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옛말이 무색하게 태풍 ‘매미’는 한반도를 강타했다.‘매미’로 입은 피해는 지난해 ‘루사’의 3배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태풍과 호우 등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후 ‘보험을 들었다면 어땠을까’라는생각을 해 본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국내 자연재해보험 현황과 해외사례를 살펴봤다.위험관리학자 피터 드러커는 “보험과 손실통제를 통한 위험관리능력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구분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피해규모 차이는 있지만 해마다 되풀이해서 기상재해피해를 입는 국내 실정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액은 4조원 이상이다. 정확한 집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이는 지난 1998년 태풍과 호우로 인한 재산피해액 1조2,478억원을 훌쩍 넘긴 수치로, 대한민국 건국 사상 2위의 피해규모다.지구온난화 등 기상이변으로 해마다 태풍이 대형화돼 앞으로 기상재해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그동안 ‘설마 나에게 자연재해가 일어나겠느냐’며 반신반의하며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도 ‘매미’와 같은 초강력 자연재해 이후 생각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가입할 수 있는 자연재해보험은 국내에 거의 없다.국내 민영보험사 중 ‘자연재해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상품이 개발된 곳은 없다시피 하다. 단지 화재보험에 가입할 때 풍수재 특약을 맺을 수 있을 뿐이다.막상 풍수재 특약을 맺는 가입자는 많지 않다. 원승관 동부화재 부장은 “풍수재 특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고객이 적어 풍수재 특약을 적용받는 고객이 아직 많지 않다”고 말했다.농협 농작물재해보험이 유일민영보험사가 자연재해를 담보하는 보험상품 개발에 적극 뛰어들지 않고 있기도 하다. 이유는 명백하다.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매미’의 피해로 인해 보험사들이 지급해야 할 보험금은 지난해 태풍 ‘루사’의 피해로 물어준 1,300억원의 3배인 4,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실정에서 민영보험사들은 재물보험과 해상보험, 자동차보험 외에 자연재해보험까지 개발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정성훈 현대화재 과장은 “농산물재해보험의 경우 손해율이 평균 300% 난다고 조사되고 있다”며 “100원어치를 팔면 300원 손실 나는 상품을 민영보험사에서 운영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정과장은 이어 “매년 발생해 손해가 예정돼 있는 자연재해를 책임질 수 있는 보험사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또 고객이 화재보험에 가입할 때 풍수재 특약을 맺는다고 해도 자연재해로 입은 피해를 모두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택가구 등은 피해를 어느 정도 보상받을 수 있어도 화재보험 범위를 벗어난 농산물 손해는 보상받을 길이 없다. 선박보험의 경우도 주로 대형 선박 위주로 맺고 있어 소형 선박은 이 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미국에 본사를 둔 AIG손해보험의 이형구 개인보험부장은 “자연재해보험을 민영보험사에서 책임지면 경영난을 일으킬 정도로 손해율이 극심할 것”이라며 “미국의 경우 정부와 민영보험사가 풀(Pool)을 이뤄 정부기금으로 재보험을 든다”고 설명했다.이부장은 또 “미국 소재 AIG보험의 경우 재난현금보험(Disaster Cash Call Insurance)에 고객이 가입하면 사고 후 일주일 내로 현금으로 보상액이 나올 정도로 민영보험사의 자연재해보험도 발달돼 있다”며 “국내에도 이 보험의 도입여부를 검토했다”고 덧붙였다.그러나 풍수해 예방 설비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은 국내에 이 보험을 시행할 경우 위험노출도가 커서 보류 중이라는 설명이다.보험사가 안을 수 있는 ‘역선택위험’도 이 보험의 위험노출도를 높이고 있다. 가령 침수지역에 위치한 고객은 보험가입을 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은 지역에 거주하는 고객이 보험가입을 하지 않을 경우 보험사 입장에서는 불량물건만 떠안게 돼 막대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농림부, 국가재보험제 도입 추진현재 국내에서 운영되는 자연재해보험은 농협의 ‘농작물재해보험’이 유일하다. 2001년 운영되기 시작할 2001년, 주체인 농협은 인수한 농작물보험의 10%만 보유하고 나머지 90%는 재보험의 형태로 민영보험회사가 부담하도록 돼 있었다. 각 보험회사는 다시 재재보험의 형태로 세계각지의 재보험회사에 위험을 내보는 형태로 운영돼 왔다.그러나 재작년 외국사가 위험인수를 거절한 이후 지난해는 태풍피해로 430%에 달하는 손해율을 기록하자 국내 민영보험사도 농작물보험에서 물러났다. 올해부터는 부득이하게 운영주체인 농협만이 인수한 농작물보험계약 전부를 떠안게 된 것이다. 