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시장에 20여년이나 몸담아온 고금리씨(가명·47)는 요즘 남다른 감회를 갖고 채권시장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나라 자금시장 사상 초유의 저금리시대가 펼쳐지면서 약간은 얼떨떨한 표정이다. 만성적인 고금리의 두터운 양파껍질이 한풀 벗겨져 이제는 안정된 저금리의 속살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다.장기실세금리를 대표하는 3년만기 은행보증 회사채수익률은 지난16일 연10.90%로 떨어져 연11%의 높은 벽을 무너뜨리고 연10%대 시대를 활짝 열었다. 또 25일엔 연10.53%로 떨어졌다. 80년대초연30%를 웃돌았고 90년대초엔 연20%에 육박했던데 비하면 고금리씨가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물론 회사채수익률이 연10%대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93년 3월29일 채권수익률이 연10.98%를 기록했다. 이어93년8월 금융실명제나 94년8월 통화대란으로 한차례씩 상승무드를보였고 경기활황으로 기업자금수요가 피크를 치던 95년 3월3일엔다시 연15.5%로 뛰어올라야 했다.금리는 돈을 빌려주고 받을 때 웃돈으로 얹어주는 값이다. 웃돈의장기적인 추이를 전망할 때 채권전문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지표는성장률과 물가. 한마디로 장기금리인 회사채수익률의 적정선은 경제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수준이라는 말이다. 올해의 경우 경제성장률 전망치 7.5%와 예상 물가상승률 4.5%를 합친 연12%선이적정하다는 계산이 나온다.앞으로 회사채수익률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 대부분의 채권전문가들은 현재의 안정기조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대우증권 상품본부팀의 마득락 팀장은 『기본적으로 자금수요가 적은데다 5월중 채권 발행물량도 많지 않아 5월상순까지는연10.8~10.9%선의 안정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그러나 4월말부터 기업들의 자금이 집행되기 시작하고 4월중 물가상승률이 다소 높은 수치를 보일 가능성이 있어 이에따른 정부의 통화관리가 강화되면 5월중순이후 3개월동안은 연11.2~11.3% 선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또 하반기에도 정부의 물가안정 노력이 더해지면서 9월말께는 회사채수익률이 연11.4%로 소폭 상승한 뒤 연말에는 물가안정만 전제된다면 시중유동성이 풍부한 가운데연11.2%선의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그렇다면 장기실세금리의 바로미터격인 회사채수익률 한자리수 시대는 언제나 열릴 것인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회사채수익률의 구조적인 하향안정세를 점치면서도 「장기금리 한자리수」 얘기를 거론하는데는 상당히 신중한 입장이다. 물론 내년중에도 회사채수익률이 연10%대 밑둥치에서 움직이면서 일시적으로 한자리수 진입을시도하기는 하겠지만 연10%미만으로 안착하기엔 이르다는 것이다.회사채수익률이 한자리수로 정착되기 위해선 우선 인플레심리가 잠재워져야 한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경제의 잠재성장률을 6%만 잡더라도 물가상승률이 3%대에 안착해야만 연9%대의 금리를 바라볼 수 있다는 말이다(마득락 팀장). 또한 금융실명제로인해 상당히 위축되긴 했지만 일반적인 사채금리가 1부 2부 3부 하는 식의 사금융관행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어 장기금리가1부(연12%)밑으로 떨어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우충희 제일증권채권부 대리). 이렇게 본다면 대체로 회사채수익률 한자리수 시대는 98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그래서 우리나라의 금리가 최근들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선진국(연6%수준)에 비해선 여전히 고공 비행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제조업체의 차입금 평균금리를 산출해보면 94년엔연11.4%로 91년의 연13%에 비해선 크게 떨어진 수준이지만 93년(연11.2%)이후엔 더 떨어지지 않고 거의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또 대한상의에서 3백여개 일반기업 및 금융기관들의 신규 차입금리를 기준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4분기중에도 금리는 안정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측됐다. 2분기중 평균 신규차입금리가 1분기의연12.57%와 비슷한 연12.56%로 나타난 것.장기금리의 더딘 움직임에 비해 단기금리의 하락세는 돋보인다.90년대 초반만 해도 연20%선에 육박했던 3개월짜리 CD 유통수익률은 지난 4월25일엔 연9.9%를 기록했다. 앞으로도 CD수익률은 회사채수익률보다 0.5%포인트정도 낮은 선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되고있다(김병철 동양증권 과장).또 최단기금리인 하루짜리 콜금리는 최근 연9%대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앙투자금융 자금부의 이현모 과장은 『콜금리는 앞으로도 최소한 내년까지 큰 변화없이 연8.5~9.5% 수준의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들이 다급하게 돈을 빌려 쓰는 타입대를 일으키거나 물가가 불안해 통화고삐를 급작스레 죄는무리상황을 야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나아가 장기실세금리가한자리수로 떨어지게 되면 콜금리도 한단계 추가하락할 가능성이높은 상황이다.★ 미니 인터뷰 / 김영섭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금리등 비용구조면에서 경쟁국보다 불리한 우리경제의 고비용·저효율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금리가 하향안정되도록 정책적 노력을 계속할 계획입니다.』지난 23일부터 지급준비율을 평균 2%포인트 내린 실무작업을 총지휘한 김영섭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48)은 『금리안정이 정착될수 있도록 일시적인 자금과부족에 의한 금리급변동을 예방하고 금융기관 경영의 효율성을 높여 금융중개비용을 낮추도록 유도해 나갈 것』이라며 이같이 밝힌다. 정부가 금리를 떨어뜨릴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놓은 뒤 지준율 인하같은 「충격」(trigger effect)을주면 은행등 금융기관들이 자발적으로 금리를 하향조정하는 선순환을 정착시키겠다는 설명이다.김실장은 『지준율 인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지준율이 아직도높은 수준』이라며 『통화동향이나 본원통화공급 구조의 변화추이등을 감안해 지준율을 지속적으로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부연한다. 지준율 인하는 은행의 수지구조를 개선시키고 1,2금융권간 경쟁여건을 동등하게 만들어 금융이 균형적으로 발전할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전제요건이 된다는 것이다.그는 통화관리를 간접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통화채 발행기간을다양화하는등 공개시장조작을 활성화하고 지준율의 추가인하와 한국은행의 총액대출한도를 점차 축소해 나간다』는 계획도 제시한다. 통화채 발행을 국채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과 관련해선 『공개시장조작의 대상채권을 무엇으로 해 통화관리비용을 한은(통화채)이나 재정(국채)이 부담하느냐는 문제』라며 『통화관리를 위해재정적자를 감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다.김실장은 이어 금융상품간 과세상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도 펼계획이라고 설명한다. 『금융상품간 과세상 형평성을 높인다는 측면과 보험상품의 비과세에 대한 정책신뢰성 및 생보사 경영수지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우선 「비과세대상유지기간」을 기존의5년에서 7년으로 늘렸다』는 것. 지난 1월부터 5년이상 저축성보험의 보험차익은 비과세되나 은행의 정기예금등 여타 저축은 종합과세의 적용을 받으며 5년이상 장기저축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분리과세되는 것은 은행과 보험간 차별성을 야기해 자금이동을 유발한다는 지적을 수용했다는 것이다.그는 『금리자유화와 개방화등으로 인해 저금리시대가 도래하면서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2/4분기중에는 부실금융기관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정비를 하는데 최선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를위해 오는6월 출범하는 예금보험공사가 부실금융기관을 인수하는 기관에 대해 자금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자율적 합병」이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갈 계획이라고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