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합한 생산기지, 다야한 거래선, 마케팅 능력이 성패좌우

‘세아상역이라는 회사를 들어보셨나요?’ 세아상역은 지난해 매출 2,700억원, 순이익 60억원을 거둔 중견기업이다. 86년 김웅기 사장이 직원 2명을 두고 의류무역업을 시작한 이후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내수 없이 OEM 수출만 전문으로 한다. 당연히 자체 브랜드는 따로 없다. 하지만 세계 의류 OEM업계에서는 강자로 통한다. 회사 관계자는 “미국 유명 브랜드 제품은 거의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제품은 니트셔츠다. 과테말라, 니카라과, 사이판, 중국 등 5개국에 8개 공장이 가동 중이다. 생산과 판매가 해외에서 이뤄지다 보니 국내 홍보나 마케팅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때문에 서울시 강남에 번듯한 사옥도 마련했지만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기업이나 다름없다.세아상역처럼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불황을 겁내지 않을 정도로 ‘짱짱한’ OEM 전문기업들이 많다. 흔히 OEM은 단순하청으로 사업이 불안정하고 수익률도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은 다변화된 거래선 및 생산기지 구축, 마케팅 역량 강화 등으로 OEM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성공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 기업의 성공가도를 쫓아가다 보면 ‘과연 OEM이 불안정한 사업방식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OEM은 기업성장의 걸림돌인가지난 5월 한세실업은 인터넷서점업계 1위 업체인 예스24를 ‘깜짝’ 인수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한세실업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는 OEM수출 전문기업으로 국내 생산·판매가 전혀 없었기에 당연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 회사를 얕보는 것은 곤란하다. 지난 80년 회사설립 이후 22년간 연속 흑자를 기록한 중견기업이다. 지난해도 3,000억원의 매출과 70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환하게 웃었다. 이는 이미 사양길로 접어든 것으로 평가받는 섬유업계에서 보기 드문 기록이다.우리가 눈여겨볼 점은 CEO인 김동녕 사장이 지난 20여년간 OEM을 고집해 왔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남들이 ‘단순하청’으로 업신여기는 OEM을 통해 가치추구를 했기에 당시로서는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김사장의 전략은 대성공했다. ‘미국인 7명 중 1명은 한세 옷을 입는다’는 광고카피를 내보낼 정도이다. 지난해 미국의 월마트 등 유명 업체에 무려 3,800만장의 옷을 팔았다.이처럼 수출전문 OEM 기업 중에는 세아상역, 한세실업 같은 알짜배기 회사들이 적잖다. 이들은 한결같이 “OEM은 기업성장의 걸림돌”이라는 일반적인 시각에 괘념치 않는다. 오히려 남들이 ‘어렵다’고 여기는 분야에서 ‘더 큰 성공’을 일궈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경영실적으로 당당하게 증명해냈다. 나이키 러닝화의 약 20% 정도를 생산하고 있는 태광실업도 돋보이는 OEM 전문기업이다. 전세계 30여개국에 신발을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알짜배기 기업이다. 지난해 3,620억원의 매출과 132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는 등 쏠쏠하게 실속을 챙겼다. 지난 74년 설립된 영원무역은 등산복, 스키복 등 스포츠의류를 수출하는 기업이다. 2000년 4,076억원(순이익 165억원), 2001년 4,839억원(순이익 245억원)을 올린 데 이어 지난해도 4,334억원(순이익 177억원) 매출을 올리며 불황을 잊은 채 질주하고 있다.이들 기업 외에도 한솔섬유, 세신어패럴, 노브랜드, 원창물산, 나라실업 등이 OEM을 주력으로 하면서도 승승장구한 기업들이다.여성 니트 및 잠옷 등을 수출하는 한솔섬유는 지난해 2,567억원의 매출과 115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여성 니트 및 원사, 원단 등을 수출하는 노브랜드도 지난해 970억원의 매출에 10억원의 이익을 냈다. 메리야스를 생산해 판매하는 원창물산은 760억원의 매출과 81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따라서 이들 기업을 통해 결코 OEM이 기업성장의 걸림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OEM 기업의 성공노하우는 뭔가그렇다면 이들 기업의 성공노하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OEM은 그동안 바이어의 횡포, 격심한 가격경쟁, 낮은 이익률 등 브랜드 판매에 비해 어려운 사업방식으로 통했다. 물론 이런 난관은 여전히 남아있다. 다만 이를 지혜롭게 극복한 기업들이 있을 뿐이다.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해 보면 이들의 성공비결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거래선과 생산기지를 다양하게 가져갔다는 점을 꼽는다. 이는 한두 거래처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낭패를 당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한세실업의 거래선은 크게 3곳이다. 우선 미국의 월마트, K마트 등 6대 메이저 디스카운트 스토어를 집중 공략했다. 이곳에서 전체매출의 45%를 올리고 있다. 디스카운트 스토어는 물량이 많고 중저가이며 납기가 길다는 특징이 있다. 대신 가격경쟁이 치열하다. 누가 임금, 관세 등이 낮은 적합한 지역을 찾느냐가 관건이다. 때문에 수출 쿼터받기에 유리하고 노동임금이 저렴한 니카라과 공장에서 이를 담당한다.JNY, AEO 등 미 전역에 체인망을 갖춘 유명 패션기업에도 납품한다.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 정도이다. 대부분 중고가로 주문내용이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빠른 납기를 원하는 게 관례다. 