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시티’ 등 주요 건설현장 납품… 올해 70억원 매출 목표

파워스틸 소미성 사장(27)은 지난 9월17일 아침에 느꼈던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 소사장은 이날 오전 6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간에 일산에 있는 시공현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포스코건설이 서울 건국대 부지에 시공하는 스타시티의 납품업체로 파워스틸이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품목은 국내에 첫 도입해 건설현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멀티바’. 멀티바는 철선으로 철근을 묶어 배근하는 기존 방법과 달리 공장에서 자동화된 기계가 설계에 따라 철근을 용접하는 방식으로 현장에서 설치만 하면 돼 공기 단축 효과가 있는 신공법이다.“비록 지하층에 들어갈 6,000여t의 물량이지만 날아갈 듯 기뻤습니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서 초대형 빌딩에 납품을 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잖아요.”소사장은 아담한 체격에 가냘픈 여성이지만 사업성취를 위한 열정은 대단했다. 스타시티 현장 납품을 따내기 위해 공들인 시간만 두달 남짓. 그녀는 한여름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매일 스타시티 현장을 찾았다. 처음에는 여자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현장 분위기였지만 그는 7~8월의 뙤약볕 아래에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제품의 우수성을 알렸다.“구두 굽이 닳아 한달에 한 켤레씩 새 구두를 장만했어요.” 소사장은 금녀의 벽을 허물며 소위 “거칠다”고 하는 건설현장을 개척하고 있는 맹렬 여성이다.소사장의 부모는 모두 고향인 경북 구미에서 20년 넘게 사업을 하고 있다. 부친은 보빈(전선을 감는 틀)을 생산해 전선업체에 납품하고 있고 모친은 상당한 규모의 철강유통업을 하고 있다. 사업가의 집안에서 1남2녀 중 장녀로 유복하게 태어난 소사장의 어릴 적 꿈은 패션디자이너였다. 그래서 대학도 서울여대 의류학과에 들어갔다. 밤을 새워가며 재봉틀을 돌리고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만들며 꿈을 키워갔다. 그녀는 “바느질로 손에 물집이 잡혔지만 꿈을 향해 한발짝씩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지난해 2월 교수추천으로 인터넷쇼핑몰업체인 웹넷코리아에 들어가 머천다이저(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사람) 일을 하면서 패션디자이너 꿈을 접었다.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그녀의 사업가 기질은 웹넷코리아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명품만을 취급하던 소사장은 입사 2개월 만에 매출을 10배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휴일도 없이 시장에 나가 디자인을 고르고 밤 12시까지 회사에 남아 작업했어요.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우며 일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아마도 독종이었던 것 같아요.”온라인 머천다이저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가던 소사장은 그해 10월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한달 뒤 부친의 친구가 경영하는 파워데크에 입사해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파워데크는 건축용 자재인 데크플레이트 합성바닥판을 생산하는 회사로 여성이 일하기에는 좀 벅찬 곳이다. 하지만 소사장은 남자도 버거워하는 영업을 자청했다. “입사 직후 교육기간에 시공현장을 다녀보면서 생동감 넘치는 게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어요.”소사장은 교육 중 소위 ‘노가다 현장’의 근로자들과 소주를 대작할 정도로 거침없는 적극성을 보였다. 그녀는 “건설현장을 삶의 터전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항상 다졌다”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하지만 막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건설현장에서 쓰는 용어조차 생소했다. 납품날짜를 못 지켜 현장책임자들로부터 심한 말을 들은 것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여자가 뭘 알겠어” 하는 무시하는 말투 등…. 이럴 때면 그녀는 화장실에서 엉엉 울었다. 동트기 전의 새벽현장을 찾아나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화장할 시간도 없더군요.”소사장은 한번 작심한 일은 꼭 해내고야 마는 승부욕이 있었다. 파워데크의 사장도 그녀의 성격을 알고 신출내기였지만 대기업을 담당토록 했다. 소사장은 회사의 기대에 부응했다. 굵직굵직한 건설현장의 납품권을 잇달아 따냈다.소사장은 능력을 인정받고 지난 2001년 말 부사장으로 파격 승진했다. 회사측은 이어 석달 뒤인 2002년 3월에는 파워데크의 서울영업본부를 별도법인인 파워스틸로 독립시켰다. 그리고 소사장을 대표이사에 앉혔다. 그녀는 파워데크의 부사장직도 맡고 있다. “너무 빨리 승진을 하다 보니 외부에서는 아직도 ‘소대리’를 찾아요.”소사장은 대표이사가 되자 이에 걸맞은 역할을 해냈다. 다른 건설 관련 업체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멀티바’를 낚아챘다. 오스트리아의 EVG사는 한국의 파트너를 찾기 위해 수년 전부터 많은 노력을 해왔으나 국내 건설 관련 기업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소사장은 멀티바의 사업성을 간파하고 오스트리아를 수차례 방문하며 기술이전이라는 대어를 낚은 것. 소사장은 20억원을 들여 구미에 공장을 지었다. 들여온 기계를 설치하는 데는 휴일도 없었다. 밤늦게까지 남아 순대를 야식으로 먹으며 작업했다. 약 4개월간의 설치작업을 끝내고 올 4월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연간 8만t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의 시설이다.“멀티바는 완전 자동으로 생산을 하고 현장에서는 설치만 하면 돼 공기와 인력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습니다.”소사장은 신제품이 나오자 또다시 영업현장을 뛰어다녔다. 두 손에 간식꾸러미를 들고 현장을 찾아가 멀티바의 우수성을 알렸다. 전국의 대형 건설현장은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그녀의 열정은 납품실적으로 나타났다. 분당인테리지,부산 타워베르빌 등의 주상복합빌딩에 납품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최근 서울 건국대 부지에 들어서는 스타시티의 납품업체로 선정된 것은 멀티바의 우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철저한 시공은 제2의 영업”이라고 강조하는 소사장은 새벽현장을 꼭 찾는다.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격려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파워스틸의 시공현장은 사고가 단 한차례도 나지 않았다.소사장은 야무진 꿈을 갖고 있다. 내년부터 전국에 유통조직을 갖춰 건설현장의 바닥 철근조립을 멀티바로 대체하겠다는 것.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철근을 묶는 재래방법으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다. 또 바닥에만 머물지 않고 기술개발을 통해 벽체시공도 멀티바로 대체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매출액의 5%를 연구개발비로 투입하고 있다. 올해 7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내년에는 100억원을 넘긴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영업을 위해 골프도 배웠다는 소사장은 요즘 탭댄스에 푹 빠져 있다. (02-584-2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