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이란 단어가 있다. 농경사회 산업사회 정보화사회는생산과 소비의 관계,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유통등 모든 단계가 다르다. 문화가 다르고 이에 연유한 시대정신이 다르다. 그 사회의총체적인 형질이 근본부터 지엽까지 차이를 보인다. 패러다임은 역사의 장주기적 구분이며 우리는 산업사회로부터 정보화사회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변혁기를 살아가고 있다.정보화사회는 인터넷으로 대변된다. 지난 1∼2년새 지구촌의 인터넷 열기는 가히 폭발적이라 할만하다. 앞으로도 당분간 그 열기는식지 않을 기세다. 동서남북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지구촌의 공통화제가 돼 버린 인터넷. 과연 그 후끈한 열기는 어떤 방법으로 전달해야 할까. 가장 좋은 것은 「이거다」라고 들어올려 보이는 방법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가상공간이다. 컴퓨터와 컴퓨터가 연결되면서 태어난 영혼과도 같은 네트워크일 뿐이다. 그렇다고 인터넷열기를 느끼는 일이 어렵진 않다.올들어 국내의 「신문이라는 밥상에 인터넷이란 반찬」이 오르지않은 날이 있을까. 국내 유수의 신문사들이 어린이를끌어들이고(C일보) 중고등학교를 연결하고(J일보) 대학생들을 묶어(D일보) 인터넷을 확산시키는데 여념이 없다. 「앞서가는 듯하면서도 시류를 뒤따라가는」 언론의 속성을 고려할 때 이같은 편집은곧 인터넷에 대한 시중의 광적인 열기를 반영하는 것에 다름아니다.기업이나 기관들도 마찬가지다. 삼성 현대 LG 대우등 주요그룹들의계열사들이 너도나도 웹사이트를 개설하는 대열에 뒤질세라 쫓아가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 비즈니스기회를 잡기위한 아이디어도 백출한다. 청와대를 필두로 한 행정기관들도 예외가 아니다. 일단 인터넷상에 「집」(웹사이트)을 짓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강박감이 느껴질 정도다. 물론 이같은 열기는 국내만의 상황이 아니다. 정도의차이는 있지만 인터넷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굳이 수치로 들자면인터넷이용자가 본격적인 상업화바람이 불고 불과2년여만에 4천만∼5천만명을 헤아리게 됐으며 96년1월현재 9백47만2천개의 호스트컴퓨터가 연결돼 한해동안 85%나 증가했다는 정도다(미국 네트워크위저드사).◆ 지구촌의 공통화제 인터넷인터넷의 본질은 그러나 뜨거운 열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정보화사회로 가는 과정이며 따라서 우리주변의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다는데 있다. 언젠가 식어버릴 수 있는 단순한 열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이같은 변화는 컴퓨터 PC통신 휴대통신기기등 정보기술의 산물들이 어우러져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 다른어떤 것에 비해 열등하지 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첫째 인터넷은 직장이나 가정에서 일하는 환경을 변화시킨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입수하게 한다. 기업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서로를 연결하고 이를 통해 결재와 회의의 형태를 바꾼다. 해외로도 바로 묶여 공간의 벽을 일시에허물어뜨린다. 인터넷에 모태를 두고 있는 인트라네트는 이제부터본격적으로 사무환경을 탈바꿈시킬 네트워크다. 일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에게만 출입이 허용되는 폐쇄적인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이는 저렴한 비용으로 시공의 장벽을 뛰어넘어 조직구성원을 일시에 연결하게 된다.가사환경도 바뀐다. PC통신에서 보편화를 앞두고 있는 홈쇼핑 홈뱅킹이 인터넷에서도 본격화될 날이 멀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나넷스케이프같은 컴퓨터업체와 비자인터내셔널같은 카드업체들이 모여 인터넷 결제시스템의 국제표준을 준비하고 있다.여행을 떠나기 앞서 여행지를 둘러보고 항공기와 호텔예약을 인터넷으로 한다. 이같은 변화가 확대되면 기업의 거래·유통관계가 바뀌게 된다.둘째 인터넷은 문화를 변화시킨다. 국내PC통신에 올려졌던 글이 지난 92년 「나는 컴퓨터 시인이로소이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역시 PC통신에 올려졌다 출판된 소설「퇴마록」은 최근까지 2백만부이상이 팔려나갔다. 문인등용문이 바뀐 사례다. 인터넷에도 이같은 글을 발견할 수 있다. 원래 통신판매를 위해 만들어진 엉성한것들(Worst of the Web,http://mirsky.com/wow/)이란 이름의 웹사이트에는 아마추어시인의 습작들이 실려있다. 할리우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매일밤 접할 수 있고 필요한 학술자료를 수시로 입수할수 있다. 