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 줄자 재정난에 허덕여

미국 너싱홈(Nursing Homeㆍ가택간호) 비즈니스가 전환기를 맞고 있다. 미국사회가 노령화 단계로 접어들면서 눈부시게 발전할 것으로 여겨졌던 너싱홈이 비틀거리고 있다. 너싱홈은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돌봐주는 시설이다. 노인뿐만 아니라 장애인, 병원에서 치료가 끝난 환자도 한동안 머물면서 요양을 할 수 있다.미국 너싱홈 비즈니스는 여전히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시장규모가 연간 1,000억달러에 달한다. 120조원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너싱홈 숫자도 셀 수 없이 많다. 웬만한 도시에서는 어렵지 않게 너싱홈을 찾을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의료지원 프로그램인 메디케이드ㆍ메디케어의 승인을 받은 너싱홈만 1만7,000여곳이다. 올 한해 너싱홈에 머무르고 있는 미국인은 350만명. 그중 절반은 장기적으로 너싱홈에서 살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병원에서 치료를 한 후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요양을 하고 있는 환자들이다.눈에 보이는 수치만 놓고 봤을 때 너싱홈은 여전히 전망이 밝은 비즈니스다. 전국에 셀 수 없이 많은 너싱홈이 있고, 각 너싱홈은 환자들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미국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의 13%인 3,300만명이다. 오는 2030년에는 20%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잠재고객도 충분하다.그렇지만 너싱홈 비즈니스를 살펴보면 조금 다른 그림이 나온다. 거의 대부분의 너싱홈들은 재정이 부족해 운영 자체가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일부 너싱홈은 재정적인 이유로 문을 닫았다. 뉴욕 버펄로에 위치한 너싱홈인 나사렛은 지난해 25만달러의 적자를 냈다. 올해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웨스트버지니아 지역의 너싱홈들은 지난 2001년 5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너싱홈 102곳 가운데 62곳만 수익을 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너싱홈 직원 감소로 서비스질 저하 우려미국 너싱홈의 이율배반적인 상황은 수익구조 때문이다. 대부분의 너싱홈은 정부 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정부 지원이 줄어들면 곧바로 타격을 받게 된다. 너싱홈에 장기적으로 머물고 있는 환자 비용의 60~70%를 정부가 지원한다. 개인은 30~40%를 낸다. 미국 정부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너싱홈 지원을 크게 줄이면서 너싱홈들이 재정난에 허덕이게 된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얼마 전 정부 의료지원을 15% 줄이기로 결정했다. 너싱홈 지원은 5억2,000만달러가 축소된다.그 결과 캘리포니아에 있는 1,200개 너싱홈 중 상당수가 문을 닫아야 할 처지다. 다른 곳도 인력을 줄여야 할 형편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의 마틴 키치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정부 의료지원이 15% 삭감됐을 때 너싱홈의 75%가 운영에 어려움 겪게 된다. 너싱홈의 평균 순익은 2.2%가 감소한다. 키치너 교수는 “너싱홈 지출의 가장 큰 부분은 직원 임금이기 때문에 정부 지원이 줄면 감원할 수밖에 없다”며 “너싱홈 직원의 감소는 서비스 저하로 직결된다”고 지적했다.정부 지원 축소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역시 너싱홈 고객들이다. 너싱홈의 서비스가 악화되는 것은 물론 개인의 금전적 부담이 커진다. 메트라이프의 조사에 따르면 너싱홈 비용은 하루 평균 181달러, 연간 6만6,153달러다. 정부 지원이 없으면 일반 서민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일부에서는 “정부 지원 감소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 지원이 줄면 개인의 부담이 많아진다. 그 결과 정부 의료지원을 받지 않고 자신이 비용을 내던 고객까지 정부 지원을 신청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던 65세 이상의 너싱홈 거주 환자 14%가 결국 정부 의료지원을 신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정부 의료지원 제도는 개인이 의료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으면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따라서 너싱홈에 대한 정부의 지원 축소가 더 큰 재정 지출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너싱홈은 최근 새로운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너싱홈을 상대로 한 법정소송이 봇물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너싱홈의 부주의로 환자의 병이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하면서 소송비용이 큰 부담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너싱홈은 병상 1,000개당 14.5건의 클레임이 제기되고 있다. 5년 전과 비교해 두배가 늘어난 것이다. 클레임에 대한 보상은 평균 20만달러다. 지난 2001년 총 23억달러의 보상금이 지급됐다.특히 텍사스와 플로리다는 너싱홈 지출의 15%가 법정 비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텍사스에서는 지난 2001년 너싱홈이 피해자 가족에게 3억1,200만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와 화제가 됐다. 이 사건은 결국 2,000만달러에 양측이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소송은 궁극적으로 너싱홈의 책임이지만 소송비용 부담과 거액의 보상금으로 운영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너싱홈 운영상의 문제점도 노출되고 있다. 정부에서 제시하는 규정을 위반하는 너싱홈이 상당수다. 특히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설 너싱홈의 규정 위반이 심각하다. 최근 실시된 한 조사에서 사설 너싱홈의 85%가 지속적으로 규정을 어긴 것으로 나타났다. 비영리 너싱홈의 65%도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너싱홈 관련 소비자권익단체인 NCC의 디렉터 도나 렌호프씨는 “정부는 너싱홈의 질이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미국 너싱홈 비즈니스가 전반적으로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색다른 조사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P&N이 루이지애나의 210개 너싱홈을 대상으로 실사한 조사에서 지난해 평균 수익이 15.35%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액으로 1억640만달러에 달한다. 특히 2곳은 수익이 각각 72%와 57%를 기록했다. 적자는 낸 곳은 20개에 그쳤다. P&N의 조사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조사방법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P&N의 자료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한가지 눈여겨볼 점이 있다. 루이지애나가 정부의 의료지원을 가장 적게 받던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 지원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까닭에 정부 지원이 줄어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P&N의 자료는 미국 너싱홈 비즈니스가 가야 할 길을 어렴풋하게 보여주고 있다. 바로 정부 지원에 덜 의존하고 스스로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미국사회가 고령화하면서 너싱홈 수요는 점점 커지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나이를 먹으면서 고령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여전히 시장성이 있는 것이다. 너싱홈들이 지금 당장은 정부 지원 감소로 고전하고 있지만 루이지애나의 사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너싱홈은 다른 비즈니스에 비해 경쟁력이 낮았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 지원이라는 달콤한 열매에 빠져 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법정소송이 줄을 잇는 것도 그 동안 쌓여왔던 불만이 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너싱홈은 사회보장 성격이 짙다. 너싱홈을 찾는 환자들의 상당수가 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따라서 사회보험의 일종인 메디케이드ㆍ메디케어 지원을 받고 있다. 정부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하지만 너싱홈 자체적으로도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너싱홈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상의 서비스와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해야 한다. 단지 고객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운영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자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로 고객을 끌어모아야 한다. 너싱홈 비즈니스도 경쟁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평범한 시장논리가 적용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