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진출 국내기업 금융수요 충족, 현지 소매금융시장도 적극 공략

지난 10월31일,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은 잔치 분위기로 종일 술렁였다. 중국공상은행(ICBC)과 최종 본계약을 체결, 중국 칭다오국제은행 인수작업이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칭다오국제은행은 96년 제일은행과 중국공상은행이 50대50의 지분으로 설립했는데, 당시나 지금이나 중국에 있는 단 하나뿐인 한중 합자은행이다. 이번에 하나은행은 제일은행이 갖고 있던 지분 50%를 850만달러에 사들이고, 중국공상은행과 새롭게 합자계약을 체결해 독자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하나은행은 이번 인수에 야심이 크다. 칭다오국제은행을 구심점으로 내년 상반기에 선양지점을 신설하고 기존의 상하이지점도 연결해 중국 내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중국지역본부도 현지에 신설하기로 했다. 칭다오국제은행 자본금은 현재 2,000만달러. 하나은행은 올 연말까지 1,600만달러를 넣기로 한 데 이어 내년에는 1,200만달러를 더 투입해 자본을 확충할 계획이다. 예정대로 증자가 완료되면 중국 내에서 인민폐 영업을 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된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을 상대로 한 영업뿐만이 아니라 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소매금융시장까지 공략에 나서겠다는 포부다. 하나은행 전략기획부 예정욱 차장은 “칭다오국제은행은 중국 현지법인으로 뚜렷한 제약 없이 중국 내에 자체 지점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주요지역에 영업 거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처럼 내수시장에서 한계를 느끼는 국내 은행들이 중국을 필두로 아시아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국내 은행들이 중국에 진출하는 기장 큰 이유는 은행의 기존 국내 고객인 기업들이 중국으로 진출하는 숫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금융서비스 수요도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8월까지 우리나라의 교역비중을 보면 중국이 수출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일본을 앞질렀고 미국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올 상반기까지 중국에 진출한 기업은 8,000개를 넘어섰다.이처럼 중국에 진출하는 은행의 거래고객(기업)들이 늘어나고, 이에 대한 금융서비스 수요가 생겼으니 은행이 이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국내 다른 영업부문에서의 고객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선 이들이 중국 현지에서도 국내 은행과 금융거래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장 수요가 급하다. 국내 은행들이 칭다오에 집중적으로 지점을 내고 있는 것도 여기에 한국기업들의 공장 증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외환위기 이후로 수많은 국내 금융사들을 해외자본에 넘겨준 상황에서 국내 은행들이 오히려 밖으로 나가는 현상은 상징성이 크다. 더욱이 하나은행과 같이 인민폐 영업 요건을 갖춰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영업에까지 나서려는 것은 단순히 국내 기업의 중국 금융업무를 봐주는 단계를 넘어서는, 바야흐로 은행업 중국진출의 2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할 만하다.좀더 넓고 긴 안목에서 보면 중국은 제조업뿐만 아니라 전세계 금융사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시장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순차적으로 금융시장 개방 일정이 잡혀 있다. 또한 서부대개발 등 중국 내 대규모 개발사업이 예정돼 있어 금융수요가 엄청나다.국내 금융사들이 중국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 중에는 지리적이나 문화적으로 유대가 강하다는 이점을 무시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10월 말 현재 9개 국내 은행의 중국 내 점포수는 모두 17개. 형태별로는 지점 13개, 현지법인 1개, 사무소 3개인 것으로 파악된다. 앞으로 점포수 증가에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지점과 사무소 설치가 봇물 터지듯 하기 때문이다.신한은행은 지난 10월22일 중국 상하이지점을 냈다. 외환은행도 지난 10월17일 상하이지점을 열었다. 올 들어 국내 은행이 지점이나 사무소를 개설한 곳만 4군데다. 또한 외한은행은 내년에 광저우지점 개설을 준비 중이며 톈진, 다롄, 베이징, 상하이 등 기존 4개 지점과 신설지점을 연계한 지역본부도 설치할 예정이다. 국민은행과 산업은행도 추가 지점을 신설할 계획을 갖고 있다.한편 국민은행은 중국보다 동남아를 중심으로 거점을 만들고 있다. 국민은행은 아시아 지역은행으로 자리잡는다는 ‘팬 아시아’ 정책에 따라 인도네시아 6번째 규모의 은행인 BII 경영권을 확보했다. 김정태 행장은 이와 관련, “국내시장은 언젠가 포화상태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성장의 모멘텀을 해외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대만, 태국 등에서 계속 은행을 인수해 아시아지역 영업망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다른 은행들도 아시아지역에 계속 지점을 설치하고 있다. 현재 신한, 외환, 우리은행 등이 베트남 호치민과 하노이에 지점을 갖고 있으며, 조흥은행은 하노이에 합자로 조흥비자은행을 운영 중이다.이밖에도 조흥은행 인도 뭄바이지점, 외환은행 인도네시아 현지법인 등도 영업 중이다. 조흥 뭄바이지점은 96년 국내 은행 중에서는 처음으로 인도에 진출했는데, 올해 초에는 인도의 경제지 <비즈니스투데이 designtimesp=24443>가 외국계 은행 대상으로 실시한 경영실적 평가에서 아멕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바클레이즈 등 세계의 유수 은행 지점들을 제치고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국내 은행들이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무역규모가 늘고, 외자도입이 본격화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67년 외국환 전문은행인 외환은행이 문을 열었다. 이후 다른 시중은행들의 해외점포 설립이 꾸준히 이어져 그 숫자가 계속 증가하다가 외환위기를 고비로 추세가 전환됐다.하지만 한창 외국지점 붐이 일었을 때도 그 업무내용이 국내 기업의 수출입, 해외지사, 현지법인, 동포와 관련된 전통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점포운영에서는 현지 토착화가 부족했고,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대외신인도가 낮아 조달에 어려움이 있고, 투자업무 등 폭넓은 금융업무를 취급하는 외국은행에 비해 국내 은행들은 영업의 폭이 좁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이런 전례와 더불어 반도체나 IT 등과는 달리 국제경쟁력이 현저히 뒤처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금융업이 국내 시장에서도 다국적 금융사들에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시장까지 공략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적잖다.한국금융연구원 이상제 연구위원은 최근 <은행들의 중국진출을 보는 관점 designtimesp=24452>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해외점포들이 제공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의 폭과 깊이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자금조달 측면에서는 현지가 아닌 국내 은행으로부터의 차입금 의존도가 높고, 업무도 현지진출 국내 기업이나 동포 대상의 대출 및 외환거래 등에 한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진출 해외점포들은 상하이, 베이징, 톈진 지역이 주로 분포하고 있다. 영업도 주로 국내 기업의 수출입과 관련된 수출신용장 업무나 운영자금 조달 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또한 국내 금융사에 비해 자본과 기술이 모두 한발 앞서는 미국이나 유럽계 금융사들도 중국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이들과 경쟁할 능력을 갖출지가 관건이다. 그렇지 않다면 과거 런던이나 홍콩 등지에서 현지진출 국내 은행 지점들끼리 과당경쟁을 했던 사례가 재현될 우려가 높다. 이연구위원은 “외국은행들에 불리한 중국 금융시장 환경이 향후 개선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며 “이를 줄이기 위해 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한 균형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