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사상 최악 실적, 영업점별 실적할당… 은행원 주5일 근무 반납

최근 들어 은행원 A씨의 표정은 매우 어둡다. 출근하자마자 상사로부터 떨어지는 “실적 올려라”는 불호령과 방카슈랑스 시행으로 이제는 보험상품까지 팔게 됐기 때문이다. A씨는 이 정도는 직업의 특성상 참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토ㆍ일요일에도 출근해 연체된 대출을 회수하기 위해 근무하는데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은행원은 편한 직업이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한다. 경기침체와 카드ㆍ여신부실로 은행 실적이 예년보다 줄어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도 행내에서는 실적을 끌어올리라고 야단법석이다. 매일아침 ‘밝은 표정으로 고객을 대하자’고 수십번 되뇌지만, 그때뿐이라는 A씨. 그는 밝은 얼굴로 고객을 맞을 수 없어 죄송하다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은행원 A씨의 경우처럼 요즘 시중은행들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한 실적경쟁에 돌입한 지 오래다. 상반기 결산결과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의 순익이 지난해보다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하반기 들어 올해 목표액을 달성하려는 은행들의 몸부림이 극에 달하고 있다. 예금, 대출, 신탁과 같은 업무에서의 실적 끌어올리기는 기본이고 판매인이 제한된 방카슈랑스 관련 보험판매에서도 영업점별로 할당량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시중은행의 현재 모습이다.예금금리 하락으로 고객유치 힘들어시중은행들은 영업점별로 일정금액 실적을 올려야 한다. 예금, 대출, 신탁은 은행의 고유업무이므로 이 부문에서 실적을 올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카드와 가계부문의 부실이 큰 만큼 은행들은 상품판매에 신경을 쓰면서도 우량고객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다.최근에는 은행권 평균 예금금리 하한선이었던 4%대가 무너지면서 은행에 돈을 넣어둬도 물가인상분과 각종 이자비용을 제외하면 실적적인 금리는 마이너스이다. 때문에 각 은행들은 영업점별로 전결ㆍ우대금리를 적용해주며 고객유치를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그 결과는 기대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 은행원 B씨는 “예금금리가 계속 떨어지고 있어 일부 고객들은 미리 적금을 가입하고 있지만 예년에 비해 가입자는 그리 많지 않다”며 “실질적으로 고객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가입을 권유하기도 미안하다”고 말했다.올 들어 시중은행들은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신탁상품을 앞다퉈 팔았다. 특히 신탁상품 가운데 해외 뮤추얼펀드 관련 신탁상품의 경우에는 엄청난 금액이 팔렸지만 지난 9월 원화절상으로 막대한 손실이 기록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신탁상품을 판매한 은행원들은 고객의 항의로 손실분을 직접 물어주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은행원들은 기본적으로 예금금리가 너무 낮기 때문에 아무리 우대금리를 적용해준다고 해도 고객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외화대출에도 상당한 실적을 요구하는 은행이 있는가 하면 국내 경제에 큰 위험을 초래한 신용카드와 관련해서도 우량고객을 유치하라는 주문도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방카슈랑스, 보험 팔아라9월부터 본격 시작된 방카슈랑스 때문에 시중은행들의 실적경쟁은 또 하나 늘어난 셈이다. 은행별, 보험사별로 보험계약 건수가 집계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판매경쟁도 매우 치열하다. 은행 점포 내에서의 보험판매는 자격을 갖춘 사람만 전담해서 팔 수 있는 것이 현행 규정이다. 따라서 일반 창구에서 근무하는 은행원이 고객에게 보험을 판매 또는 가입권유, 설명하는 행위는 일절 금지돼 있다. 하지만 은행 관계자들에 따르면 은행별, 영업점별로 할당량이 정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방카슈랑스와 관련 없는 일반 행원들도 보험판매에 동원되고 있는 실정이다.은행원 C씨는 “일반 예금상품 같은 경우에는 만기가 보통 1년 내지 3년이라 판매에 큰 부담은 없는데 보험의 경우는 비과세혜택을 받으려면 7년 이상 장기간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가입 권유에 상당한 애를 먹는다”고 털어놓았다.은행원 D씨는 “방카슈랑스는 보험담당자가 판매를 전담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영업점별로 직원별로 할당량이 내려오고 있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보험을 팔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일부 은행 점포에서는 대출과 연계해 보험가입을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한편 방카슈랑스가 시행된 9월 한달 동안 각 은행의 보험실적을 살펴보면 국민은행이 계약건수 3만8,000건에 1,483억원의 최고 수입보험료를 거뒀고 이어 우리은행(2만400건·844억원), 하나은행(1만368건·657억원) 순으로 집계됐다.