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표상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했다는 것 만큼 걱정스럽게, 그리고 정부당국이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적자라는 어휘 자체가 낭비 또는 무분별하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한 집안을 꾸려나가는 데에도 소득 보다 지출이 많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경상수지 적자의 원인이 무엇이건 적자 그 자체가 나쁘게 느껴진다.최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몇나라만 대충 훑어 보아도 그 배경에 경상수지 적자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멕시코는1994년 12월에 화폐개혁을 단행하였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국내 총생산의 8%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가 주요 원인이었다. 헝가리와 같은 개발도상국들도 막대한 적자폭으로 해외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선진국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작년 상반기의 달러화 급락은 미국이 지고있는 천문학적 숫자의 해외채무가 주범으로 거론된다. 호주가 1995년에 국내총생산의 5%가넘는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자 경제전문가들은 이를 심각한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그러면 각국은 한결같이 경상수지 흑자를 지향해야 하는가. 가장초보적인 산술법칙으로도 모든 나라가 동시에 흑자를 기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비록 가능하다고 하여도 흑자정책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경상수지적자, 사업투자 등 경우 나쁜것 아니다기업회계와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국제수지는 차변과 대변이 일치하여야 한다. 경상수지 적자는 들어오는 재화와 용역이 나가는 것보다 많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 차이에 대하여 무언가 대가를 지급하여야 한다. 따라서 경상수지 적자는 같은 규모의 해외 차입 또는 외국인 투자 즉 자본수지 흑자로 메워 진다. 또는 중앙은행 보유 외환고의 감소로 충당된다.여기에서 혼란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 사람들은 경상수지 적자는외국의 수입제한 정책으로 수출이 어렵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일본의 수입장벽때문이라고 믿고싶어 하는 것이 한 예이다.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만은 않다. 경상수지는 재화의 교역만을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수송이나 금융등의 서비스도 포함한다. 외국인 투자가에 대한 이자 또는 배당금 지급, 해외투자에서 발생하는소득, 해외근로자의 송금 즉 민간이전과 원조 등의 정부이전도 여기에 들어간다.따라서 현재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라 할지라도 과거에 해외차입이 많았을 경우에는 그에 따른 지급이자로 당기 경상수지는적자가 될 수 있다. 경상수지는 한 나라의 순 해외금융 포지션으로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즉 경상수지 적자는 한 나라의 대외 부채를 뜻하는 것이다.세계전체를 하나로 보면 원칙적으로 경상수지와 자본수지는 균형상태이어야 한다. 지구는 아직 목성이나 다른 외계인과 교역관계를갖고 있지 않으므로 폐쇄경제이다. 따라서 세계전체의 저축은 투자와 일치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국가가 동시에 흑자를 또는동시에 적자를 기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실제로는 세계 전체국가의 1994년도 경상수지 합계는 통계상의 오차로 인하여 1천1백30억달러 적자로 나타남)경상수지 적자에 대한 우려는 경제가 상대적으로 폐쇄적이었던 구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오늘날은 국가간의 자본이동이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지므로 경상수지 적자상태를 장기적으로 끌고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는것이 현명한지 여부는 다른 문제이다. 이를 판단하기 위하여는 국내의 저축 및 투자수준, 해외차입금이 생산적 투자에 사용되는지여부등 제반 경제 상황의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경상수지 규모 그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흑자폭이 크다해서 국력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들이 국내보다 해외에 투자하는 것이 수익성이 좋다고 판단한 결과일 수도 있다. 국내 투자기회가 부족하여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이라면 국내 성장에 있어서 그만큼 손실을 입게된다. 일본의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는 국내의 과잉저축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경제개발의 특정 단계에서는 경상수지상 적자를 일으키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일 수도 있다. 후진국은 선진국에 비해 축적자본이 빈약하다. 따라서 자본투자 수익률은 높을 수 밖에 없다. 당연히 해외로부터 자본을 도입하게 된다.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는 것이다.개발도상국이 경제성장에 소요되는 재원을 해외차입으로 충당하는사례는 흔하게 볼 수 있다. 1970년대에 경상수지 적자를 국내 총생산의 5%이상으로 유지하였던 한국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경제발전에 따라 경제가 순채무상태에서 순채권상태로 성장해가는과정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것이 이른바 국제수지 단계론이다.후진국은 집중투자 단계에서 경상수지 및 무역수지상 적자를 피할수 없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투자의 결실이 수출증가로 나타나고 무역수지는 흑자로 전환된다. 