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것을 생각해내고, 그 분야에 전력투구해 매달리지 않으면 일류 연구가 나올 수 없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는 학문이라고 해서 뚜렷한 주관 없이 따라 합니다만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초가을 비가 부슬부슬 뿌려댄 9월 중순 어느날, 대학본부 총장부속실에서 기자와 마주앉은 나가오 마코토 교토대 총장(정보과학ㆍ68)은 교토대가 명문대로 뿌리내린 배경을 ‘창의와 자유’라는 단어로 명쾌히 정리했다. 교토대는 일본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 12명 중 절반에 가까운 5명과 직간접으로 인연(현직교수나 동문)을 맺고 있어 노벨상에 관한 한 일본 최고의 명예를 누리는 명문대 중 명문대다. 때문에 노벨상의 뚜껑이 열리는 가을만 되면 매년 일본 언론으로부터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된다. 나가오 총장은 교토대가 개교 후 지금까지 이어온 학풍을 ‘학문과 교육의 자유 존중’으로 압축해 들려준 후 “과학강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와 학교, 가정 모두가 학생들이 어린 시절부터 자연에서 뛰놀고, 생각하고, 친해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교토대가 도쿄대와 더불어 일본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뿌리내린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교토는 일본의 문화, 전통의 중심지라는 지역적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 고유의 사고와 전통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어느 지역보다 강합니다. 자신만의 것을 생각해내고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려는 정신적 뿌리가 연구수준을 일류로 끌어올리고 교토대를 명문으로 키운 원동력이 됐다고 봅니다.일본이 수상한 과학부문의 노벨상 7회 중 무려 5회를 교토대 교수나 동문이 받았습니다. 교토대가 이공계에서 특히 빛나는 업적을 쌓도록 한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학풍도 마찬가지지만 교토대 교수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에 전력투구하는 학자가 절대 다수입니다. 학문적 분위기도 교수들이 독창적인 사고방식으로 자신만의 연구에 매달리도록 장려하고 있고요. 학문의 자유를 존중하는 이 같은 분위기가 노벨상 수상자 등 훌륭한 학자를 많이 배출한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교토대 교수들의 강한 반골정신입니다. 도쿄대가 지리적으로 유럽, 미국의 학문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는 이점을 가진 데 반해 교토대는 고유의 것을 추구한다는 대항의식이 뚜렷합니다. 짜여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것을 추구하는 반골정신이 최대자산 중 하나인 셈이지요.개교(1897년) 이후 지금까지의 학풍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교토대의 모든 것은 학문의 자유를 존중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장려하는 것이야말로 교토대의 일관된 학풍입니다. 교수들이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그렇고 연구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경우를 예로 들어봐도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기계를 이용한 언어번역을 30여년 전 젊은 시절에 생각해낸 후 이 분야 연구에 줄곧 매달렸습니다. 언어는 인간의 두뇌 메커니즘에 해당하는 것이니 문학부의 연구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간섭하거나 말리지 않았습니다. 정보기술(IT) 시대인 오늘날 언어를 빼놓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연구를 마음 놓고 추진할 수 있도록 장려한 데 대해 지금도 고맙게 느끼고 있습니다. 교토대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컴퓨터를 이용한 우편번호 판독기술을 일본 최초로 발명했다고 들었습니다(나가오 총장은 인공지능연구 등으로 일본 최고의 대가로 존경받고 있다).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일 때 일본에서도 컴퓨터가 처음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당시 ‘컴퓨터는 모든 일에 만능’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만 저는 언어와 문자를 판독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세계 최초인 미국보다 1년 늦었지만 28세였던 1964년에 연구를 완성했고 도시바에서 제품화했습니다. 일본에서는 1968년부터 우편번호제를 도입했으니 저의 연구결과가 우편번호제의 밑거름이 된 셈이지요. 오늘날 사용되는 모든 처리기계와 기술의 씨앗을 뿌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스에마쓰 지히로 교토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신의 저서 <교토 사람들의 경영 designtimesp=24327>이라는 책에서 교토 출신 기업, 기업인들의 특징으로 독창성과 반골정신이 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업인들의 경영스타일도 교토대 학풍과 무관치 않습니까.맞습니다. 지적한 그대로입니다. 교토 기업인들은 독립심, 독창성이 강하며 정부 등 외부의 도움에 기대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꿋꿋하게 일어서고 도전해가는 것이 교토 기업인들입니다. 시련에 쉽게 굴복하지 않지만 버블기에도 사업확장을 함부로 하지 않고 내실을 추구합니다. 교토대 학풍도 이런 점과 닮아있다고 생각합니다.학문의 자유와 창의성 확보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학문 분야가 있으니, 자신도 이를 공부해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토대는 다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물려받은 것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학구열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업적을 이뤄냅니다. 그래서 교토대를 일각에서는 ‘탐험대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산과 들, 강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연구에 매달리며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교수들이 교토대에는 적지 않습니다. 침팬지 연구만 해도 교토대가 세계 최고수준에 올라 있을 정도입니다.다른 학과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만 생물학과 수학이 특히 일본 최강으로 꼽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대학교수와 입시전문학원 등의 평가에서 교토대는 도쿄대를 제치고 생물, 수학에서 단연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교수진의 실력과 교육환경 등 복합적 요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교토는 조용하고 안정된 도시라 교수들이 잡념 없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산책하면서 상념에 잠기고 싶을 때도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수학과 생물학 같은 학문은 특히 연구에 몰두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교육환경이 시끄러운 외부와 차단돼 있으니 교수, 연구원들이 좋아하고 이러다 보니 훌륭한 교수와 엘리트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것 같습니다.일본의 대학 총장과 학장 등이 내린 평가(2001년 10월)에서 교토대는 연구부문에서 가장 개혁적인 대학으로 꼽혔습니다.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교토대는 수년 전부터 21세기는 어떤 시대가 될 것인가, 어떤 연구를 해야 할 것인가에 진지한 의문을 갖고 지속적으로 변화를 추구해 왔습니다. 새시대에 닥칠 어려움과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문제의식을 갖고 미리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때문에 정보, 생명과학, 유전자, 환경문제 등 21세기의 주요 이슈로 등장할 문제에 대비해 대학원 등 조직과 기구를 계속 늘려 왔습니다. 한발 앞서 개혁에 심혈을 쏟아온 것이 후한 점수를 받았다고 할까요.나가오 총장은? : 교토대를 졸업한 후 석사ㆍ박사과정을 모두 모교에서 마친 정통 교토대 출신 학자다. 일본 학계에서는 인공지능연구의 최고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전공(정보과학)에서 알 수 있듯 국가, 사회와 학교의 첨단 정보네트워크 구축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교토대에서는 도서관장을 겸임하며 최첨단 정보시스템 도입에 앞장서 왔다. 1960년대 초반부터 컴퓨터와 인공지능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우편번호 판독시스템을 일본 최초로 발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일본 총무성 우정사업처(옛 우정성)가 우편번호제 도입 결심을 굳혔으며 도시바가 일본 최초의 우편번호 판독처리 기계를 만들어냈다. 최근까지 제품개량과 기술의 진보가 꾸준히 이뤄져 왔지만 지금도 일본에서 사용 중인 기계는 모두 그의 발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