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 안강민 대검중수부장, 대기업총수들. 노태우비자금 드라마에 등장한 스타들이다. 그렇다면 이 비자금 드라마의 연출자는 누구일까. 대본을 써주고 연기를 지도한 무대뒤의 보이지않는 연출가는 단연 경제전문 법률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보스인 배우를 위해 법률적 지식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써주고, 배우는 이 시나리오에 따라 심문하고 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이번 노태우비자금 드라마를 계기로 경제전문법률가들에 대한 관심이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검찰은 전직대통령과 대기업총수들에 대한 사상 유례없는 뇌물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경제검사들을 총동원한 반면 전직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은 법망을 피하기 위한 예상답변을 마련하는데 경제전문 변호사들을 대거 활용했다. 수사가이드라인을 설정하던 과거 군사정권시절과는 달리 검찰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적 구성요건에 따라 사법처리한다는 단호한 의지를밝혔다. 굵직한 경제사건을 다룬 경험이 있는 검사들을 대거투입,교묘히 범법을 저지른 모든 경제사범들을 가려내겠다고 공언했다.검찰은 물증확보를 위해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등 준사정기관들의협조를 얻어 자금추적도 벌였다. 기업들도 검찰과의 인맥에 끈을대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정치적 해결보다는 법적 뒷받침을 통한대응에 골몰하였다. 특히 기업들은 그룹고문변호사를 십분 활용,검찰의 집요한 조사에 대처했다. 검찰과 기업 모두 경제전문법률가의 존재를 뚜렷하게 실감한 사건이었다.노태우 비자금 파동에서 기업변호사들은 발빠르게 대처했다. 검찰소환을 앞둔 그룹총수들에게 법률적 조언을 하는 동시에 검찰출두에 생소한 기업총수를 직접 안내하기도 했다. 검찰이 대기업총수들에게 창을 들이댔다면 기업변호사들은 방패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특히 사내자문변호사(in-house counselor)로 불리는 상근기업변호사들은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그룹내 흐름을 잘 알고 있는데다 평소 총수들에 익숙해 재무 및 법률팀원들과 호흡이 잘 맞았다.◆ 법망피하기 예상답변 마련 등 기업의 방패역국내최대 사내변호사를 두고있는 삼성그룹은 거의 외부 고문변호사들을 동원하지 않았다. 미묘한 특정사안만 외부고문변호사들에게문의하는 정도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사내상임변호사들이 자체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작용했다. 삼성그룹은 회장직속으로 법무실을, 계열사별로 법무팀을 운영하고 있다.그룹법무실에는 국내변호사 5명과 미국변호사 4명 등 모두 9명을두고 있다. 국내변호사로는 지난 13년동안 그룹법무실을 이끌어온인형무씨(사장급)를 비롯, 법무실장인 송웅순씨(전무급), 윤용근씨, 이경훈씨, 조치형씨 등 5명이다. 제1회 사시 통과후 군법무관을 거쳐 중령으로 예편한 인변호사는 지난 80년부터 삼성그룹법무실을 현재의 모습으로 끌어올리는데 산파역을 담당했다. 2년전 삼성을 떠나 외도를 했던 그는 최근 삼성법무실로 복귀했다. 송 변호사는 82년 사시에 합격하기 전 삼성에 잠시 근무한 인연으로 그룹의 법무실장을 맡고 있다. 이번 이건희 회장의 검찰출두에는 송법무실장 등 그룹상임변호사들의 법률자문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미국변호사로는 양명석씨, 김환씨, 오상환씨, 엔소니 창씨 등 4명이다. 이밖에 삼성그룹은 전자 물산 생보 건설 등 법률업무가 많은계열사별로 각각 상임변호사를 두고 있다. 삼성전자에는 26회 사시출신인 김창문 변호사를 비롯, 김광호 이재창 지재완 이용태 양승필 변호사 등 미국변호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삼성물산에는 모두미국변호사자격을 취득한 정봉진, 우종찬, 정진홍 변호사가 법적문제를 다루고 있다. 삼성생명과 삼성건설에는 27회사시 출신인 이태권변호사와 권종권 변호사가 각각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김창문 변호사는 『상임고문변호사는 단순히 법률자문을 해주는 비상임고문변호사와는 달리 기업내 업무흐름을 잘 알고있을 뿐아니라애틋한 애정을 갖고 있어 전체경영을 고려한 법률적 판단을 내리는신중함을 보인다』고 말한다.삼성그룹에 이어 가장 많은 상임변호사를 두고 있는 곳은 대우그룹이다. 대우그룹은 해외진출에 경영목표를 삼고있는 까닭에 그룹법무체제도 다른 그룹과는 상당히 다르다. 대우는 국내법무를 다루는법제실과 국제법무를 취급하는 국제법무실로 이원화돼있다. 