영화관에도 가지 않게 되고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지 않게한다. 결국에는 네티즌이란 가상사회의 시민들이 탄생한다. 이들은여론광장을 통해서 의견을 표출하고 투표에 나서기도 한다.인터넷 통신사용자들의 예절인네티켓(http://www.fau.edu/rinaldi/netiquette.html)도 등장한다.◆ 20세기 인간형은 ‘통신마니아’셋째로 인터넷은 끝내 인간을 변화시키게 된다. 20세기의 인간형은마니아(어떤 분야에 중독일 정도로 열성인 사람)들이며 마니아중의마니아는 「통신마니아」라는 얘기가 있다.「학교를 파하자 마자 집으로 달려와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PC를켠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채팅을 하고 이곳저곳 가상공간을 헤맨다. 인터넷도 들락거린다. 슬쩍 음란정보에도 접속해본다.」 시간이나 전화통화료에 구애받지 않는다. 학교수업이나 근무시간에는졸음을 참지 못한다. 이들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는 것보다 네트워크를 통해 만나고자 한다. 폐쇄된 3차원의 현실공간에서도 혼자만의 「열린공간」이 있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물론 인터넷이란 가상공간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더욱 더 과학기술들이 발달해야 한다. 현재의 가상공간의 통신망을 비롯한 시스템의불완전으로 해서 「언제 지진이나 화산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완의 바벨탑이다. 인간은 공부하고 역사는 발전할 것이다.★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 역사어떤 이념보다도 빠르게 지구촌을 묶어가고 있는 인터넷은 올해로모습을 드러낸지 27년이 된다. 컴퓨터가 등장한지 정확히 50년이니정보통신의 발달은 가히 빛의 속도라 할만하다.대다수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전쟁과 무관하지 않으며 컴퓨터의 발달 또한 전쟁과 깊은 관계를 갖는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컴퓨터로 기록된 「에니악(ENIAC)」은 2차대전이 끝나고 전세계가 좌우대립의 냉전에 휩싸인 46년의 발렌타인데이에 전원스위치가 올려졌다.미국방부의 의뢰를 받은 펜실베이니아대학이 포탄사격 등에 이용할전쟁용 고급계산기로서 만들어낸 것이다. 무게 30t의 에니악은 이미 고물로 취급되는 286PC에도 못미치는 성능을 지녔지만 당시에는세계를 경악시킬 정도의 강력한 「최첨단 계산기」였다.인터넷은 10여년이 흘러 동서냉전체제가 확고히 자리잡은 69년에등장했다. 컴퓨터들을 연결하는 통신망으로 역시 미국방부의 고등연구계획국의 지원을 받은 작품이다.국방부와 스탠퍼드 UCLA UC산타바바라 유타주립대등 4개대학으로산재한 컴퓨터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공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안됐다.당시 미국은 국방용 컴퓨터를 한곳에 모아두면 적의 핵폭탄공격을받아 국방기능이 한순간에 마비될 것이란 우려를 했다고 한다. 국방부는 이런 위험을 분산시키면서 여러곳의 컴퓨터를 연결, 정보를나눠 보관하는 네트워크를 필요로 했다.이렇게 막을 연 인터넷은 초기에 「아르파넷(ARPAnet) 」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초기의 사용목적은 군사학술용으로 한정됐기 때문에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연결기관이 40개정도에 불과했다.◆ 최초 컴퓨터 「에니악」 2차대전후 ON스위치그러나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비군사목적의 인터넷 사용이 확산됨에 따라 아르파넷중에 군사목적의 부분이 오히려밀넷(Milnet)이라는 이름으로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아르파넷은 미국과학재단(NSF)이 중심이 돼 민간의 학술연구를 위한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85년 NSF넷이 구축돼 아르파넷의 기능은NSF넷으로 흡수되고 정보전송속도도 크게 향상됐다. 이때부터 컴퓨터간의 통신을 의미하는 인터넷이란 용어가 고유명사로 정착돼갔다.주로 학술망으로 쓰이던 인터넷은 컴퓨터마니아층인 대학생들이 참여하면서 소리소문없이 확대됐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컴퓨터가 고속의 통신선으로 묶이고 기업체와 개인사용자까지 앞다퉈뛰어들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지구촌을 형성한 것이다.91년에는 서비스제공자들이 연합해 NSF넷과 구분된 별도의 기간망을 구축하고 협회를 구성했다. 오늘날 상용화된 민간 인터넷의 시작이다.컴퓨터나 인터넷을 고안한 이들이 오늘과 같은 변화를 감히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제 인터넷은 그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으면서 「아메바의 세포분열」을 거듭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