그러나 이미 발생한 채무에 대한지급이자 때문에 경상수지는 아직 적자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해외차입을 어느정도 상환한 단계에서 경상수지는 흑자로 바뀌고 결국 순채권국으로 탈바꿈한다. 최종적으로 성숙기에 접어들면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서나 투자수익으로 이를 충당하며 순채권국의포지션은 유지된다.최근까지도 미국 경제는 이 패턴에 맞는 듯이 보였다. 19세기 후반까지 미국은 외국으로부터 많은 차관을 도입했고 경상수지는 적자상태였다. 1870년에 들어서서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섰고 1900년에는 경상수지도 흑자를 기록했다. 20세기 전반에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발돋움하였다. 1970년대 후반에 경상수지가 적자로 반전하였으나 순 채권국의 위치에는 변함이 없었다.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서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너무 커지자 미국은 이같은 이론이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어 순채무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이 패턴에 맞지 않는 나라도 많다. 호주와 캐나다는 한번도 순채무국의 입장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을 통하여 경상수지 적자국을 면했느냐 하는 것보다 해외부채를 상환할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경상수지 적자가 바람직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첫번째 기준은 수익성 있는 투자에 투입되는가에 있는 것이다.일시적인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경상수지 적자를 발생시키는 것도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국가의 주요 수출품목인 가격이 갑자기 떨어졌다고 가정하자. 가격 하락이 일시적이라면 현재의 소비수준을 유지하고 경상수지 적자규모를 늘리는 것이합리적인 정책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반면에 가격하락이 장기간 지속된다면 국민소득도 장기간 감소할것이므로 소비를 억제하고 경제구조를 조정해 나가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충격이 일시적일지 장기간 지속될지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경상수지 적자로 조달된 재원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파악하는 것도쉬운 작업이 아니다. 한 가지 방법은 총저축 수준과 총투자 수준의변화를 보는 것이다. 저축이 감소하고 투자는 정체된 상태에서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확대된다면 걱정스러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투자보다는 소비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차입금상환에 소요되는 재원을 창출하지 못하게 된다.◆ 재정적자 증가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 확대 위험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는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한 나라의총투자와 총저축은 민간부문과 정부부문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경상수지 적자의 원인이 어느 부문에서 발생하느냐에 따라 문제는 크게 달라진다.1980년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의 상당부분은 재정적자가 급격히확대됨에 따라 발생한 것이다. 정부 지출은 주로 소비로 흘러간다.재정적자 증가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 확대의 위험성은 여기에 있는것이다.반면에 재정이 균형상태 또는 흑자 기조를 유지하는 상황에서도 경상수지는 적자를 나타낼 수 있다. 이것도 문제가 되는가.많은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민간부문에서 유발된 경상수지 적자는 민간차원의 합리적인 투자결정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의 두가지 경우는 주의가 필요하다.첫째는 주로 은행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필요이상으로 해외차입을늘리는 경우이다. 은행들은 흔히 최악의 경우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둘째는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전되어도 역시 자본시장은 완전한 결합상태에 있지 않기 때문에 해외차입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또다시 멕시코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국제 금융시장이 특정국가의위험도를 심각한 것으로 인식하면 해외자금의 유입은 중단되어 버린다. 경상수지 적자를 단기자금 또는 악성 차입금으로 충당하면국가는 위기에 봉착하게된다.이 두가지 경우를 보면 경상수지 적자의 건전성 여부를 재는 일률적인 잣대는 없다. 결국 해당국가의 경제발전 단계, 자금의 사용처, 시장에서의 인식등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 명백한 것은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경상수지 적자가 나쁜 것만은아니라는 점이다.표에서 보면 캐나다와 말리는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국내 총생산의4%수준으로 비슷하나 그 내용은 판이하다. 캐나다는 무역수지에서국내 총생산의 1.4%규모의 흑자를 보이고 있다. 해외부채에 대한지급이자가 경상수지 적자의 주범인 것이다. 반면에 말리는 서비스부문에서 엄청난 적자를 기록, 국내 총생산의 11%에 육박하는 해외원조로 겨우 경상수지를 유지해 가고 있는 형편이다.터키와 호주도 대조적이다. 적자규모는 비슷하나 터키는 무역수지에서 국내 총생산의 8%에 이르는 막대한 입초현상을 보이고 있는반면 호주는 수출입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호주의 경상수지 적자는 해외부채에 따른 지급이자 때문인 것이다.메In defence of deficits? Dec. 22. 1995.ⓒ The Economist,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