에 은행대출을 동원해 창업비용을 충당했다.비용은 적지 않게 소요됐지만 출발 성적이 좋아 부부는 안심이다. 하루 평균 100만원의 매출을 올려 한달 3,000만원선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제빵사와 시간제 직원 인건비, 금융비용 등을 제외한 순익은 500만원선. 직장생활에 비해 크게 수익이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부부는 만족하고 있다.“틈나는 대로 가게 앞을 쓸어내고 매장은 최대한 깨끗하고 단정하게 꾸미려고 합니다. 아내는 고객맞이 담당, 저는 점포관리 부분을 맡아 분업화를 했지요. 다음달에는 창가 공간을 카페로 꾸며볼까 합니다. 다른 제과점에 비해 면적이 큰 만큼 실용적으로 이용해야지요.”“대기업 과장에서 제과점 사장으로의 변신이 즐겁다”는 김인성씨는 요즘 퇴직희망자를 만나면 자신의 경험을 꼭 말해준다.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프랜차이즈 본사를 조심하라”는 것.“회사를 다니면서 창업을 준비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가지에 전력할 수 없어 실수를 하기 쉽고, 나쁜 꼬임에 넘어가기도 하지요. 심사숙고 후 결정하려면 자금이 달리고, 급하게 결정하면 실패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결국 평소에 정보를 수집하면서 박람회나 부동산중개업소를 직접 뛰어다니는 게 가장 안전한 창업준비인 것 같습니다.”내년 상반기쯤 제과점이 자리를 잡으면 김씨는 다시 새로운 일을 찾아볼 계획이다. 그동안 갈고닦은 경력을 고스란히 살려낼 수 있다면 재취업도 좋다는 입장. 이는 남편의 퇴직을 계기로 13년 만에 사회로 나온 아내 강은경씨가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퇴직은 김씨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새로운 출발이 된 셈이다.김사장이 말하는 Success Key●회사생활과 창업준비를 병행해 성공할 확률은 아주 낮다. 한가지에 집중하라.●가족 의견을 존중하라. 당신의 퇴직은 가족 모두에게 새 출발 계기가 된다.●소규모 프랜차이즈, 선금 요구하는 프랜차이즈는 요주의 대상이다.●창업박람회, 주요상권 부동산중개업소에 부지런히 드나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