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재 수출 1천5백억달러(전체 수출의 60%), 대일무역수지균형」. 정부가 지난해 5월 「자본재육성대책」을 발표하면서 오는2005년에 달성하겠다고 내건 목표다. 자본재 수출 4백75억달러, 대일적자 1백38억달러였던 94년과 비교할 때 엄청난 장미빛이다. 자본재 산업을 수입대체에서 한발 나아가 수출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다. 역사상 「전쟁」을 통하지 않고 자본재산업을 성공적으로 육성한 최초의 나라로 기록되면서 세계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겠다는 원대한 계획도 담겨 있다.◆ 대일 자본재 역조 갈수록 태산이를위해 자금지원과 세제혜택은 물론 기술·인력지원 등 업계요청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그동안 통화관리를 내세워 금기시했던 국산기계 구입시 외화대출도 허용됐다. 기계류전문 할부금융사 설립도예외적으로 인가됐다. 「자본재」하면 거칠게 없는 프리패스가 된셈이다. 재계도 이에 화답을 보내고 있다. 전경련은 지난 9일 회장단 회의를 열어 △수입이 1천만달러 이상인 고성능 래피어 직기,트랜지스터 프레스 △수입자유화에 대비해 품질개선이 필요한 자동차 에어컨용 컴프레서 변속기 및 차축등 13개 자본재를 국산화하기로 결의했다. 자본재 종속을 딛기 위한 정부와 재계의 합창이 울려퍼지고 있다.자본재 산업은 지난 60년대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해 온 이후 급속히성장해 왔다. 자본재 산업이 GNP(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지난 80년 5.4%에서 94년에는 13.9%로 높아졌다. 총수출에서의 자본재 비중도 같은기간 22.9%에서 49.8%로 확대됐다.그러나 반도체등 일부품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계류 핵심부품 소재산업의 경쟁력은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설계기술이나 제어계측기술은 대부분 해외(일본)에 의존하고 있다.이는 자본재 산업의 무역적자규모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자본재적자는 지난 94년 31억달러, 95년 24억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대일자본재 역조는 심각하다. 지난해 1백67억달러를 기록, 94년보다29억달러나 늘어났다. 올들어서도 두달새 21억달러의 적자를 냈다.갈수록 태산이고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반도체 자동화 제외한 기술수준 걸음마단계자본재의 자급률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지난 92년 73%에 달했던자급도는 94년에 72.7%로 소폭 떨어진 뒤 작년에는 70.7%로 추락했다. 특히 경쟁력의 핵심이랄수 있는 일반기계의 자급도는 62.2%에지나지 않으며 정밀기계는 27.9%에 불과하다.자본재의 낮은 자립도는 국내 경제가 호황을 나타내 투자가 확대될수록 수입이 늘어나는 대외의존형 산업구조를 잉태해 왔다. 투자의수입유발효과는 28.4%에 달한다(90년). 반면 일본은 9.5%에 지나지않는다. 자본재를 완전히 국산화하면 국내생산이 1백30조원이나 늘어나고 3백41만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한국은행)은 자본재 국산화가 얼마나 시급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기술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반도체소재(90)와 자동화(70)등 일부에서만 선진국(100)과 어깨를 견줄만할 뿐 대부분은 걸음마 단계에불과한 실정이다.미래기술의 핵심인 메카트로닉스(기계를 뜻하는 mechanics와 전자를 가리키는 electronics의 합성어) 부문은 절반에도못미치고(40~50) 컴퓨터는 그것보다도 더 뒤처져 있다(30~40). 잘나가는 반도체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반도체 장비 자급률은15%다. 기초적인 것만 국내에서 조달할 뿐 핵심부품은 대부분 일본이나 미국 등에 의존하고 있다.그렇다고 연구개발(R&D)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자본재 산업의 매출액에 대한 R&D비율은 한국이 3.4%(93년)에머물고 있는 반면 일본은 4.3%(92년)에 달한다. 연구원 1인당 연구비도 일본(20만8천7백달러, 93년)이 한국(7만7천1백달러, 93년)보다 2.7배나 많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술격차는 더욱 벌어질 소지가많은 것이다.『아시아의 경제성장은 단순히 인적·물적자본의 급속한 축적(규모의 경제)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지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기술개발에 의해 달성된 것이 아니다.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은 앞으로둔화될 수밖에 없다.』 세계은행(동아시아의 기적, 93년)이나 크루그먼교수(아시아경제성장한계론, 94년)등이 제기하고 있는 메아시아경제한계론?을 요약한 말이다. 한국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자본재 산업을 육성하지 않고는 경제자립은 물론 지속적인 성장도 불가능하다.자본재 산업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지원효과가 나오려면최소한 3~5년이 지나야 한다. 정권변화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에 귀기울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