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시중 부동자금을 증권시장으로 유도할 수 없겠느냐는 요구들이 많다. 김진표 경제부총리부터가 “그렇게 해보겠노라”고 밝혔고 내로라하는 논객들도 증권시장 같은 ‘생산적인 부분’으로 자금이 흘러들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혹시나” 하고 증권시장에 다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날 테고, 그렇게 되면 시중에 떠도는 갈 곳 없는 자금들이 의외로 활기차게 증권시장으로 흘러들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정부의 뜻을 받들어 투신협회, 은행연합회, 증권업협회 대표들이 모여 일명 ‘코리아ELF’로 불리는 상품을 전 금융권이 공동으로 판매하겠다는 실행계획을 내놓기도 했다.과연 그런 것일까. 부동산시장에 떠도는 자금을 증시로 몰아넣기만 하면 경제는 잘 돌아가는 것이고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보다 근본적으로 부동산 투기자금은 나쁜 것이고 증권 투기자금은 좋은 것일까. 불행히도 답은 “아니다”이다.오히려 또 하나의 투기 광풍을 만들어낼지도 모르고 빈부차를 더욱 확대시키며 이번에는 부동산이 아닌 주식 거품을 조장한 끝에 더욱 비참한 파국을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부동산 투기자금은 불건전하고 주식 투자자금이 깨끗한 것은 더욱 아니다. 투기적 수익을 노린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를 것이 없을뿐더러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 역시 다르지 않다.교과서적으로야 부동산 투기는 거품을 조장하며 집 없는 서민을 궁지로 몰아넣고 빈부차를 더욱 확대시키는 만악(萬惡)의 근원처럼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증권시장의 풍부한 자금은 기업들이 유상증자 여건을 호전시키고 주식발행을 통한 부동자금의 산업자금화를 가능케 하는 순기능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이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주식시장은 과냉과 과열을 청룡열차처럼 오르내리기 마련이며, 더욱 가진 자에게 유리한 게임일뿐더러 결과적으로 거품을 더욱 쉽게 만들어낸 끝에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해악을 끼칠 경우조차 허다하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이미 허다히 보아왔다.주가가 기업의 현재 수익과 장기적인 수익전망에 철저하게 의존해 있다는 것은 길게 설명할 이유가 없다. 기업의 수익전망을 벗어난 그 어떤 주가 상승도 거품일 뿐이다. 시장경제를 골격으로 하는 체제에서 가진 자의 게임에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굳이 부동산에 대해 장단점을 비긴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지금 800선을 들락거리는 주가가 항차 1000이 아니라 2000까지 오른다고 한들 평균적인 한국인이 주식으로 돈을 벌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800에서 1000까지 오르는 과정에서는 부를 축적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1500이 되고 2000까지 오르고 나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이제는 오를 만큼 올랐다고 판단하는 투자자들이 경쟁적으로 매도공세에 나서게 되고 그리되면 주가는 다시 너무도 허망하게 1500 아니 1000선으로 복귀해 내려서기 마련이다. 이때 대부분의 중산층 투자자들은 가진 돈을 모두 털리게 된다.기업들의 수익이 있고 성장가능성이 있는데 주가가 그런 과잉반응(폭락)을 보일 리가 없다는 반론이 성립됨직하다. 물론 옳은 말이다. ‘바로 그런 경우(기업의 성장)라야만’ 비로소 우리는 마음을 놓고 기업에 베팅할 수 있고 주식을 매입할 수 있을 뿐이다. 밑도 끝도 없이 시중 돈을 증시로 몰아넣는다고 해서 기업 수익전망이 좋아지고 경제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주가는 결과일 뿐 결코 동기가 될 수는 없고 더구나 정책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정부는 증권거품을 조장하는 방법으로 현실을 호도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