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성장에 관심없다”, 지방 할인점 M&A 관심

세계 1ㆍ2위 유통기업인 월마트(미국)와 까르푸(프랑스)에 한국은 분명 녹록한 시장이 아니다. 세계적인 명성이 무색하게 한국 진출 5~7년이 되도록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다 “토착화, 현지화 전략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지 않는 한 외국계 할인점은 승산 없다”는 지적을 심심찮게 받고 있다. 경쟁기업에 비해 홍보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종종 “폐쇄적”이라는 비난도 듣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기업 모두 노사문제에 휘말리거나 관련 구설수에 올라 대내외적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그러나 두 기업은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다. 업계 순위나 외형적 성장 경쟁에 무딘 데서 한술 더 떠 ‘순위가 뭐 중요하냐’는 투다. 대신 5년 이상 내다보며 장기전을 준비하고 알토란같은 수익을 서서히 부풀리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놀라운 것은 월마트와 까르푸가 향후 5년간 한국시장에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자금 규모. 월마트는 2조원, 까르푸는 1조3,000억원의 예상 투자액을 내놓았다. 이 같은 행보는 경쟁 우위를 점한 톱3 유통업체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까르푸, 리모델링으로 한국형 할인점 변신할인점업계 4위인 까르푸는 지난 6월 부산 사상점을 폐쇄하고 업계 1위 이마트에 점포를 임대했다. 이를 계기로 업계에서는 “경영부진을 견디다 못해 마침내 손을 들었다”는 식의 평가가 기다렸다는 듯 터져나왔다.물론 까르푸의 사상점 폐쇄 결정은 경영수지 악화가 큰 이유였다. 그러나 개점 3년 만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해선 다른 해석도 있다. 박진 LG투자증권 유통담당 애널리스트는 “사업을 보는 시각이 국내 업체와는 많이 다르다.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판단된 순간 미련 없이 사업을 접는 것이나 심지어 경쟁업체에 점포를 임대하는 과감한 결정은 국내 기업 사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또 “점포폐쇄 결정은 ‘포기’의 표시가 아닌 ‘도약 기반’을 다지는 도구로 사용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27개 매장을 운영 중인 까르푸가 요즘 리모델링에 피치를 올리고 있는 것도 심상찮다. 지난해 일산점 등 3개 매장의 리모델링 작업 후 20% 이상의 매출신장을 달성한 후 올해는 부산 서면점 등 6개 매장, 내년에는 부산 해운대점 등 7개점을 손질할 계획이다. 내년 리모델링에 투자할 비용만 700억원에 달한다. 이 회사 정의헌 부장은 “외국의 할인점과 달리 국내 소비자들은 가격은 할인점 수준, 인테리어와 서비스는 백화점 수준을 원한다”고 밝히고 “매대 높이를 낮추고 상품군 배치를 바꾸는 것은 물론 바닥재, 조명 등을 교체해 한층 쾌적하고 고급스럽게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한국 진출 이후 영업경험과 고객 취향을 면밀히 분석, ‘한국에 가장 알맞은 할인점’으로 변신을 시작한 셈이다. 더불어 수익이 나지 않는 점포는 서둘러 정리하고, 승산 있는 점포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원칙도 엿볼 수 있다. 산지 직거래, 영어교실, 베이커리 강좌 등 지역친화 문화활동, PB상품 확대 등도 ‘한국형’으로의 전환 전략 가운데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2002년 말까지 1조3,000억원을 한국에 투자한 까르푸는 앞으로도 매년 5~6개의 매장을 지속적으로 개점하는 한편 향후 3~4년간 지금까지 투자한 규모와 비슷한 액수를 한국시장 다지기에 쏟을 예정이다.월마트, 점포수 2~3배 늘이고 복합화 시도까르푸가 리모델링을 통한 한국형 할인점을 표방하고 공격적인 태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월마트는 EDLP(Everyday Low Price)라는 본연의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투자는 신중하게 늘리는 모습이다.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기업 특성 때문에 최근에는 본의 아닌 구설수에 올라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경기도 여주에 준비 중인 6만평 규모의 대형 물류센터 건립시기를 당초 ‘올해 착공’에서 얼마 전 ‘속도 조절, 유동적’으로 바꾸자 언론을 통해 ‘기업하기 힘들어 한국을 떠날지도 모르는 외국기업’으로 둔갑한 것. 이세영 홍보팀장은 “마치 불안한 노사문제 때문에 투자를 재검토하는 듯이 모 일간지에 오도되는 바람에 이미지 타격이 컸다”고 밝히고 “물류센터나 투자금액 재검토는 국내 경기 등을 감안해 탄력적으로 결정하겠다는 긍정적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결코 국내 투자계획을 철회하거나 한국시장에 회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보도 내용과 오히려 반대로, 월마트는 앞으로 한국 내 투자를 대폭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 더구나 98년 진출한 이래 구체적인 투자계획과 규모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향후 5년간 2조원을 투자해 매장을 현재의 2~3배 수준인 30~45개로 늘리고 이 기간에 여주 물류센터를 완공해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다는 복안이다. 지난 5년간 8,000억원을 투자한 것에 비하면 비약적인 투자 확대 결정이 아닐 수 없다.이에 대해 월마트는 “2000년 70억원을 시작으로 매년 만족할 만한 순익을 내면서 한국시장의 성장성과 잠재력을 확인한 것”이라고 밝힌다. 그간의 정중동(靜中動)이 탐색전에 따른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공격적인 경영도 불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더불어 매장 인테리어와 상품군 배치 등에서 한국형 할인점을 벤치마킹하는 한편 여러 업종이 어우러진 복합화 매장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창고형 할인점 마크로를 인수하면서 한국에 진출한 월마트는 그동안 전세계 4,000개 점포를 가진 ‘최대의 유통기업답지 않은’ 소극적인 투자로 주목 아닌 주목을 받아왔다. “한국에서만 꼴찌를 면치 못한다” “한국 풍토를 이해하지 못해 이미 실패했다” 등 비난 섞인 지적이 쏟아졌다.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시기상조일뿐더러 월마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월마트측은 “품질과 가격에서 1등을 추구할 뿐 외형적인 규모나 순위로 경쟁할 뜻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실속 구매’가 할인점의 존재이유인 만큼 비용절감을 위해 필요 없는 지출을 줄이고 ‘언제나 좋은 가격’을 지향할 뿐이라는 것이다.특히 월마트와 까르푸는 30여개에 달하는 지방 토착형 할인점에 대한 M&A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고 있어 수년 내 유통업 판도까지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