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한다, 이 견본품을 내일까지 미국으로 보내야 하는데. 참,DHL이 있었지.』국제특송업체인 DHL의 TV광고다. 이 광고를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DHL하면 「외국에 급히 보낼 물건이 있을 때 이용하는 회사」라는 사실을 떠올리는데 익숙해졌다. DHL이 국제특송업체의 대명사로자리잡은 것이다. 국제특송업이란 말 그대로 국가간의 「특별한」송달에 관한 사업이다. 여기에서 특별하다는 의미는 두가지를 포함한다. 보통 40㎏이하의 소량화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과 물건을보내거나 받기 위해 어디로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문에서 문까지(Door to Door)」 또는 「책상에서 책상까지(Deskto Desk)」서비스다. 이런 특징때문에 국제특송사업은 「SP(SmallPackage: 소량화물)」사업 또는 「쿠리어(Courier: 운송요원)」사업이라고 불려왔다.세계적으로 국제특송업이 처음 등장한 것은 70년이다. 미국의 항공자유화 정책에 힘입어 소형화물 수송을 목적으로 설립된 DHL과FedEx(페덱스)가 시초였다. 이후 미국의 육상수송업체였던 UPS와호주의 운송회사인 TNT 등이 국제특송에 손을 대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들 네 업체는 「빅4」라 불리며 전세계 국제특송 물량의대부분을 독식하고 있다.◆ 국내업체, 해외지점망 못갖춰 경쟁력 약화빅4의 독식현상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빅4가 국내 전체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7%. DHL이 45%로 선두를 달리고 있고 FedEx와TNT는 각각 15%씩으로 그 뒤를 잇고 있으며 UPS는 12%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 신고된 국제특송업체는 대략 35개. 나머지 13%시장을 빅4를 제외한 31개 업체가 나눠먹고 있는 것이다. 국내 국제특송시장은 지난해 1천억원 규모였다. 개방화 속도에 맞춰 시장이 매년 15~20%씩 성장, 2000년엔 약 5천억~7천억원 규모에 이를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국내의 국제특송업체들은 대부분 외국 기업과 업무제휴를 맺은 한국의 총대리점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DHL의 한국 대리점은 일양익스프레스고 FedEx와 TNT는 각각 프라이엑스와 점보익스프레스를 총대리점으로 거느리고 있다. 국내 업체가 독자적인 영업망없이 해외기업의 대리점으로밖에 활동할 수 없는 이유는 국제특송사업의 기본인 해외 지점망을 갖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세계 2백개 이상의 지점망을 갖추고 있는 외국 기업과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독자 지점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얘긴데 중소 특송업체의자본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지난해까지는 외국 기업도 국내에서 영업하기 위해서는 국내 업체와 업무제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법적으로 직접 투자가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금지조항은 올해부터 없어졌다. 외국업체와 국내 기업의 합작투자는 물론 외국 업체의 1백% 투자도 허용된 것이다. 국제특송산업이 개방되면서 가장 먼저 직접 투자를 감행한 회사가 UPS다. UPS는 지난해까지 대리점 계약을 맺고 있던 고려항공화물과 관계를 청산하고 올 3월에 대한통운과 총 8억원의 자본금으로 UPS-대한통운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경영권은 지분의 60%를 가지고 있는 UPS가 가졌다. 현재 UPS는 국내의 유일한 합작투자 형태의특송회사다.국제특송산업은 세계적인 네트워크 구축 외에도 많은 초기 투자액을 요구하는 장치산업이다. 『국제특송에는 Door To Door서비스를위한 시스템과 운송수단, 창고등의 3요소가 필수적』(장 스티븐UPS사장) 인데 3가지 요소 모두 엄청난 돈을 요구한다. 우선 시스템의 문제다. 국제특송의 생명은 신뢰성이다. 소비자가 믿고 물건을 맡겨야 한다는 말이다.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한것이 물건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물건이 제대로 도착했음을 고객에게 알려주는 POD(Proof of Delivery: 배달증명확인)제도다. 