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되돌아 보면 다음 시대의 주인공인 젊은이들에게 크게 기대한 때가 있었다. 대한제국 말엽에 일제의 침략을 앞두고 「학도야학도야 젊은 학도야」라고 새로 일어난 창가를 소리 높여 불렀던것처럼.그때 그 젊은이들은 우리나라를 보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저 일제치하의 암흑기에 민족적인 명맥을 유지하고 일제와싸웠던 것이 아닌가. 오늘 우리는 자칫하면 그 시대를 잊어버리기쉽다. 그러나 세계 역사에 있어서 식민지 지배를 그처럼 거부하고줄기차게 싸우면서 국민의 정체성을 깨우치고 지탱해 온 역사는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다.그래서 나는 한일 지식인들이 모여서 동북아시아의 오늘과 내일을토의하는 어떤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일제치하의 한국은 비록 가난하고 힘이 없었다고 해도 그것은 물질면에 있어서였지 정신이나 도덕적인 면에서는 일본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고.독립자존의 지도자나 지식인이 일본에 비해 수적으로 더 많았고 그들의 국민에 대한 영향력도 지대하였다. 여기에 지금도 한국에 있어서 일본에 대한 전국민적인 비판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는 이유의일단이 있다』고 했던 것이다.이런 관점에서 해방 후 50년의 역사도 한 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우리는 과연 어느 때에 젊은이들에게 크게 기대했으며 어느 때에그러지 못했는가. 어느 때에 그들에게 기대를 걸기보다는 그들을비난하는 것을 일삼았는가. 그리고 오늘은 어떤 형편에 놓여 있는가 검토해 보자는 말이다.1968년에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제임스 레스턴이 뉴욕타임스에쓴 칼럼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때는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킹도암살됐고 대통령 후보로 등장하던 로버트 케네디도 암살당하는 어두운 시기였다. 그러한 미국에 저항해서 일어났던 젊은이들이 대통령선거에서 보수주의자였던 닉슨에 패배하자 절망을 되씹고 있었다. 이들을 향해 레스턴은 조용히 타일렀다. 1백%를 다 이루어야승리이고 그렇지 못하면 패배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동안 젊은이들의 노력에 의하여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는가. 30%를 얻어도승리다. 아직 미국 국민이 보수적이어서 1백%의 승리를 젊은이들에게 안겨주지는 못한다. 그렇다고해서 젊은이들이 절망해서는 미국의 장래는 없다.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가 밑으로부터 변할 수 있도록 지방선거에 노력을 경주해 보자고 레스턴은 실의에 가득찬 젊은이들을 격려했던 것이다.오늘 우리의 역사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감옥으로 끌려가는어두운 상황을 헤매고 있다. 이 나라는 온통 금전적 부정, 정치적대립에 휘감겨 있는 듯이 보인다. 이 캄캄한 터널을 빠져나와 햇빛을 볼 날이 언제인지 기대할 수 없다. 매일같이 그런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몸부림쳐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이런 시대에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격려를 보낼 수 있다고 하겠는가. 오늘은 젊은이들을 격려하기는 커녕 그들을 망각하고 기껏해야 비난이나 일삼는 나날이라고 할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시대는 활력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해야만 한다.그들에게 마음속으로부터 건네줄 말을 찾아야 하겠다. 그런 부정이나 대립을 규탄하는 민심이 있지 않은가. 그런 국민들도 그런 자리에만 앉으면 마찬가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것을 심판하는 국민의 양심은 살아있다고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나는 구약성서 속의 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예언자 엘리야가 세상은 다 망했다고 푸념을 했다. 그러나 신은 아니 아직 깨끗한 사람7천명이 남아있다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오늘 이 혼미스러운 상황속에서도 역시 7천명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찾아서 내일을 기약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