법제실에는 대검특수부3과장 등을 역임한 석진강 변호사와 황주명 변호사등 3명을 고문변호사로 활용하고 있다. 또 법무법인으로는 석진강변호사가 소속한 우일합동법률사무소로부터 수시로 자문을 받고 있다. 반면 국제법무실은 대부분 국제업무관련 법무를 담당하고 있다. 여기에는 실장인 천성원 변호사를 비롯해 윤명환 김용균 고경호 김석조 변호사가 상근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미국변호사자격을 소지하고 있다.대우그룹이 국제법률자문부서를 따로 두고 있는 것은 그만큼 경영의 국제화로 국제법률관련 법무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경제전문법률가인 기업변호사는 해외진출과 합작을 모색하는 기업으로서는 국제경영현장의 선두에서 활약하는 「전사」로 비유된다. 기술도입에서부터 금융 마케팅 제품판매 클레임처리 등 주요기업활동에 법률자문이 항상 따르기 때문이다. 기업경영의 국제화와 비즈니스 기법의 고도화, 계약내용의 복잡화 등에 따라 경제전문변호사의조력은 이제 국제협상테이블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등장했다.◆ ‘총수 측근’ 고문변호사 활용그룹차원과는 별도로 대우증권은 최근 「함승희 파일」로 명성을높인 함승희 변호사를 고문변호사로 영입하기도 했다. 대우그룹의상임변호사로 활동해 온 김상범 변호사는 이수화학의 경영을 맡으면서 대우그룹을 떠났는데 김 변호사는 김우중 회장의 사위다.LG그룹은 2명의 상임고문변호사를 확보하고 있다. 미국변호사인 김동인 변호사가 전반적인 그룹법무를 총괄하고 있으며 검사출신인임병용 변호사가 그를 보좌하고 있다. 임 변호사는 28회 사시출신으로 학부의 경영학전공을 살려 공인회계사의 자격도 구비하고 있다.임병용 변호사는 『 LG그룹의 법무실은 삼성과는 개념이 다릅니다.기업은 효율성과 비용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LG 그룹의 법무실임무는 국내외변호사의 전문분야를 파악해서 언제 어디서든지 활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는 일입니다. 모든 전문분야의 변호사를 상임변호사로 활용할 경우 비용이 막대할 뿐아니라 업무가 수시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어서 변호사 개인에게도 도움이 되지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호남정유 원유유출사건 때 직접 달려가 현장을 살펴보고 그룹내 환경법률 담당직원들과 법적문제를 숙의하는한편 국내외 3~4명밖에 안되는 환경전문변호사를 찾아내 미묘한 법적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고 밝혔다.현대그룹도 LG 그룹과 비슷한 법률자문체제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그룹차원의 법무실이 따로 없다. 계열사인 현대자동차에만 86년부터 하종선변호사를 상임변호사로 두고 있다. 하변호사는 국내변호사자격 뿐아니라 미국변호사자격도 보유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사안이 생길 때마다 김&장법률사무소나 고등법원판사였던 이종순 변호사에게 법률자문을 의뢰하고 있다.기아그룹도 사내상임변호사로 김희진 변호사 한명을 두고 있다. 미국변호사인 김 변호사는 기아경제연구소 소속으로 기업의 법무 뿐아니라 경제경영 등 전반적인 업무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상대출신으로 공인회계사인 김변호사는 대학에서도 경영학을 강의하기도 한경력을 바탕으로 국내 기업변호사로서는 다소 독특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현재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통상부문 전문가로서통상산업부의 법률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기아그룹은 국내법률문제에 대해서는 하죽봉 고문변호사에 의지하고 있다. 석유공사 상임변호사를 역임한 하변호사는 최근 기아자동차에 대한 언론의 인수합병설 보도에 대한 법률적 자문을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이밖에도 기업내에서 상임으로 활동중인 기업변호사는 한국IBM의이진우 변호사와 아시아나항공의 김미형 변호사다. 이변호사는 서울법대 출신으로 26회 사시를 패스한 후 줄곧 기업변호사업무에 종사해오고 있다. 얼마전까지도 기업의 상근변호사로 활동했던 변호사로는 회명합동법률사무소의 진영 변호사와 주완 변호사를 들 수있다. 서울법대 17회 사시출신의 진변호사는 87년부터 최근 회명합동법률사무소의 대표를 맡기까지 LG그룹의 상임고문변호사로 활동해왔다. 25회 사시출신의 주변호사는 대우그룹의 상임고문변호사를 거쳐 얼마전까지 유원건설의 상임변호사로 근무해왔다. 현재는회명합동법률사무소 소속이다.사내상임변호사를 두지 않고 있는 대기업들은 고문변호사를 두거나소위 로펌(law firm)으로 불리는 법무법인과 고문계약을 맺고 사내외의 크고작은 법률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복수이상의 변호사나 법무법인과 고문계약을 맺기도 한다. 