태풍 ‘매미’가 지나간 후 막대한 보험액을 지불해야 할 농협은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자연재해의 천문학적 피해규모를 감안할 때 이는 결코 바람직한 구도가 아니라는 비판이 일었다. ‘매미’가 상륙하기 전인 지난 4월 농림부에서 ‘국가재보험’ 방안을 마련하기로 하고 관련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관련법 시행 전에 ‘매미’로 농협이 된서리를 맞게 된 것이다.유지호 보험개발원 손해보험본부 화재해상보험팀장은 “대재해성으로 손실액이 막대한 자연재해보험을 민영보험에만 맡기면 감당할 수 없다”며 “정부와 공공기관이 담당하는 정책보험의 범위가 재해 외에 확대돼 자연재해까지 담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농작물재해보험 외에 최근 보험제도화가 예정되거나 논의가 진행 중인 정책보험은 어선원 및 어선재해보상보험(2004년 예정), 민간시설물자연재해보험, 양식재해보험, 농업인재해보험 등이다.또 현재 국립방재연구소에서 자연재해대책보험 도입과 관련된 연구가 진행돼 연내 입법안을 만들어 내년 중 관련부처간 협의를 거친다면 ‘자연재해대책보험’이 이르면 2005년부터 도입될 전망이다.이 보험은 태풍 등 대형 자연재해에 대비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협의를 거쳐 2005년에 시범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태풍과 폭풍ㆍ홍수ㆍ폭설ㆍ지진ㆍ가뭄ㆍ호우ㆍ해일 등 8개 자연재해에 대한 주택ㆍ비닐하우스ㆍ축사 등 시설피해에 대한 보상이 주내용.자연재해보험제도가 도입되면 정부는 현재의 예비비로 재해복구 자금을 확보하는 방식보다 안정적인 재정운영을 할 수 있다. 또 국민은 실질적인 피해액에 근접한 수준의 피해보상을 받게 된다.반면 보험 형태를 전국민 의무보험으로 할 경우 정부의 재해복구비를 국민이 보험료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반발이 있을 수 있다. 이와 달리 임의보험으로 한다면 상습피해지역 주민들만 가입하게 돼 보험료가 높아질 수 있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유지호 보험개발원 화재해상보험 팀장은 “자연재해보험을 실제 보험제도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연재해 위험을 분석, 평가해 발생가능성과 사고발생시 손해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정보력을 갖춰야 한다”며 “또 자연재해보험을 강제보험화해 보험료가 부과돼도 불만 없이 납부할 수 있는 위험분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도 필요하다”고 했다.유팀장은 이어 “정책보험은 정부의 책임하에 운영되는 것이지만 정부와 함께 민영보험사, 국민 등 모든 참여주체들이 의지로 가지고 대응한다면 이른 시간 내에 효과적인 자연재해보험제도가 국내에 정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효정 기자 jenny@kbizweek.comINTERVIEW 김재현 농협중앙회 공제보험분사 농작물보험사업단 추진팀장시범사업, 6개 작물 대상… 향후 보험대상 농작물 확대 계획“농산물재해보험은 4대보험인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다음의 정책보험입니다.”농산물재해보험의 주체인 농협중앙회의 김재현 공제보험분사 농작물보험사업단 추진팀장의 설명이다.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된 농작물재해보험은 시범사업 3년 만에 보험가입 대상면적 2만3,249ha 중 7,874ha의 과수원이 보험에 가입, 전체 면적의 33.9%가 보험에 가입된 상태.농가수로 계산하면 현재 1만6,520여가구가 가입했으며 납입한 보험료는 323억원이다. 지난해 146억원의 보험료에 비해 2.2배 성장한 추세.“가입하려는 농업인은 가입금액과 자기부담금 정도(30, 25, 20, 15%형), 재해종류를 선택하면 됩니다. 자기부담금이란 보험사고 발생시 피해금액 중 본인이 부담하는 금액입니다. 피해과수원의 지급보험금 계산시 ‘우선 차감해야 하는 금액’이죠.”가령 자기부담금 20%형에 1,000만원을 가입한 후 태풍 등 재해를 당하면 피해액에서 200만원을 뺀 800만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가입농업인의 부담을 덜기 위해 정부에서 총보험료의 63.5%를 보조한다. 농가에서는 보험료의 36.5%를 납입하도록 설계돼 있다.“보험대상 농작물은 재해보험법상으로 정해진 사과, 배, 복숭아, 포도, 감귤, 단감 등 6종류입니다. 사과와 배는 전지역의 과수원이 가입할 수 있고 나머지 작물을 시범사업지역에 소재한 과수원에서 가입할 수 있습니다. 보험기간은 발아기부터 수확기(감귤을 11월30일)까지입니다.”농협의 농산물재해보험은 해외 여러 국가의 보험 중 농작물 재배 규모가 비교적 흡사한 일본의 농작물재해보험을 벤치마킹한 것. 1973년부터 30년간 농작물재해보험을 취급한 일본에서는 농작물 외에 농업시설과 가축도 보험대상이다.“쌀을 대상으로 한 재해보험도 지난 86년부터 91년까지 연구돼 시험사업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당시 농민의 호응이 적었고 쌀 재배면적이 광범위해 국가 재정부담도 커 쌀은 부적격하다고 판단을 내린 바 있습니다. 현재 시범실시하고 있는 6개 작물에 대한 농작물재해보험이 정착되면 농작물을 확대할 계획입니다.”2001년 시행 초기에는 6개의 국내보험사와 6개의 외국보험사가 재보험사업자였지만 손실률이 크다는 이유로 모두 철수한 상태다. 농협만이 이번 태풍 ‘매미’의 보험금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농작물재해보험 도입이 오히려 보험시장의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농업정책에 대승적으로 기여하는 정책보험으로 자리잡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