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기조실문제가 정부의 신대기업정책의 핵심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최근들어 규제완화 투명경영을 신대기업정책의 양날개로 삼겠다고 천명하면서 대기업총수의 두뇌역할을 하는 기조실의 위상문제가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신대기업정책의 한 축인 규제완화는 각종 경영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여신규제 등을 대폭 풀어주는 것으로 기업들에 반가운 선물이다. 경제력집중을 문제삼지 않겠다고 한 것도 각종 시장 진입과 퇴출을 업계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 구본영 청와대 경제수석이 이와관련 『내수시장의 빗장이 완전히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의 다국적기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몸집부풀리기는 불가피한측면이 있다』고 밝힌 것은 이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에따라21세기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정보통신 항공기 금융 전자 우주항공 제철등에 신규진출을 추진중인 대기업들간 불꽃튀는영토확장경쟁이 본격화될 것임을 예고케하고 있다.하지만 투명경영은 기업에 분명한 족쇄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정부가 이를 강조하는 것은 대기업 오너의 경영전횡을 방지하고,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런 측면에서 「총수의 눈과 귀」가 되어 그룹계열사를 지휘, 통제하는 기조실은 정부시각에서 보면 투명경영 실현을 위해 손을 봐야할 대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기조실 여전히 ‘파워집단’물론 문민정부 초기에 대기업개혁의 일환으로 기조실 조직과 인원을 줄이라, 더 심하게는 아예 없애라고 주문했다. 이에 재계가 외형적으로나마 호응하는 몸짓을 보이면서 한 때 기조실 조직슬림화가 커다란 흐름을 형성했었다. 당시 재계개혁은 한이헌 당시 청와대경제수석(현 15대 국회의원 당선자) 등이 주도했다. 이로인해 한수석과 재계간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그렇지만 이같은 기조실개혁에도불구 기조실은 여전히 파워집단이다. 기조실장의 말이나 몸짓은 여전히 총수의 그것으로 인식되는상황이다.정부가 총수의 1인지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계열사를 통제장악하는 기조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이같은 기조실파워에 연유하고 있다.재계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점이다. 삼성그룹 비서실 관계자는『아직 신대기업정책과 관련해서 기조실에 대해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주문하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문민정부 초기에 이어 다시금 기조실문제가 도마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강조한 것은 단순한 우려이상의 그 무엇이 함축돼 있다.이는 재계의 이해가 민감하게 걸려 있는 대형사업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강도높은 투명경영 주문에 화답하는 카드를 내놓지 않을 수없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의 최대이슈인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경쟁에서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를 벌이고 있는 삼성 현대와 LG그룹의 경우 몹시나 신경이 쓰인다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LG회장실 관계자는 『정보통신부가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도덕성을 중요평가항목으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투명경영론에 대해 호응하는 카드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본다』면서도 『뚜렷한 카드가 없다』고 고민의 일단을 피력했다.PCS사업에 강한 열의를 보이고 있는 삼성 비서실은 이와관련, 투명경영을 실현하기위한 방안마련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내에서도 기조실위상문제에 대해 매파만 있지는 않다. 비둘기파도 적지 않다. 비둘기파적 시각은 재경원 일부관료들과 관변기관인 한국개발원(KDI) 일부연구원들이 견지하고 있다.『기조실을 없애라는 것은 기업현실을 모르는 순진한발상이다』(재경원 K사무관)라는 것이 반박논리다. 