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파리 홍콩 도쿄 서울. 세계 어느 도시에 사는 사람이든 입고있는 옷은 비슷하다. 브랜드조차도 그렇다. 서울에 사는 청소년이리바이스 청바지를 입듯 런던의 청소년이나 싱가포르의 청소년, 멕시코시티의 청소년도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는다. 패션에는 국경이없다. 세계화가 가장 빨리 진전되는 분야가 패션이다. 국내에서 팔리지 않는 옷은 해외에서도 팔리지 않듯 이제 해외에서 팔리지 않는 옷은 국내에서도 팔리지 않는다. 패션업체들이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국내 패션업계의 해외 진출은 크게 네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 수출과 해외 생산방식, 고유 브랜드수출, 디자이너의 해외 컬렉션 참여 등이다. 이중 OEM생산과 중국베트남 인도 등 인건비가 저렴한 지역에서 의류를 생산하는 해외생산방식은 진정한 의미에서 「패션 세계화」라고 할 수 없다. 패션 세계화란 궁극적으로 우리의 이름으로 세계시장에서 승부하는것을 뜻하기 때문이다.고유 브랜드로 해외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체로는 데코를 들 수 있다. 데코는 일본 도쿄와 오사카 고베 나가사키등에 6개의 매장을 마련했으며 중국에도 북경 대련 상해 천진 등의주요 백화점에 9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데코의 일본 진출은특히 성공작으로 꼽힌다. 데코는 지난해 일본에서 13억원의 매출을올렸으며 올해는 1백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매장도 올해안에 직영 10개점과 전문점 10개점으로 확장할 계획이다.나산은 중국에서만 20여개의 매장을 운영중이다. 북경 사이트백화점에 「꼼빠니아」, 천진의 이세탄백화점에 「조이너스」, 상해의이세탄백화점에 「꼼빠니아」와 「조이너스」가 각각 입점해 있다.백화점 매장외에 나머지 매장은 15∼20평 내외 규모의 직영 혹은대리점이다. 신원도 중국의 상해와 북경 광주 심양에 매장을 가지고 있으며 올해부터 홍콩과 일본 지역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서광은 중국 북경 무역센터내에 「디크라세」를 판매하는 직매장을개설했으며 상해와 심양에도 직매장을 운영중이다.한섬은 안테나숍 형태로 상해에 재고물량을 판매하는 할인매장을개설했는데 앞으로 본격적인 매장 확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회사는 또 올초 일본에 한섬재팬이라는 현지법인을 설립, 일본시장진출도 본격화하고 나섰다. 한섬은 한섬재팬을 통해 올해안에2∼3곳의 의류매장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몇몇 일본 백화점과 논의중이다.◆ 의류업체 주공략 대상국으로 중국 일본선호이랜드그룹도 세계화에 관심이 많다. 이랜드그룹 매장은 현재 미국의 뉴욕과 LA, 중국의 상해와 심양 심천 및 대만 등 세계 각지에퍼져 있다. 신세계백화점이 중국 상해에 진출하면서 신세계 상해점에 덩달아 입점한 국내 의류업체도 많다. 데무 레쥬메 EnC 까슈 소르젠떼 칼립소 빈폴 인디안 등이 상해 신세계백화점에 매장을 마련한 국내 브랜드들이다.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도 활발하다. 진태옥 이영희 이신우씨가 프랑스 파리에 매장을 마련, 세계 패션 중심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트로아조씨는 뉴욕에, 루비나는 일본 오사카에서 뷰띠끄를 운영중이다.국내 패션의 해외진출 유형은 크게 두가지로 대별된다.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패션 선진도시에 매장을 마련하는 경우와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나가는 형태다.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주력하는 쪽은 주로 디자이너들이다. 진태옥 이신우 이영희 트로아조루비나 등의 디자이너들이 파리 뉴욕 도쿄 등 세계 패션도시에 자신의 매장을 마련한 것은 패션선진국에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다.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발돋움하기 위한 발판인 셈이다.반면 이랜드그룹이나 신원 데코 등 의류제조업체들은 판매거점 마련 차원에서 해외에 나간다. 의류업체들의 주공략 대상으로는 중국과 일본이 가장 선호된다. 중국은 이웃국가인데다가 세계에서 가장큰 의류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게 매력이다. 중국은 본품을 판매하는 정식 매장뿐만이 아니라 국내에서 팔다 남은 재고 물량을 처분하는 할인매장 설치지역으로도 각광받고 있다.