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은 사이보스 · 야후메신저, 주식은 fn메신저 · 미스리··· 시장감시 기능에도 한몫

출근부터 퇴근까지, 하루 종일 채팅하는 채권브로커. 전화수화기를 붙잡고 통화하는 동시에 손가락은 메신저 채팅창에 글자를 입력하기 바쁘다.얼핏 봐서는 업무에는 열중하지 않고 지인들과 잡담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닌지 의아해할 수 있다. 그러나 메신저창 내용을 자세히 보면 ‘세계 장기금리 동반하락’ ‘일본 금리 상승’ 등 정보가 가득 담겨 있다. 채권 호가도 수시로 올라오며 채권 관련 뉴스와 분석으로 빽빽하다. 심지어 채권거래도 실시간으로 메신저를 통해 이뤄진다.이 채권브로커는 하루 종일 메신저를 통해 일을 하고 있었던 것. 메신저에 등록된 사람의 수가 많을수록, 리스트가 잘 정리돼 있을수록, 그리고 컴퓨터 모니터에 띄어놓은 메신저창이 많을수록 업무에 열성적인 브로커일 확률이 높을 정도다.채권거래·정보교류 메신저로실시간으로 메시지와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어 90년대 후반부터 큰 인기를 끈 메신저서비스가 금융시장의 트렌드를 변화시키고 있다. 거래는 전화로, 정보전달은 e메일이나 팩스 혹은 직접 만나서 하던 금융인들은 이제 목소리 한번 내지 않고도 업무를 신속하게 볼 수 있다.금융권 종사자 아닌 일반인들은 주로 MSN 메신저 등을 이용한다. 반면 금융권 실무자들은 각자의 영역에 따라 주로 사용하는 메신저가 따로 있다.채권업무 종사자는 야후 메신저와 대신증권 사이보스 메신저, 주식실무자는 삼성증권 fn메신저와 미스리 메신저를 이용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을 입을 모아 말했다. 이 모든 메신저를 전부 사용해 컴퓨터를 켜면 여러 개의 메신저창이 화면을 가득 메워 로그인하기에 바쁜 금융인도 물론 있다.채권브로커와 매니저, 애널리스트가 야후 메신저와 대신증권 사이보스 메신저를 주로 이용하게 된 배경을 임정근 동원증권 DS본부 트레이딩팀장을 통해 들어봤다. 임팀장은 트레이딩팀장으로 일하기 전 펀드매니저로 활동했다.임팀장은 “한 기관의 브로커가 한명의 매니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으면 다른 브로커들은 그 매니저와 통화를 할 수 없다”며 “이런 전화통화 방식을 통해서는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고 공정한 가격이 형성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또 매니저가 브로커와 1대1로 전화통화를 하면 가격부문에서 속을 가능성도 있다”며 “공정경쟁과 가격형성을 위해 여러 명의 브로커와 매니저가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했다”고 덧붙였다.그러던 중 임팀장은 99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야후 메신저가 채권거래와 정보교환에 적절하다고 판단, 야후 메신저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한 번에 여러 명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공정경쟁과 가격형성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대화방에 10명밖에 들어올 수 없었고, 한 정보를 한꺼번에 여러 사람에게 메시지로 보낼 수 없었다. 임팀장은 “야후에 메일을 보내 불편한 점의 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며 “메신저서비스가 채권업무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설명했다.김병석 야후코리아 브랜드마케팅팀 과장은 “99년 중반에 야후 메신저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현재 회원이 300만명에 달한다”며 “회원 중 채권과 주식 실무자들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김과장은 “야후 메신저가 글로벌 서비스인 까닭에 지난해 중반에는 서버가 있는 곳에서 정전사태가 일어나 1시간 동안 서비스가 중단된 적이 있다”며 “그 1시간 동안 우리나라 채권시장이 마비됐다는 약간의 과장 섞인 얘기도 들려왔을 정도”라고 덧붙였다.메신저 통한 거래, 해외에서 놀라워 해야후 메신저 이후 각종 메신저들이 서비스를 시작했고, 급기야 증권회사에서 제공하는 메신저서비스도 대거 등장했다. 임팀장은 한 브로커와 함께 각종 메신저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확인해 보던 중 대신증권 사이보스 메신저를 선택했다. 채권업무에 도움이 되는지 일주일간 사용해 보기도 했다.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입장이 가능한 사이보스 비밀방 기능은 보완유지에 도움이 됐다. 사이보스를 최종 낙찰한 그는 다수의 브로커와 매니저 등에게 사이보스 사용을 권했고, 사이보스 메신저는 단기간에 확산돼 결국 채권시장 커뮤니케이션 및 거래수단으로 자리잡았다.외환선물에서 활동했던 홍창수 리딩투자증권 대리는 “메신저가 금융업무에 본격적으로 쓰이기 전에는 선물시장과 현물시장의 정보교류는 흔치 않았다”며 “이제는 메신저 없이는 채권업무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홍대리는 이어 “해외에서도 한국 채권시장의 메신저 거래 및 정보교류가 획기적인 방식이라며 놀라워한다”고 전했다.