어느 조직이나기획 조정기능을 갖고 있는데 연간 수십조 내지 수조원의 매출을올리는 대기업들의 경우 계열사를 그룹경영전략에 맞게 기획 조정하기 위해서는 기조실의 존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재계검찰로 통하는 공정위원회와 청와대내 개혁캠프가 매파를 대표한다면 비둘기파는 재경원내 일부 성장론자와 KDI내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물론 구본영 청와대경제수석도 기조실 존립의 불가피성을인정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반도체 성공에서 보듯 남들이 코웃음칠 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는 오너경영체제의 강점은 기조실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강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수석도 오너경영체제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지난달 29일 현대 삼성등 5대그룹 기조실장과의 만찬에서도 이점을 강조했었다.기조실의 위상은 문민정부들어 부침을 거듭했다. 사정과 개혁이 국정운영의 키워드로 강조될 때는 총수의 전위부대로 통하는 기조실도 외형적으로 몸집을 줄이는 시늉을 보여야 했다. 조직을 줄인다,인원을 계열사로 내려보낸다, 계열사를 지휘통제하지 말라, 단순한지원조직으로 남으라는 말이 기조실이 거론될 때마다 유행하는 말이었다. 삼성이 2백59명에 달하던 비서실 인원을 1백50명선으로 크게 줄이고 대신 계열사 자율경영을 강조하기 위해 계열사를 5개소그룹으로 나눠 소그룹장 중심으로 자율경영을 하도록 한 것은 이의대표적인 사례다.◆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향한다’기조실은 비자금 사건을 계기로 또 한차례 도마위에 올랐었다. 정부는 대기업 총수의 전횡경영을 막기위해 기조실을 수술할 수밖에없다고 보고 대기업들에 기조실의 강도높은 개혁을 요구했다. 총수가 법정구속여부로 초비상에 걸렸던 대우그룹은 기조실을 아예 없앴다. 대신 총수 의전팀과 계열사관리에 필요한 인사 재무등 최소한의 조직만 있는 회장실로 만들었다. 그룹의 중장기 투자 사장단인사등을 좌지우지했던 그룹운영위원회를 없앤 것도 기조실축소와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총수가 비자금사건에 연루됐던 진로등도 뒤따라 기조실축소대열에 동참했다.기조실이 이처럼 난타를 당하면서 기조실장도 목소리를 낮췄다. 가급적 대외활동을 자제했다.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향한다」는것을 철저하게 준수했다. 총수를 보좌하는 본래의 기능에 충실한다는 게 대외활동 기피의 명분이었다. 전경련이 주관하는 기조실장회의도 무기연기됐다.그러나 이같은 기조실의 겨울시대는 비자금사건이 종착역을 향해달리면서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비자금사건으로 총수들의 심리가꽁꽁 얼어붙고 대외행보를 자제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다시금 뛰고있는 것이다.지난달 24일에 비자금 사건이후 처음으로 30대그룹 기조실장회의가재개됐다. 안광구통산부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그룹별 자본재 국산화를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이어 같은 달 25일에는 김인호 공정위원장과 삼성 현대등 5대그룹기조실장이 만났다. 상견례를 겸한 모임이었지만 공정위의 강도높은 공정경쟁정책에 우려감을 갖고 있던 재계가 정부와 이문제에 대해 의견조율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회동이었다는 게 기업관계자들의 분석이다.기조실장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구수석과 5대그룹 기조실장이 만나 정부의 신대기업정책 신노사구상문제등에 대해 논의를하기도 했다. 15일에는 신노사구상의 밑그림을 그린 박세일 청와대사회복지수석과 10대그룹 기조실장이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주요그룹들은 기조실장의 위상이 다시금 높아지면서 기조실도 오히려 강화하는 추세도 보인다. 그룹마다 21세기 경영전략의 일환으로전략사업을 추진하면서 태스크포스나 새로운 직능조직을 잇달아 신설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삼성은 최근 삼성전자에 맡겼던 PCS사업을 비서실에서 다시금 챙기고 있다. LG그룹이 PCS사업 및 사회간접자본(SOC)참여를 추진하고한국중공업 한국가스공사의 인수 추진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전략사업개발팀을 가동중인 것은 기조실이 여전히 그룹의 파워집단임을보여주는 사례다.문민정부들어 부침을 거듭해온 기조실. 최근들어 정부가 투명경영을 강력히 밀어붙이면서 기조실위상문제가 다시금 수면위로 부상할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대기업 기조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