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주) 회장이 돌아왔다. 하지만 최회장 앞에는 인디애나 존스가 온갖 모험을 거쳐야 보물을 찾듯 힘든 역경이 기다리고 있다. 그의 복귀는 환영받지 못했다. 서울 선린동 사옥 집무실에 단 두번 들린 뒤, 요양을 핑계삼아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여론은 부정적이다. 여기에다 그룹 총수로서 당장 해결해야 할 ‘숙제’도 적잖다. 소버린과의 관계는 ‘발등에 떨어져 있는 불’이다. 부정적인 여론도 잠재워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그는 그룹 총수로서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키워드1. 지분경쟁 대비해야- SK케미칼 지분 안정적 확보 관건최회장이 풀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는 뭘까. 선친(고 최종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그룹의 경영권을 지켜내는 일일 것이다. 가장 위협적인 것은 소버린 등 적대적 M&A 세력으로 돌변할 수 있는 투자기관의 움직임이다. 따라서 불안한 경영권에 방어벽을 쌓는 일이 급선무인 셈이다.대체로 그간 최회장의 경영복귀를 반대했던 소버린과의 관계는 향후 3가지 방향 중 하나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첫째, 최악의 시나리오로 (주총에서) 표대결이 벌어지는 것이다. 소버린은 지난 9월27일 이후부터 이사해임청구권, 임시주총 소집청구권 등의 주주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둘째, 양자가 윈윈(win-win)하는 것이다. 즉 지분만큼 이사직을 나눠 갖는 등 일정부분 공동경영을 하는 것이다. 셋째, 소버린이 지분을 매각, 차익을 챙기고 철수하는 것이다.이중 최악의 시나리오는 첫번째다. 최회장은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단 SK 내부의 분위기는 낙관론이 우세하다. “(우호지분을 동원하면) 표대결에서도 유리하다”고 그룹 관계자는 말한다.과연 그럴까. 재계 일각에서는 소버린과의 관계가 그리 녹록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지만은 않는다. 소버린의 국내 투자자문사인 라자드아시아의 오호근 회장은 기자와의 만남을 피했지만 이 회사의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아직 기존 입장(경영복귀 반대)에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최근 최회장 일가가 지난 8월 이후 SK케미칼 지분 매입에 적극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올 초만 하더라도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은 20% 미만으로 취약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최회장 친동생)과 최신원 SKC 회장(사촌형),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사촌동생) 등 형제들이 힘을 합했다. 이로 인해 SK케미칼의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총지분율은 연초 17.15%에서 최근 26.37%까지 늘어났다. 최회장도 지난 8월 말 두차례에 걸쳐 SKC 지분 73만여주를 매각, 확보한 자금을 현재까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후에도 계속 SK케미칼 지분매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SK케미칼 지분매입이 SK(주) 경영권 방어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소버린과의 지분경쟁에서 우위를 가름하는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박빙의 승부에서 SK(주) 지분 2.3%를 갖고 있는 SK케미칼의 향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왜 그럴까. 동원증권이 조사한 자료를 참고로 하면 최회장측의 SK(주) 우호지분은 44% 정도이다. 먼저 SKC&C 8.63%, SK건설 2.37%, SK케미칼 2.26%, 최회장 등 임원 0.21%, 우리사주 4.34% 등 당장 의결권이 있는 지분이 17.81%이다. 여기에다 의결권이 없는 해외파킹(SK네트웍스 보유)분 7.88%, 자사주 10.4% 등을 전환하면 36.09%이다. 아울러 국내 기관 8%는 우호지분으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다.반면 소버린의 경우 외국인 지분을 다 끌어들이면 36.84%. 여기에다 개인 19.07% 중 일부를 더하면 40% 중반 정도의 지분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박빙의 승부가 연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정헌 동원증권 연구원은 “결국 상장회사이자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낮은 SK케미칼이 소버린 등에 넘어가면 지분경쟁에서 불리해진다”며 “따라서 최회장 및 대주주 일가가 지분 매입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그러나 시중에 떠돌았던 SK C&C 주식을 SK텔레콤에 팔아 SK(주) 지분을 사들이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채권단의 분석이다. 향후 자구안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담보로 맡긴 SK C&C 주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회장 입장에서도 그룹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SK C&C 지분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SK C&C의 지분을 매각할 경우 그룹의 지배구조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하지만 SK는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면서도 둘째, 셋째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그리고 원활하게 관계를 풀기 위해서 최회장이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SK 관계자는 “소버린과의 관계가 무난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한다. 오너인 최회장이 전면에 나서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키워드2. 대내외 여론 무마해야- 구조조정 강도가 관건될 듯최회장은 그룹 경영권을 지키는 것과 더불어 회사 내외부의 부정적 여론을 무마하는 데도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사실상 최회장 구속 이후 그룹 내부에서는 최회장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적잖게 새어나왔다. 우선 SK노조는 “최회장의 경영복귀 반대”를 여전히 밝히고 있다. 아울러 최회장이 회장 취임 이후 개혁 드라이브를 걸면서 불만을 가진 임직원도 적잖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룹 관계자는 이를 “개혁 피로감”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미 골이 깊어졌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주요 계열사의 한 임원은 “(최회장이) 그룹 내에서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부족하다”며 “선친에 (경영능력이)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냈다.게다가 최회장은 전면에 복귀하든, 병원에서 요양을 하든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한다.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의 이남용 SK네트윅스 공동대책본부장은 “SK그룹은 59개에 달하는 계열사를 10여개로 줄이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그룹을 SK텔레콤 중심의 정보통신, SK(주) 중심의 에너지ㆍ화학, SK네트웍스 중심의 유통부문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대규모 감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는 임직원이 더욱 동요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최회장은 채권단에 약속한 대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도 ‘다시 한 번 뛰자’는 내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이중고를 안고 있는 셈이다.이와 함께 시중의 부정적인 여론도 무마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오너 중심의 선단식 경영, 분식회계 등으로 시중의 비난여론이 거센 만큼 각 계열사 지배구조를 이사회 중심으로 꾸리는 등 투명경영체제를 확립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키워드3. 적절한 경영복귀 시점 택해야- 손길승 회장 처벌여부가 관건최회장의 전면적인 경영복귀 시점에 대한 시중의 관심이 크다. 보석으로 풀려난 뒤 단 두번의 출근에 대한 엄청난 관심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따라서 당분간 경영전면에 나서기는 힘들어 보인다.그러나 현재 SK해운 비자금사건과 관련 검찰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만약에 손길승 회장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 최회장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SK 관계자는 “손회장이 전면에 있으면 최회장이 단지 대주주로서의 자리만 지키면 되지만, 혹시라도 손회장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어려울 정도의 법적 처벌을 받으면 대주주-전문경영인의 파트너십 경영에서 오너십의 역할이 강화되는 쪽으로 변할 것”이라고 전했다.재계 관계자들도 “손회장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최회장이 경영전면에 복귀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과연 최회장이 쌓여 있는 난제를 풀고 예전처럼 활짝 웃을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