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투명경영」. 올해 재계를 휘몰아치고 있는 화두이다. 비자금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재계는 올들어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위해 경영풍토쇄신등 대변신작업에 영일이 없다.물론 이같은 변신작업은 「비자금사건」이라는 외부충격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현재 재계가 직면하고있는 시대상황과 무관치 않다. 개방화, 정보화로 요약되는 21세기를 불과 몇년 앞두고 새로운 경영틀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힘들다는 전략적 면도 충분히 고려돼 있다. 따라서 재계의 대변신작업은 시간이 갈수록 가속도가 붙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경영의 투명성확보에 초점이 맞추어진 재계의 변신작업은 다각적인각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총수퇴진을 통한 경영진의 세대교체, 기업윤리헌장제정, 오너의 지분축소, 전문경영인에 의한 자율경영체제의 가시화, 기조실의 축소내지는 폐지, 일부사업의 중소기업이양등 「변신목록」은 실로 다양하다.◆ 미봉책 아닌 21C경영전략 차원서 접근해야먼저 총수의 퇴진은 지난해부터 가시화되기 시작, 올해초 들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태이다. 현대그룹이 정몽구회장에게 경영대권을 넘겨준데 이어 코오롱 한보 금호 삼미그룹 등이 잇달아 2세 혹은 동생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2선으로 후퇴했다. 정경유착의주역은 다름아닌 창업세대였다는 점에서 이들의 퇴진은 일단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무언가 재벌이 달라지고 있다는 모습을국민들에게 보여주기에는 이 방안이 가장 효과적이어서 너도나도일선퇴진이라는 고육지책을 택했다.한보그룹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보그룹 정태수전총회장은 수서뇌물사건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데 이어 이번비자금사건에서도 총수로는 1호로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로인해 한보그룹은 뇌물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됐고 이를 탈피하기위해서는 정전총회장의 퇴진은 불가피했다는 것이 중론이다.총수의 퇴진과 함께 구습탈피를 위한 내부혁신도 투명경영차원에서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룹단위의 윤리헌장채택이 바로 그것이다.지난해말 현대그룹의 정경유착의 단절과 모든 부조리의 배격 등을골자로한 윤리강령을 채택했으며 이는 정몽구회장 취임이후 「가치경영」으로 가시화됐다. 현대그룹이 총론수준에 머물고 있다면LG그룹은 각론화하고 있는 단계이다.그룹으로서는 처음으로 기업윤리강령을 채택했던 LG그룹은 구본무회장이 취임한이후 「정도경영」이란 기치를 내걸고 각 계열사에공정거래문화추진위원회를 구성, 내부자정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LG의 정도경영은 씨프린스호사건 때 국회의원 및관련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재계의 윤리강령이 아직 체질화되지않고 선언적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소유와 경영의 분리, 기조실 및 사장비서실의 기능제고방안도 현재재계가 안고 있는 과제다. 소유와 경영 분리문제는 재벌정책이 거론될 때마다 정부에 의해서 단골메뉴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이 개인지분 1.8%를 단계적으로 처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외 다른 그룹들은 이 문제에 대한 확답을 회피한채 잰걸음을 보이고 있다.소유와 경영분리는 2, 3세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상속세등세법을 엄격히 적용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으로 인위적 지분축소등 획기적 조치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그룹들은전문경영인체제강화를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다. 그룹들이 선단식경영에서 벗어나 소그룹별(삼성) 혹은 CU별(LG)로 전문경영인에 의한자율경영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오너의 독단경영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돌려보자는 포석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너체제, 투명성 저해요소 개선해야기조실 및 사장비서실의 축소내지 폐지는 현재 정부가 투명·정도경영을 위해 재계에 강력히 주문하고 있는 사항이다. 기조실 및 사장비서실은 그동안 오너 독단경영의 전위조직이었는데 정부는 이의개선을 통해 투명경영을 유도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같은 정부의 입장은 지난달 29일 구본영대통령경제수석이 5대그룹 기조실장들을 만나 전달했다. 구수석은 이 자리에서 『오너체제는 신속한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경영의 투명성이 저해되는단점이 있다』고 언급,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제도개혁에 나서줄 것을 간접적으로 요구했다.이에따라 동아, 진로그룹과 포철은 이미 기조실을 축소내지 폐지했으며 비서실권한을 하부조직으로 꾸준히 이관해왔던 삼성그룹은 현재 대대적인 비서실조직개편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재계의 마음은 그리 편치 못하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그룹기조실은 장기경영전략을 마련하는등 순기능도 없지 않았다』며 기조실축소내지 폐지가 일방통행식으로 추진될 경우 자칫경영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아무래도 이미지쇄신에 약효가 좋은 것은 일부사업의 중소기업이양이다. 그래서 올초 사업계획을 발표하면서 그룹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일부사업의 중소기업이양안을 포함시켰다. 현대그룹은 정몽구회장이 취임이후 박상회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을 만나 중소기업업종을 앞으로 과감히 이양하겠다고 다짐했다. 삼성그룹과 LG그룹은21세기 경영전략 차원에서 일부사업의 중소기업이양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삼성그룹 이건희회장은 최근 미국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서 수종(樹種)사업에 대한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LG 구본무회장은 1등달성이 불가능한 사업은 전략적 철수를 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전략적 중요성이 낮은 사업에 대해서는 과감히 포기하거나 중소기업으로 이양하겠다는 의지가 두 회장의 발언속에는담겨있다.재계가 현재 추진중인 투명경영은 전문경영인체제와 오너십간의 조화를 어떻게 이뤄내 이미지 개선효과를 극대화하느냐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그 해법을 찾기가 간단치 않아 재계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재계관계자들은 『투명경영은 비자금파문을 잠재우기 위한 미봉책이 아니라 21세기 경영전략차원에서 접근되는 것이바람직하다』고 주문했다. 재계가 내놓을 구체적 실천움직임이 기다려지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