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4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는 디지털비디오레코더 전문기업 아이디스는 전체 매출액의 85%를 해외시장에서 거둬들이고 있다. 지난해는 ‘1,0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하는 등 벤처수출기업으로 우뚝 섰다. 오디티도 4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미국은 물론 유럽, 아시아로 수출선 다변화 전략을 펼쳐 불황의 늪을 헤쳐나가고 있다. 바이오기업인 인바이오넷은 지노믹트리와 함께 DNA칩을 이용한 사스진단용칩을 개발하는 쾌거를 이룩해 대만의 쿠오칭사와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이 칩은 사스 발원국인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과 수출계약을 추진 중이다. 이밖에도 광학부품전문 벤처기업인 해빛정보는 지난해 매출액의 10%에 불과하던 수출비중을 40%로 늘려 창사 이래 최대의 실적을 보였으며 광통신전문 벤처기업 빛과전자도 올해 200억원대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매출 중에 수출비중을 95%선까지 두고 있다.이들은 모두 대덕밸리에 소재한 기업들이다. 그야말로 첨단기술로 세계시장의 벽을 넘어선 기업들로 한국의 이름은 물론 대덕밸리의 이름을 떨친 개가를 이뤄낸 기업들이다. 주로 코스닥에 등록해 풍부한 자금력으로 안정된 기반하에 연구성과를 빛내거나 수출형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벤처기업이다. 그러나 아직 기술개발의 단계에 와 있거나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기업들이 대덕밸리 입주업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대덕밸리 입주 벤처기업의 한 연구원은 “몇몇 기업의 선전으로 국가가 부강해지는 것은 아니다”며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연구분야와 산업, 전체가 활발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대덕밸리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라고 전했다.이에 대해 대덕밸리에서 가장 성공한 벤처기업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아이디스의 김영달 사장은 “대덕이 연구단지로서의 인프라는 충분히 갖춰졌으나 산업으로서의 인프라는 미미한 것이 사실”이라고 전하면서 “연구만 하던 기업이 산업으로 성장할 때는 금융이나 마케팅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이 동시에 들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대덕밸리를 근간으로 성공한 대부분의 코스닥 등록기업들은 산업인프라가 형성돼 있는 서울이나 대도시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대덕밸리에 소재해 있지만 금융이나 마케팅 등 산업적인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산업인프라의 혜택을 못받는 연구벤처기업들이 대덕밸리에는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실례로 삼성전자와 거래를 하고 있는 A기업의 CEO는 서울과 수원을 매일 오가는 시간 때문에 연구할 시간이 없다면 수원으로 회사를 옮길 생각을 하고 있다. 또 B기업의 경우에는 제품개발 후 포장업체를 인근에서 구하지 못해 안산과 구미에 있는 공장에 하청을 주고 있어 비용과 시간이 더 든다고 전했다.마케팅 기반의 부족도 대덕밸리의 큰 문제다. 대덕밸리 벤처기업 대부분의 CEO가 공학박사출신으로 기술력은 자타가 인정하지만 그 기술을 바탕으로 마케팅을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를 모르는 CEO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마케팅 마인드의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대덕밸리에 입주한 C기업의 CEO는 “처음 시작할 때는 연구에만 정진했을 뿐 개발제품의 국내 판로개척이나 해외 마케팅 경험이 없었고, 그나마 인력도 보강하지 못했다”며 “결국 수십억원의 수업료를 내고 다른 아이템을 찾고 있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지금은 “기술 우월주의를 버리고 개발단계에서부터 마케팅을 염두에 두고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CEO는 매년 예산의 30%를 마케팅 비용으로 책정하고 있다.무엇보다도 대덕밸리의 벤처기업들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금난이다. 실제로 몇몇 대덕밸리업체들을 돌아본 결과 대부분의 기업들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000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지원으로 220여개, KAIST 박사 출신으로 30여개, 대전시의 창업보육으로 30여개 등 300여개의 업체가 러시를 이루면서 창업했다. 당시 금융기관에서 지원받았던 중기벤처창업지원자금이 3년이 지난 지금 만기가 됐거나 곧 돌아와 연구에 정진할 기업들의 신경이 곤두 서 있으며 연구자금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설상가상으로 대덕밸리를 이끌어갈 차세대 기술인을 양성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자퇴생이 석ㆍ박사과정을 포함해 1학기에만 지난해 전체와 비슷한 80명에 달하고 있어 과학한국의 미래를 암담하게 하고 있다.그러나 다행히도 올해 초부터 정부와 대전시로부터 장밋빛 청사진이 제시되면서 다시 대덕밸리가 활기를 찾고 있다. 여기에 행정수도가 충청권으로 이전하고 국내 최대의 복합형 첨단벤처단지인 대덕테크노밸리(DTV)가 조성되고 있어 다시 한 번 대덕의 분위기를 쇄신시켜 성장동력으로 발돋움할 채비를 하고 있다.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 대전시로 나뉘어 있던 대덕밸리 지원센터들이 대전시로 이관되면서 대전시첨단산업진흥재단이 발족됐고 전문가로 구성된 6개의 사업단장을 임명하면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올 연말에는 산업진흥재단을 포함해 중소기업청, 무역협회, 수출입은행 등 유관기관으로 구성된 대덕밸리기업지원협의회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이들은 대덕밸리 내에 있는 벤처기업을 지원해 스타벤처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2007년 완공예정인 DTV는 공장형 벤처단지를 조성해 연구단지인 대덕밸리를 산업단지로 이끌어갈 계획을 갖고 있다. 