일본시장은 중국과는 다르다. 중국의 패션 수준이 세련됨이나 꼼꼼함에서 국내에 뒤지는 반면 일본은 세계 4대 패션강국의 하나다.일본에서 확고한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은 브랜드 세계화의 첫 시험대를 통과했다는 의미다.중국이 시장 잠재력을 보고 선택된 지역이라면 일본은 브랜드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채택된 시장이다. 국내 의류업체가 4대 패션강국중 일본을 브랜드 세계화의 시발점으로 삼는 이유는 일본이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 시장보다는 더 친근하기 때문이다. 일본 시장에서 성공하면 일단 유럽이나 미국 등 다른 패션선진국을 공략할 수 있는 노하우는 갖췄다고 인정된다. 중국은 대량판매 지역으로, 일본은 브랜드 제고 거점으로 국내 의류업체의양대 세계화 교두보가 되고 있는 셈이다.해외 매장 마련과 함께 국내 디자이너들의 해외 컬렉션 참여도 활발해지고 있다. 파리 밀라노 뉴욕 도쿄 등 세계 4대 컬렉션에 참가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디뎠다는 의미다. 컬렉션 참가는 홍보 효과뿐만이 아니라 제품 판매와도 곧바로 연결된다. 해외 컬렉션에는 세계 각국의 바이어들이 참관, 작품을 평가하면서 원하는 의류를 즉석에서 주문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들은 주문받은 양만큼만 생산, 판매한다. 컬렉션은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인 동시에 비즈니스의 장이다.◆ 일본서 성공하면 패션선진국 공략도 쉬워국내 디자이너들이 가장 많이 참여하는 컬렉션은 파리 컬렉션이다.이영희 진태옥 이신우 장광효씨 등 4명이 파리 컬렉션을 통해 세계적인 디자이너로의 성공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이영희씨는 93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파리 컬렉션의 문을 두드렸으며 이후 올 봄 컬렉션까지 7회째 계속 파리 컬렉션에 참여해 오고 있다. 이영희씨는 특히 딸인 이정우씨와 함께 파리 컬렉션에 참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진태옥씨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파리 컬렉션에 여성복과 남성복을 함께 내보냈다.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밀라노 컬렉션에 참가하고 있는 김영주씨는컬렉션 참여를 계기로 밀라노에 쇼룸 및 사무실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진출을 위한 현지법인 설립을 추진중이다. 트로아조는 93년부터뉴욕 컬렉션에 진출, 뉴욕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도쿄 컬렉션에참가하고 있는 디자이너로는 김동순씨를 들 수 있다. 93년부터 정기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일본 패션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명성을 쌓고 있다.4대 컬렉션 외에도 한혜자씨가 뉴욕의 기성복 전시회인 뉴욕 프리미에르에 올봄 컬렉션까지 2회째 참여하고 있으며 심상보씨는 파리의 신인디자이너 등용문인 워크숍에 올 3월에 참여했다. 심씨는 올가을에는 파리 기성복 전시회인 프레타포르테 참가를 시도할 계획이다. 박춘무씨와 강진형씨도 올가을 파리 프레타포르테 참가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우리나라는 70년대 이후부터 쭉 의류수출국이었다. 의류산업은 오늘날의 산업화와 공업화를 성공시킨 주역이다. 그러나 의류수출의대부분은 OEM방식이었고 우리 고유의 이름없이 물건만 만들어주는제조업 수준에 불과했다.OEM수출은 이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우리보다 인건비가 싼 동남아시아와 중국으로 OEM 물량이 몰리면서 우리나라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의미의 의류수출국으로 변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자체 브랜드 수출국으로의 변신이다. OEM생산이 2차산업이라면 자체 브랜드 개발은 정보와 아이디어가 결합된 3차산업이다. 자체 브랜드 개발은 해외 시장에 대한 출사표로만 의미있는것은 아니다. 국내시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고유브랜드 개발은 절실하다. 세계의 모든 사람이 비슷한 옷을 입는 시대에 가장 쉽게해외시장을 점령할 수 있는 분야도 패션이고 가장 쉽게 국내 시장을 빼앗길 수 있는 산업도 패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