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때마다 한국인은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성숙된 인간이 될 것인가, 지역감정에 맹종하는 동물적 본능의 무리로 전락할 것인가를고민한다. 특정정당에 표를 몰아주는 지역민들을 제외하고는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개운치않은 기분으로 투표장을 향해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마땅한 정당이나 미더운 입후보자가 없는 상황에서 지역당들의 거침없는 행진에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기 때문일것이다.개표결과 대부분 국민의 예상대로 집권당이 과반수확보에 실패했으나 그에 육박하는 의석을 차지한 것은 장학로 부정사건의 악재를잠재운 북한의 정전협정파기 사태의 도움이 컸고, 무엇보다도 정국의 안정을 바라는 다수국민의 덕분이었을 것이다.착각은 자유지만, 김영삼정부가 이같은 선거결과를 놓고 집권이래 펼쳐온 사정성개혁에 대한 지지를 얻은 것으로만알고 자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 좁히는 입법행위를”이번 선거결과 두드러진 야권의 모습은 대권도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DJ와 국민회의, 내각책임제 개헌주장에 힘을 얻은JP와 자민련, 참패로 기가 한 풀 꺾인 독자개혁 이미지의 민주당으로 압축된다. 아마도 앞으로 곧 이어질 다수당의 의석늘리기 작전에 따라 민주당 소속 및 무소속 의원들은 비싼 「몸값」으로 팔려갈 공산이 크다.이같은 정계의 이합집산 전망일랑 뒷날일로 미루어 두고, 여기서는15대국회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몇 가지 언급하고자한다.첫째로 선풍적 인기는 일시적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비자금사건을 폭로한 박계동, 12·12사건의 「스타」로 떠오른 강창성등의 패배가 바로 그 교훈이다. 앞으로 대성하려는 국회의원은 깜짝 인기보다 내실있는 정치역량을 지속적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둘째로 정당의 지역성이 양면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 민주당처럼 지역기반 없이는 참패하는 반면에 지역감정고취에주력하는 정당은 중부권 공략에 한계가 있다. 특정지역 감정을 부추기면 이는 곧 여타지역에서의 반작용으로 어어진다. 지역별 이해관계에 얽혀 나라 전체의 이익을 망각하는 정치인은 대성하기도 장수하기도 어렵다는 교훈을 바로 읽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셋째로 당선자 모두 범법자일 수 있다는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현행선거법을 엄격하게 지키고 당선된 사람이 있을까. 특히 선거자금한도를 지킨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거의 규정위반자들일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이다. 이를 절실하게 인식하고 그 간격을 좁히는 관점에서 입법행위를 수행해주기바란다. 집권당이 펼쳐온 사정과 개혁에 대하여 대다수 국민이 정치인의 위선을 개탄하고, 이중적 잣대에 환멸을 느끼는 대목이 바로 정치인 언행의 비현실성 때문일 것이다. 이는 눈속임을 조장하는 선거법개정은 물론, 국민생활 이모저모를 얽매고 있는 갖가지비현실적 규제들을 과감히 폐지·완화하여야할 책무가 정치인에게있음을 의미한다.넷째로 지난날 뚜렷한 직업없이 재야운동권에 참여해오다 국회입성에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애국행위」를 자랑하고 자신이 겪어온 고통에 대하여 보상을 추구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낄 것이다.그러나 그간 묵묵히 일상적 생활을 영위하면서 납세 국방의 의무등 국민의무를 다해온 대다수 평범한 국민들의 애국심에 머리숙여야 정치인으로 성숙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과거 부패기회가 없어서 정직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재야 정치지망생들은 감미로운 타락의 미끄럼틀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얼마후 부패의 수렁에서 기존 정치인과 합류하게 될 것이다. 정치인들의 도덕성은 오뉴월 고기처럼 상하기 쉬운 음식인 반면에 평범한 직장인들의 도덕성은 건나물처럼 변질되기 어렵다.다섯째로 선거기간에 내건 대부분의 공약은 잊어버려도 좋다. 그것을 다 지킬수 없는 것은 나라의 자원이 유한할 뿐만 아니라 서로충돌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개발사업은 잊어버리는 것이 국가균형발전에 유익하다.가장 중요한 마지막 당부는 선거기간 소홀히 되었던 국가안보문제를 직시하라는 말이다. 나라 기틀의 안정성을 확보한 기초위에 국제경쟁력있는 국민경제를 건설하여야 한다. 정치안정이라는 차원에서는 내각제보다 대통령제가 우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