빠르고 정확한 POD를 위해서는 Track-Trace(발송물추적)시스템이 뒤따라줘야 한다. 발송물추적시스템이란 고객이 보낸 발송물이 현재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장치다. 발송물에는 바코드가 붙어있고 발송물을 운반하는 요원은 스캐너를 가지고 다니며 발송물의위치가 바뀔 때마다 스캐너를 화물의 바코드에 갖다 댄다. 그러면스캐너를 통해 발송물의 위치가 본부와 각 지점 컴퓨터에 입력돼발송물이 어느 위치에서 움직이고 있는지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게된다. 이 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만만치 않다. 한 번 투자한 뒤라도수시로 시스템 보완을 위해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TNT의 경우93년부터 지난해까지 컴퓨터시스템에만 1억2천만달러(약 9백60억원)를 투자했을 정도다.운송수단에 대한 투자비도 만만치 않다. 수송차량은 말할 것도 없고 자체 항공기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발송물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분리하는 컨베이어벨트시스템이 갖춰진 창고도 빼놓을 수 없다. 시스템과 운송수단, 창고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데 비해 빅4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경쟁은 날로 심해지고있다. 이 때문에 세계 물류전문가들은 빅4중에서도 3개 업체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전 물류과정 특송업체가 맡는다그렇다고 국제특송사업이 사양산업인 것은 아니다. 팩스의 등장과컴퓨터를 통한 EDI 및 E-mail의 등장으로 국제특송에서 큰 비중을차지했던 서류송달 업무가 줄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국제특송은21세기 최고의 유망산업이다. 국제특송의 특징을 이루던 「40㎏이하의 소량화물」이 매력을 잃어가는 대신 국제물류서비스라는 새로운 사업 기회가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물류서비스는 각 기업의 수출입 물량을 특송업체가 일괄적으로 처리하는 서비스다. 물건을 포장해서 공항까지 운반하고 세관을 통과하고 비행기에 싣고다시 세관을 통과하고 창고까지 운반하고 분류해서 각 판매지점까지 일일이 배달하는 전 물류과정을 특송업체가 전담한다.『다품종 소량생산은 유행에 민감해야 하고 유행에 민감하기 위해서는 빨라야 한다. 생산기간을 줄이는데는 한계가 있다. 줄일 수있는 것은 결국 운송기간 뿐이다. 일반기업이 15일 걸리는 국제 운송을 특송업체는 이틀이면 해결할 수 있다』(정명수 FedEx상무).『물류서비스는 특송업체의 가장 중요한 사업영역이 되는 동시에미래의 물류시스템은 특송업체 중심으로 대체될 것』(김중만 TNT상무)이라는 얘기다.신속성 뿐만이 아니라 기업의 비용절감 측면에서도 특송업체에 물류를 맡기는게 유리하다. 포장 운송 통관 보관 분류 분배에 이르는전 물류과정을 특송업체에 맡기면 그 과정에 필요한 인원을 줄일수 있다. 창고나 분류시스템을 갖추는데 드는 비용도 절약된다. 물류부분을 전문업체에 맡기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비용측면에서나 모두 효율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IBM이나 모토로라 등 다국적 기업들은 국제물류를 특송업체에 맡기고 있는 추세다.국제물류서비스가 유망산업이라는 사실은 빅4가 서비스 체제를 소량화물 중심에서 대량화물인 물류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국제물류서비스는 미래의 「황금어장」이다. 한진택배가 국내 특송업체로는 처음으로 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독자적으로 국제특송에 나선 것도 그래서다. 한진은 미국내중소 특송업체와 업무제휴를 통해 네트워크를 구성, 차근차근 지점망을 늘려간다면 빅4와 전면적인 경쟁은 어렵더라도 국제특송에서일정한 영역은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빅4와 차별화되는 특징과 장점을 개발하면 얼마든지 승부를 걸만하다는 계산이다. 빅4가아무리 막강하고 투자비가 엄청나다 해도 국내 기업이 파고들 틈새는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큰 둑은 작은 틈새로 인해 무너지기 마련이다. 국제특송에서 고유의 경쟁력을 키운다면 우리에게도기회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