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MA, TDX, 사스진단용 DNA칩 등 신기술 넘쳐

21세기는 기술패권주의 시대라 불린다. 첨단기술을 갖고 있는 국가만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한 대덕밸리는 ‘과학기술의 요람’, ‘벤처산업의 메카’답게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첨단기술이 넘쳐난다. 17개의 정부출연연구소와 40여개의 민간연구소, 그리고 500여개의 벤처기업들이 탄탄한 기술력을 무기로 첨단기술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축적된 연구개발(R&D) 역량과 1만5,000여명에 달하는 우수 연구인력은 오늘의 대덕밸리를 ‘신기술의 보고’로 만든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대덕밸리에서 창출하는 첨단기술들은 산업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대덕밸리의 신기술은 ‘한강의 기적’의 바통을 이어받아 ‘대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그 영향력을 더해가고 있다.대덕밸리를 대표하는 신기술을 꼽으라고 하면 우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을 들 수 있다. 어디서든 자유롭게 휴대전화기로 통화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CDMA의 원천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CDMA는 781억원을 투입해 개발, 상용화된 기술이다. CDMA는 투자액의 657배에 달하는 51조3,000여억원의 시장 유발 효과를 창출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원천기술 중의 하나다.CDMA의 개발로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정보통신 강국의 반열에 설 수 있었다. ETRI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전전자교환기(TDX)를 비롯해 데이터 방송시스템, 차세대 홈네트워크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차세대 IT 신기술들을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또 우리나라가 ‘원자력 후진국’에서 일약 세계 6위의 ‘원자력 강국’ 대열에 들 수 있었던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 원자로’도 대덕밸리를 대표하는 신기술 중 하나다.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척박한 연구환경에서 국내 순수기술로 개발한 하나로 원자로 덕에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방사성 동위원소를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으며 더 나아가 다른 나라에 수출까지 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항공우주분야에서 있어서도 대덕밸리의 신기술은 빛을 바라고 있다. 항공우주연구원은 지난해 11월 100% 국내 순수기술로 액체추진로켓 ‘KSRⅢ’를 개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우주개발시대의 서막을 열어갈 수 있게 됐다. 이 로켓을 기반으로 오는 2005년에는 자체 위성을 실은 로켓을 국내에서 국내 기술로 만든 발사체를 이용해 발사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이밖에 기계연구원의 자기부상열차,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지능로봇 ‘아미’, 국내 첫 FDA 승인을 받은 LG생명과학의 신약 ‘팩티브’ 등이 대덕밸리에서 개발된 신기술이다. 이처럼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개발한 신기술 못지않게 2000년 이후 창업을 통해 벤처대열에 들어섰던 대덕밸리 벤처기업들의 신기술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덕밸리 벤처기업 대부분이 연구소에서 스핀오프(Spin-Offㆍ분사)돼 나온 연구원 출신 벤처기업들로 기술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대덕밸리 벤처기업 가운데 반도체 전공정 장비 전문 벤처기업 지니텍(대표 박인규)은 ‘꼬마 벤처기업’으로 다국적 기업인 네덜란드의 ASM에 기술을 수출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이 지니텍에 기술료를 지급하면서 자존심을 버린 이유는 이 회사가 보유한 기술의 파괴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보유한 기술은 플라스마 원자층 증착 및 구리 바닥채움 화학증착 등 첨단기술로 차세대 반도체 전공정 장비시장을 대체할 획기적인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또 냉각장치 전문 벤처기업인 에이팩(대표 송규섭)도 창업 5년 만에 국내 냉각장치시장의 70%를 점유할 정도로 놀라운 성장을 누리고 있다. 이 회사가 단기간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기술력 덕분이다. 컴퓨터와 노트북, 프린터 등 각종 정보통신기기의 필수부품인 냉각장치는 그동안 국산화가 이뤄지지 않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 왔다. 에이팩의 히트 파이프는 국내 3사의 전자회사는 물론 해외 유수의 전자회사에 공급되는 등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바이오분야에서도 대덕밸리의 신기술은 앞서가고 있다. 전세계를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시기에 대덕밸리 바이오 벤처기업인 인바이오넷(대표 구본탁)과 지노믹트리(대표 안성환)가 공동으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스 진단용 DNA칩’을 개발,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 제품은 대만의 쿠오칭사에 장기적으로 공급하기로 하는 등 발 빠른 제품개발과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한편 대덕밸리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신기술이 넘쳐나지만 이 기술들이 제대로 상용화되지 못해 사장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대덕밸리벤처연합회 임채환 고문은 “대덕밸리는 해외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술혁신을 통해 창출된 신기술들이 무궁무진하다”면서 “신기술들이 제대로 된 상용화 절차를 거쳐 시장에서 인정받는 좋은 제품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인터뷰 | 백종태 대덕밸리벤처연합회 회장정부가 직접 나서 벤처 자금난 해결해야“미국의 경우 벤처기업의 성패를 10년을 보고 있습니다. 일러야 5~7년 정도는 돼야 비로소 매출이 일어나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됩니다. 그런데 국내 실정은 길어야 3년 정도입니다. 원금회수 때문에 파생제품을 개발해 연명하는 것이 대부분의 대덕밸리 벤처업체가 처해 있는 현실입니다.”대덕밸리 입주업체들로 구성된 사단법인 대덕밸리벤처연합회 백종태 회장의 일성이다. 백회장은 통신기기부품을 개발하는 씨아이제이의 대표로 지난해 10월에 연합회 2대회장으로 취임했다.그는 대덕밸리 벤처업계의 시급한 현실로 자금문제를 꼽았다. 2000년 대덕밸리 선포식 후 벤처지원자금으로 창업했던 회사들이 대부분이어서 올해가 만기가 도래돼 벤처업체들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거치기간을 한번 더 연장할 경우 국부를 이루는 원천기술 등을 개발할 수 있는 기업이 상당수라고 설명했다.백회장은 “자금문제는 시장논리에 맡기지 말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문제”라며 “시장논리에 맡기다 보면 국가 성장의 원동력인 대덕밸리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백회장은 이에 대한 대안과 벤처활성화를 위해 3단계 펀드시스템을 주장하고 있다. 10년간, 창업펀드를 조성해 벤처창업을 활성화시켜야 하며, 개발된 제품을 마케팅할 수 있는 마케팅펀드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장펀드를 조성해 기업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전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은행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전했다.그는 “강남에 벤처거품이 일어났을 때 투자했던 벤처캐피털이 절반만 대덕밸리에 투자하면 그 이상의 투자수익을 거둘 수 있는데 소외돼 있어 안타깝다”면서 “머니게임을 하는 일부 서울 강남의 벤처기업들 때문에 대덕밸리의 업체들도 같은 대우를 받는 것에 분통이 터진다”고 토로했다.또 백회장은 “자금은 있는데 아이템이 없는 대기업과 자금은 부족하지만 아이템이 있는 벤처기업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정부가 해줘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외국기업들이 대덕밸리의 기술을 탐내는 이 시기에 정부가 벤처기업을 보호하지 못하면 지식 기반산업이 흔들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공계 기피, 제조업공동화, 2만달러 시대의 도래 등 실마리를 대덕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