증권부문에서는 미스리와 삼성증권 fn메신저가 많이 쓰인다. 이들 메신저서비스는 (주)이지닉스가 개발한 이지큐엔진이 기반이 됐다.김태구 이지닉스 마케팅기획팀장은 “삼성증권에 이지닉스가 개발한 이지큐엔진이 납품돼 ‘삼성증권 fn메신저’로 주식시장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며 “다른 메신저와는 달리 여러 명에게 한꺼번에 같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특징이 증권가에서 환영받았다”고 말했다.이지닉스는 삼성증권에 fn메신저의 기반 시스템을 제공한 후 같은 기술이 기반이 된 ‘미스리’라는 이름의 메신저를 보급했다. 그후 대신, 교보, 동원, 대투, SK 등의 증권사도 자체 메신저 서비스를 이지닉스에서 아웃소싱했다.메신저를 통해 가속도가 붙은 정보교류는 시장에만 도움되는 게 아니다. 시장을 감시하는 증권거래소 등에도 기여한다.남윤기 증권거래소 시장감시부 정보팀 과장은 “메신저서비스 미스리를 이용하고 있다”며 “경제ㆍ경영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정보가 메신저를 통해 전파돼 정보수집에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메신저를 타고 허위정보도 떠다니는 경우도 있어 확인작업을 거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많은 정보를 빨리 모을 수 있어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는 설명이다.메신저서비스는 정보교류와 매매에만 이용되지 않는다. 금융인의 네트워킹에도 자연스럽게 기여한다. 메신저를 통해 정보교류를 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근황을 확인할 수 있다. 하루 종일 로그인돼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모임도 자주 가질 수 있고 경조사를 서로 챙기기도 한다. 각자가 아는 업계 전문가를 대화방에 초청해 네트워크를 넓혀가기도 한다.디지털 시대에 본격 집입하면서 나타난 금융가의 신풍속도 ‘메신저 네트워킹’. 앞으로 어떤 방식의 한층 더 진화된 시스템이 금융가를 바꿔놓을지 자못 궁금하다.돋보기 사이보스 메신저 비밀방 엿보기매니저·브로커 등으로 구성… 초고속 정보교류사이보스 메신저의 비밀방은 하루에도 40~50개 이상 활황 중이다. 이중 약 40개는 채권비밀방, 나머지가 주식과 선물 비밀방이다. 방을 개설한 방장이 지정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만 채팅방에 입장할 수 있다. 방장과 연락이 된 몇 명만 초청받을 수 있는 원리. 인터넷 사이트의 일반 채팅방은 매일 다른 방이 열린다. 반면 금융인들의 사이보스 메신저 비밀방은 한 번 생겨 인원이 구성되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까지 지속된다.보통 10명을 정원으로 구성한 방의 경우 애널리스트 1~2명, 매니저 3~4명, 브로커 4~6명으로 구성돼 있다. 1개 방의 평균 인원은 10~20명선이다. 20명으로 구성된 다양한 투신사와 은행, 신탁회사 등의 매니저와 증권사 채권영업팀과 선물법인영업팀의 브로커, 각 증권사와 선물사의 애널리스트들이 그 구성원이다.방이름도 각양각색이다. 영화제목을 연상시키는 ‘채권목장의 결투’부터 ‘참나무통 맑은 채권’ ‘채권미남들’ ‘채권본부 25시’ ‘채권매니아’ 등 재치 넘치는 방이름들로 가득하다.영문아이디로 대화하는 이들 금융인은 본인을 표시하기 위해 대화 끝에 본인 소속과 이름, 전화번호를 붙인다. 예를 들면 ‘gdhong> 11시부터 미국 금리가 빠지고 있답니다. (삼선 홍길동 123-4567)’ 형태의 대화가 오가는 것. 예를 든 삼선은 삼성선물의 약자로, 대화방 구성원은 소속회사도 약자로 처리한다.찰나를 노려 수익을 얻는 이들에게는 매 1분이 귀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가는 대화도 단축어로 단결하게 표현한다. 한 채권매니저는 사이보스 메신저 비밀방에서 “3-2 100개 사라”고 브로커에게 주문했다. 이를 해석하면 2003년에 두 번째로 발행된 국채 100억원어치를 매수하라는 뜻. 채권 종사자들 사이에서 ‘1개’는 ‘1억원어치’를 뜻한다.그밖에도 ‘금일 외평 3년물 2시까지 입찰’ ‘국고 5년 랠리 지속’ 등 속보성 경제 관련 정보와 정치, 사회, 문화 등 각종 분야의 정보도 오간다. 관심 있는 분야의 정보를 구성원마다 달리 올리다 보면 각자 한 분야씩 지속적으로 맡게 된다. 1명은 외신 뉴스, 다른 1명은 국내 경제 뉴스속보, 또 다른 1명은 사건사고뉴스, 1명은 머리를 식히자는 취지에서 유머를 올리는 식이다.사이보스 메신저 비밀방에 소속된 금융인들은 출근하자마자 메신저에 접속해 퇴근할 때까지 메신저 비밀방에서 대화를 나눈다. 정보를 교류하는 동시에 매매도 하며 때로는 점심 혹은 저녁 ‘번개’도 갖는다. “점심 뭐 먹을 것이냐”고 서로 묻다가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 식사를 하러 가기도 한다.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기관이 많기 때문에 즉시 만나기도 수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