주5일 근무 아닌 주7일 근무시중은행들은 대출과 관련, 상당한 부실을 자초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이를 회수하기 위한 은행들의 움직임은 매우 분주하다. 시중은행 고위관계자 E씨에 따르면 “영업점별로 부실대출과 관련한 일정액의 할당량이 무조건 배정되고 있고 이를 회수하기 위한 작전이 토ㆍ일요일에 펼쳐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일부 은행에서는 휴일임에도 임원진이 영업점을 나눠 음식을 싸들고 순시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실적경쟁으로 주5일 근무가 아닌 주7일 근무제가 도입됐다는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국민은행은 10월1일부터 LG텔레콤과 손잡고 모바일 결제 기능이 탑재된 휴대전화서비스 ‘뱅크온’을 시장에 내놓았다. 이로써 국민은행은 모바일 결제 경쟁에서 타 은행보다 한 발 앞서게 됐다. 은행에 가지 않고 휴대전화로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뱅크온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때문에 타 은행들도 모바일 결제 기능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어 이 부문에서의 경쟁 또한 치열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국민은행에 근무하는 F씨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 도입으로 상부에서 휴대전화까지 판매하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방카슈랑스 시행으로 보험을 파는 것은 기본이고 모바일 결제 서비스 도입으로 휴대전화를 판매하고 있는 것이 은행원의 모습”이라고 말했다.3/4분기 실적도 크게 개선 안돼올 상반기에 큰 폭의 손실을 기록한 시중은행들의 3/4분기 실적 역시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의 3/4분기 결산결과는 보통 10월 말에서 11월에 발표되지만 경기침체와 신용카드 및 가계여신부문의 부실 여파로 시중은행들의 순익감소는 여전한 것으로 전해졌다.국내 최대은행인 국민은행은 방카슈랑스에서 선전했지만 9월30일 국민카드와 합병함으로써 카드부문 충당금 5,000억원을 추가로 적립했다. 따라서 3/4분기에도 적자가 예상된다. 국민은행은 4/4분기에 증시 투입자금 1조원의 차익과 특별이익 발생으로 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신용카드 관련 충당금 부담 때문에 올해는 적자 결산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태 행장은 최근 직원 조회에서 3/4분기 적자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우리은행은 상반기에 5,597억원의 순익으로 시중은행에서 최고의 순익을 기록했다. 최근 우리은행은 신용카드사 분사로 카드 부실 영향이 덜한데다 3/4분기에도 2,500억원대의 순익을 올린 것으로 드러나 올해 국내 은행권에서 1조500억원의 최대 순익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상반기에 1,517억원의 순익을 거둔 신한은행은 3/4분기 들어 영업 사정이 크게 호전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상훈 행장 또한 월례조회를 통해 SK글로벌 충당금 적립 요인으로 올해 계획한 5,500억원 손익 목표달성이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신한지주로 편입된 조흥은행은 상반기에 4,193억원의 은행권 최대 적자폭을 기록했다. 조흥은행의 3/4분기 영업도 그리 탐탁치 못한 것으로 나타났고 최동수 행장은 최근 기자간담회를 열어 적자임을 밝히기도 했다.상반기에 324억원의 순익을 기록한 한미은행은 3/4분기에 1,000억원대의 순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올해 목표였던 2,900억원에는 크게 못미치지만 1,500억원의 순익이 예상된다. 미국계 투자펀드인 론스타에 매각된 외환은행은 상반기에 1,46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3/4분기에는 이를 만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에 1,592억원의 순익을 올린 하나은행은 SK글로벌 관련 충당금 해소로 3/4분기에 1,000억원 내지 2,000억원의 순익이 예상된다. 따라서 올해 순익 목표액인 4,800억원 달성이 유력하다. 상반기에 499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제일은행은의 3/4분기 실적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이처럼 시중은행들의 3/4분기 실적은 상반기에 비해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은행들의 실적경쟁은 4/4분기에도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