법무법인마다 주특기가 다른데다 일이 생겼을 때 유능한 법무법인이 상대편에 서지않도록 하기위해서다.그룹규모에 비해 비교적 많은 비상임고문변호사를 고용하고 있는기업은 한보그룹이다. 사법연수원장과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뒤 수서사건 때 정태수 총회장의 변호를 맡아 활약했던 허정훈변호사 등 12명을 비상임고문변호사로 활용하고 있다. 이번 비자금사건으로 인한 검찰소환에는 대검중수부장을 지낸 김경회 변호사가정회장에게 법률적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효성그룹이 태평양법률사무소와 자문계약을 맺고 주요 법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을 비롯, 한일 고합 선경그룹도 비상임고문변호사를 두고 법률자문을 구하고 있다.비상임고문변호사를 선정할 때 총수의 사위나 매제 등 측근중 측근을 고문변호사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한진그룹과 두산그룹이 대표적이다. 한진그룹은 조중훈 회장의 사위인 이태희변호사(한미합동법률사무소)를 비상임고문변호사로 삼고있다. 조회장은 지난10일 검찰 소환조사에 응하기 직전까지 입원해 있던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이변호사와 함께 검찰조사에 대비해 모범답안을 작성했다는 후문이다. 이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하버드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판사 출신으로 지난 76년부터 대한항공 법무담당 이사로 한진그룹의 해운이나 항공 관계일을 처리하면서 해외법무를 특화했다.두산그룹도 박용곤회장의 매제인 김세권 변호사를 비상임고문변호사로 두고있다. 박 회장도 노씨 비자금과 관련해 검찰소환을 앞두고 매제인 김변호사의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고등고시 8회 출신인김변호사는 지난 87년 서울 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끝으로 변호사로개업했다.◆ 기업별 경제변호사 양성 프로그램 구비대기업중에서는 유일하게 총수가 법조인인 경우도 있다. 검사출신인 동양그룹의 현재현회장이 바로 그다. 현회장은 서울대 법대 3학년 때 사법고시 12회에 합격했다.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하던 지난76년 이양구 전회장의 딸인 이혜경씨와 결혼한 그는 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취임하면서 법조인 대신 경영자의 길을 택했다. 그는 이회장이 작고한 후 맏사위로서 경영대권을 물려받았다. 동양그룹은비상임고문변호사로는 신창동변호사를 두고 있다. 신변호사는 지난50년 제 1회 고등고시 사법과 출신으로 80년 서울 형사지방법원장을 끝으로 변호사로 개업했다.동양그룹 계열사인 동양투자금융의 조왕하사장은 국제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그는 현회장의 경기고 서울대 법대 4년 직속 후배로 미국 UCLA의 법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변호사생활을 한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현회장을 직접 만난 것은 지난 89년 동양베네피트생명 미국측 부사장으로 참여하면서부터이다. 그 뒤 조사장은 아예 동양으로 적을 옮겨 그룹종합조정실장 동양증권부사장등을 거쳐 지난 8월 동양투금 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그룹 안에서 기업인수합병의 귀재로 통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아멕스 카드의국내영업권을 인수하기도 했다. 금융전업 그룹을 꿈꾸며 금융계열사를 꾸준히 늘리고 있는 동양그룹이 검사총수에 변호사 사장이란재계에선 보기 드문 라인업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최근 기업들은 해외경영 등 기업활동영역이 확대되면서 기업변호사들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전문기업변호사 양성을 위해 자체 프로그램도 마련해 놓고 있다. 삼성과 LG그룹은 일정요건을 갖춘 사원들을 선발, 2년반 정도 장학금을 대주고 미국변호사자격 취득과정을 이수토록하고 있다.변호사들도 단순한 민형사소송사건에서 탈피, 고도의 경제지식을요하는 다양한 법무요구에 응하고 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회장(고문 이회창 전총리)을 맡고있는 진영변호사는 『기업변호사는 얼마전까지만해도 10명이 채 안됐습니다. 최근들어서는 외국변호사를 비롯 변호사들이 대거 기업관련분야에 뛰어들고있습니다. 특히 기업변호사집단이랄 수 있는 법무법인도 60개를 넘었습니다』 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