반면 부가가치가 높다. 노동임금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기술이 좋고 미국령인 사이판 공장에서 생산한다. 마지막으로 나이키, 리복 등 스포츠웨어가 또 다른 축이다. 여기는 베트남 공장 등이 맡고 있다.세아상역도 마찬가지다. 과테말라에 5개 공장을 둔 것을 비롯해 베트남과 중국 등지에 공장을 두고 있다. 수출관세와 쿼터 등의 특혜를 받을 수 있는 과테말라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전량 미국으로 수출된다.세아상역 관계자는 “지금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부지런히 새로운 생산기지를 물색하고 있다”며 “적합한 생산기지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따라서 거래선을 다양화하고 적합한 생산기지를 찾는 것은 OEM업체들의 성패를 가름하는 잣대나 다름없다. 특히 생산기지를 잘못 선택할 경우 자칫하면 대규모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예컨대 거액을 들여 공장을 지었는데 해당 국가의 사정이나 주요 바이어의 클레임으로 생산을 못할 경우 공장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실제로 매년 100억원대의 순이익을 올리던 A업체는 생산기지를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지난해 100억원 가량의 순손실을 기록하는 아픔을 겪었다.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디자인 및 마케팅 능력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박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OEM의 추세가 단순형이 아닌 제안형으로 바뀌고 있다”며 “결국 마케팅 능력이 매우 중요해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즉 바이어가 디자인까지 지정해주고, 단순히 생산만을 의뢰하는 삯바느질 수준의 단순 OEM은 대부분 무너졌다는 것. 반면 자체 디자인 능력을 갖춘 채 직접 원단 및 디자인을 제안해 거래물량을 확보하는 제안형 OEM업체들이 크게 성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한세실업의 경우 의류전문업체인 리미티드사에 제안해 생산한 메트로 원단이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수개월 만에 300만~400만장이 팔렸다고 한다. 한솔섬유도 개발능력을 무척 강조한다. 총직원 270여명 중 40여명을 실험실, 디자인실 등 개발부문에 배치하는 등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업계에서는 한솔섬유의 빠른 성장세가 상대적으로 강조점을 둔 개발능력덕분으로 평가한다.마지막으로 현지 정부와 좋은 관계를 만들고 현지공장도 원활하게 운용하는 일도 중요하게 여겼다. 현지 정부와의 유대관계는 필수적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수출쿼터를 배당받지 못할 경우 일이 없어 손을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성공한 기업들은 현지 정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대표적이다. 박회장은 지난 9월 판 반 카이 베트남 총리로부터 ‘베트남 친선훈장’까지 받았다. 지난 94년 호치민시 부근 동나이성에 신발회사 ‘태광비나실업’을 세워 베트남에 첫발을 내디딘 태광실업은 현재 연간 매출액 1억5,000만달러로 베트남 제2위의 수출기업으로 성장했다. 박회장은 부산~호치민간 직항로를 개설하는가 하면, 호치민시 근교에 22만달러를 투자해 유치원을 설립하는 등 지난 한해 동안 50만달러 가량을 해당지역에 쏟아부은 결과이다.현지공장에서의 노사관계도 원활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한국처럼 어려운 곳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따라서 조금만 신경을 쓰면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리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산업자원부와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국내 전체 수출건수 기준으로 OEM 비중이 29.2%다.이는 아직도 OEM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월이 흘러도 OEM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출방식인 셈이다. OEM으로 세계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기업들의 성공사례가 더욱 늘어나기를 기대해본다.돋보기 | 성공한 OEM기업 오너는맨주먹으로 세계 누빈 자수성가형성공한 OEM 기업들의 오너들은 대부분 조그마한 오퍼상으로 시작해 갑부대열에 합류한 자수성가형 인물들이다. 회사 자본금도 5억~10억원대가 주를 이뤘다. 김동녕 한세실업 사장(58)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은 엘리트. 72년 첫 사업이 실패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뒤 결국 오늘의 한세실업을 일궈냈다. 박연차 회장(58)의 경우 태광실업(자본금 5억원)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었다. 박회장은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신발사업을 시작해 갖은 고생 끝에 성공의 단맛을 본 주인공이다. 80년대 후반 중국이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물량공세에 국내 신발산업이 위기에 처하자 OEM으로 돌파구를 마련해 끝내 성공했다.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56)은 74년 친구 세명이 동업으로 무역회사를 차려 사업을 시작해 4,0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이밖에 86년 샐러리맨 생활을 접고 전문경영인이되고 싶어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김웅기 세아상역 사장, 이신재 한솔섬유 사장 등도 일찌감치 ‘사양기업은 있어도 사양산업은 없다’는 자세로 세계를 무대로 승부를 건 것이 성공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