자금지원도 23억원까지 저금리로 하고 있으며 펀드도 조성해 벌써 7개의 벤처기업에 지원하고 있다. 첨단벤처연구단지임에도 외국연구소가 없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DTV 내에 외국연구소를 유치하며, 이를 위해 외국인학교까지 건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2000년 9월 대덕밸리 선포식 후 3년이라는 기간에 대덕밸리는 연구단지로서 국가 성장엔진으로 제몫을 다했다. 이제는 정부와 대전시의 끊임없는 지원 아래 구성원의 핵심인 벤처기업들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첨단산업생산단지로 대덕밸리를 어떻게 조성하느냐에 따라 과학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대덕밸리에는 신기술로 무장한 벤처업체가 다수 포진해 있다. 2005년 코스닥행을 목표로 하는 티에스온넷, 2차전지의 최강자 파워셀, 생산제품을 100% 일본으로 수출하는 환경기업 가이아 등은 코스닥시장에 다시 돌풍을 몰고 올 주역들로 전문가들은 손꼽고 있다.돋보기 | 대덕벨리 어제와 오늘국내 과학기술의 요람… 자금난으로 허덕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본산인 대덕연구단지는 지금부터 꼭 30년 전인 지난 1973년 ‘대덕연구단지 건설기본계획’이 확정된 이후 20여년에 걸친 대역사 끝에 충남 대덕군 유성읍 일대에 여의도 면적의 10배 크기인 총 834만평(27.8㎢)규모로 조성됐다.착공 4년 후인 78년 3월 표준연구소(현 표준과학연구원)를 시작으로 화학연구소, 기계연구원, 원자력연구소가 잇달아 들어서면서 이 일대는 연구단지로서 본격적인 모습을 갖췄다. 80년대 들어서 한국과학재단을 필두로 전자통신연구소, 에너지연구소, 인삼연초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이 입주를 마쳤고 90년대 자원연구소, 시스템공학연구소, 기초과학연구소가 문을 열어 대부분의 정부출연연구소들이 이곳으로 모여 들었다. 이때 삼성, LG, 금호, 한국타이어 등 민간기업 연구소들도 함께 입주했다.지난 92년 준공 당시 33개의 연구기관이 입주했던 대덕연구단지는 이후 ‘한국과학기술의 요람’으로 불리며 국내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 발사를 비롯해 첨단 IT, BT분야와 에너지, 정밀화학, 항공우주, 원자력 등 기초과학에서부터 첨단과학기술분야 연구개발에 이르기까지 괄목할 만한 성과들을 쏟아냈다.현재 대덕연구단지에는 총 185개 기관이 들어서 1만7,000여명의 기술인력이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석ㆍ박사 학위 소지자는 1만여명을 헤아린다.한국과학기술의 새 지평을 연 이곳은 벤처기업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과 양분이 풍부한 만큼 지난 94년부터 벤처기업들이 하나둘씩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98년 초 IMF 관리체제가 몰아닥치면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연구원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이들이 대거 창업대열에 합류하면서 대덕단지 주변에는 800여개가 넘는 벤처기업들로 넘쳐났다. 한국의 ‘실리콘밸리 드림’을 꿈꾸며 밤을 밝히고 있는 이들 덕분에 대덕연구단지는 대덕밸리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됐다.99년과 2000년을 전후해 ‘벤처사관학교’로 불리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만 무려 220여개의 벤처기업이 창업됐다. KAIST도 30여명의 교수들이 창업대열에 합류했다. 창업보육센터(TBI)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대부분의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민간연구소, 그리고 대전시까지 가세해 30여개가 활발하게 활동을 벌였다.하지만 2003년 가을 대덕밸리의 현주소는 썰렁하기 이를 데 없다. 30년간 30조원이 투자된 대덕밸리는 벤처거품이 한순간에 꺼지면서 현재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 800여개를 웃돌던 벤처기업수는 500여개로 뚝 떨어졌다. 서부개척시대 골드러시를 방불케 하던 창업열기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올해 KAIST 교수 창업은 전무한 형편이고 ETRI 창업은 단 1건에 그쳤다. 그나마 살아남은 벤처들도 마케팅과 자금력 부족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살길을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는 벤처기업들도 줄을 잇고 있다.그러나 대덕밸리인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누가 뭐래도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라고 자부하고 있는 이들은 차분하게 전열을 재정비하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과 국내 최대의 복합형 첨단벤처도시 ‘대덕테크노밸리’ 조성 등 한국경제의 성장엔진 대덕밸리가 다시 한 번 우렁찬 굉음을 토해낼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특히 현재 유성구 관평동 일대에 조성 중인 대덕테크노밸리가 오는 2007년 완공되면 전국 각지에서 1,000여개의 벤처기업들이 모여들게 된다. 국내 최초의 자족형 첨단벤처도시로 건설되고 있는 대덕테크노밸리는 종합 R&D 특구로 초일류 기술개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면서 크게 각광받을 전망이다. 아울러 대덕밸리의 30년 노하우와 인프라를 활용한 산학연 협력체제와 R&D 성과들을 이용한 활발한 활동들이 이곳에서 꽃을 피우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행정수도 이전 또한 대덕밸리 재건을 위한 큰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행정수도 인근에 자리한 대덕밸리는 정보교류 및 인적교류, 마케팅 등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데다 산업클러스터 조성과 네트워크 구성을 위한 최적의 조건들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백창현ㆍ한국경제신문 대전주재 기자 chbai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