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들의 새로운 화폐발행 계획이 줄을 잇고 있다. 10월9일부터 미국이 20달러짜리 새로운 화폐를 유통시킨다. 2004년과 2005년에는 각각 50달러와 100달러짜리 지폐도 새롭게 도안해 발권할 계획이다. 일본과 홍콩도 새롭게 도안한 신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특히 일본은 84년 이래 20년 만에 처음으로 내년 7월부터 1만엔, 5,000엔, 1,000엔짜리 신권을 발행할 계획이어서 주목된다.올 4ㆍ4분기 이후 세계 각국들이 마치 유행처럼 새로운 지폐를 발행하는 것은 갈수록 급증하고 있는 위조지폐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전세계적으로 정교한 컴퓨터 기법을 이용한 위조지폐 발행규모는 매년 30% 이상 급증하는 추세다. 명시적 목적은 아니지만 경기부양 효과도 상당히 기대하고 있다. 새 지폐가 발행되면 현금자동지급기 교환 등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새로운 화폐발행으로 국내총생산(GDP)이 0.3~0.4% 정도 제고될 것으로 보고 있다.눈에 띄는 것은 세계 각국들이 새로운 화폐를 발행할 때 두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하나는 새로운 화폐를 발행해 기존의 화폐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 거래 단위를 축소하는 이른바 디노미네이션은 단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러 이유를 꼽을 수 있겠지만 위조지폐 발행기술이 갈수록 정교해져 기존의 화폐에 위조방지 기법을 첨가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또 최근처럼 전세계적으로 부동산 거품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 섣불리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게 날 것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참고로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이란 화폐가치에는 변동을 주지 않으면서 거래단위를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현재 달러당 네자릿수의 원화 환율을 세자릿수나 두자릿수로 변경하는 것이 해당된다.특정 국가에서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 △거래 편의 제고 △회계 기장 처리 간소화 △인플레 기대 심리 억제 △대외 위상 제고 등의 장점이 있다. 반면 △화폐 단위 변경에 따른 불안 △부동산 투기 심화 △화폐주조 비용 증가 △각종 교환비용 등 단점도 만만치 않다.우리나라는 어떤가.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위조지폐 발행건수가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내 위조지폐 발행건수는 지난해에는 95% 급증한 데 이어 새 정부가 출범한 올 상반기에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9%나 증가했다.위조지폐 증가와 함께 지하경제 규모도 커지고 있다. 추정방법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있으나 대표적 지대추구형 사회(rent-oriented society)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경쟁국에 비해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문제는 세계 각국들은 위조지폐 방지를 위해 신속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조지폐 방지를 위해 2000년과 2002년에 각각 1만원권, 5,000원권에 위조방지 요소만 보강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기존의 화폐를 대체할 새로운 화폐발행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유념해야 할 것은 현재 정책 당국의 입장처럼 새로운 화폐를 발행할 때 화폐 거래 단위를 축소하는 적극적인 방식의 원화의 디노미네이션 문제와는 별도로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최근처럼 국내 정세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일종의 화폐개혁에 해당하는 디노미네이션을 결부시킬 경우 부동산 투기 등 상당한 부작용이 예상된다. 원화의 디노미네이션은 국내 정세가 안정되고 국민의 공감대가 충분히 성숙될 때 추진해야 하는 중장기적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최근 잇따라 열린 서방선진7개국(G7) 재무장관회담과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를 계기로 신플라자 체제가 다시 오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앞으로 신플라자 체제가 도래한다면 미 달러 약세 국면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지난 10년간 달러강세를 배경으로 형성됐던 국제금융시장과 세계경제질서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플라자합의란 85년 9월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선진국 간에 달러약세를 유도키로 한 것을 말한다. 80년대 전반 세계경제는 ‘강한 달러’(strong dollar) 정책을 추진했던 레이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 간의 국제수지 불균형이 심화됐다. 특히 미국과 일본의 무역불균형이 문제가 됐다.당시 분위기는 국제수지 불균형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세계 각국들은 무역장벽과 자국의 통화가치 하락을 통해 해결할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 30년대의 경험을 토대로 본다면 이런 움직임이 가시화되면 세계경제는 대공황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제기됐다. 따라서 선진국들은 국제수지 불균형 해소와 세계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달러 약세 유도 합의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합의 이후 3년간 달러가치는 주요 통화에 대해 약 30% 떨어졌다.95년 4월 플라자합의와는 반대로 역플라자합의란 선진국 간에 달러가치를 부양하기 위한 묵시적인 합의를 의미한다. 94년 12월 멕시코 대통령이 살리나스에서 세디요로 바뀌면서 페소화 가치가 폭락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인 멕시코 페소화 가치가 폭락할 경우 달러가치도 하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심리로 95년 4월에는 엔/달러 환율이 79.8엔까지 떨어졌다. 결국 세계 제일의 중심통화인 달러가치가 폭락한다는 것은 세계경제 안정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선진국들이 중심이 돼 인위적으로 달러가치 부양에 나섰다. 그후 달러가치는 크게 상승해 미국과 세계경제 안정에 기여했다.최근 들어서는 선진국 간의 달러약세를 유도한 플라자합의가 다시 오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서 신플라자 논의가 활발하다.올 하반기 이후 세계경제가 회복세를 보임에 따라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 간의 국제수지 불균형 문제가 또 다른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80년대 전반과 다르게 미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들이 중국과의 무역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점이다. 앞으로 신플라자 체제가 다시 올 것인가 여부가 중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처럼 중국이 현 환율 수준을 고수해 선진국 요구에 버티기로 일관한다면 신플라자 체제가 태동돼 달러 약세 국면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중국이 국제적인 요구와 자국 내 풍부한 외환시장을 감안해 위안화를 평가절상할 경우 신플라자 체제는 논의 차원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앞으로 신플라자 체제가 태동될 경우 종전과 달리 국내 수출에 상당한 타격이 우려된다. 플라자 시대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는 거의 고정돼 있었기 때문에 엔화 강세로 반사이익이 컸다. 반면 신플라자 체제가 태동되면 최근처럼 아시아 국가들이 자유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엔화 강세가 되면 자국 통화도 동반 강세가 돼 반사이익이 줄어들고 경합관계가 높아진 위안화 가치는 고정돼 있어 수출 등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