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부터 6시까지 4시간. 이 짧은 시간동안 매일 새로운 고객5명을 포함해 최대 30명을 만난다. 그중에는 연간 보험료가 4억7천만원이나 되는 사람도 있고 기만원인 계약자도 많다. 언뜻 보기에상관없는 이들이 모이면 하나의 엄청난 기록이 된다. 신규계약 3백59억7천만원, 연봉 3억4천9백만원이 그것이다. 10여년간 죽도록 직장생활을 한 샐러리맨이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10년 넘게 저축해야 모을까 말까한 돈이다.이런 기록을 만든 주인공은 누구일까. 재벌오너나 팔자좋은재벌2세? 잘나가는 광고모델? …. 모두 틀렸다. 정답은 생활설계사가 주인공이다. 삼성생명 대림영업국의 신정재씨(42)가 바로 기록을 세운 장본인이다.신씨의 기록은 생활설계사를 시작한지 5년만에 이뤄낸 것이라서 더욱 놀랍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생활설계사는 줄잡아 35만여명. 이중에는 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도 적지 않다. 매년 이맘 때쯤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억대 설계사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도 아직3억원을 넘은 사람은 없다.무엇이 신씨를 혜성처럼 나타난 신데렐라로 만들었을까. 특별한 비결은 『찬스를 놓치지 않고 활용했다』는 말로 정리한다. 94년6월에 도입된 개인연금제도와 올부터 시행된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영업의 기폭제로 삼았다는 것이다. 『상황변화에 따라 불안을 느끼는고객의 입장에서 한발 앞서 전략을 짜 영업을 나선게 효과를 봤다』는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다.이런 것만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설계사라면 대부분 이런 것들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씨의 설계사관을 물어봤다. 『설계사는 걸어 다니는 은행(walking bank)으로서고객이 필요로 하는 토털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대답이 노타임으로 나온다. 『설계사 입장에서 세일하지 말고 고객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부연설명이 뒤따른다. 『설계사는 전문성을 살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보험아줌마」라는 인식으로는 프루덴셜이나 네덜란드 등 남자설계사들이 활동하는 회사들과 경쟁할 수 없다』는 설명도 잊지 않는다. 『고객이 한사람이라도 남아 있는한 설계사 일을 계속할 것』이란 신씨의 고객제일주의 정신이 이런 기록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빽」이 됐다는 점을느끼게 하는 대목이다.그렇다고 신씨에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위의 아는 사람들로부터 『이런일 하려고 은행을 그만뒀느냐』는 냉소적 반응을얻었을 때 아픈 마음을 달래야 했다. 내로라 하는 씨티은행의 차장을 그만두고 다시 잡은 일이 인식이 「낮은」 설계사냐는 비아냥으로 들렸기 때문이다.처음 시작했을 때 고객을 발굴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앉아서 찾아오는 고객을 상대하던 「버릇」으로 인해 찾아다녀야 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 더욱이 남들이 이미 확보해 놓은 시장에서 신참자가새로 뚫고 들어가기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랐다. 남들보다 배이상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나 신씨는 은근과 끈기의 지구력으로 이런 어려움을 극복했다.이런 경험이 『영업을 하다보면 좌절을 겪을 때가 많다. 세일즈맨은 자기관리가 뛰어나야 한다』는 체험적 설계사관을 만들 수 있게했다.「난다신」. 신씨가 씨티은행에서 한창 날릴 때인 20대 중반에 얻은 별명이다. 「신난다」를 그녀의 성을 감안한 영어식 표현이다.모든 일을 신명나게 하는데서 비롯된 말이다. 『자신감을 갖고 신명나게 일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게 신씨의 인생철학이기도 하다.신씨의 올해 나이는 42세. 54년생이니까 우리식으로 하면 43세이다. 그러나 신씨는 굳이 42세라고 한다. 『37세부터 나이를 안먹기로 했다』는 신씨에게 한 살은 고집할 만큼 소중한 것일까. 그녀는이같은 「미련스런」 집착이 「어리석은」 고집이 되지 않도록 건강관리에 열심이다. 매일 아침 딸 셋의 학교갈 준비를 해야 하는바쁜 중에도 등산을 빼놓지 않는다. 18년의 구력을 자랑하는 테니스와 아직 중급(핸디 28)에 불과한 골프에도 관심이 많다.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올 때까지 판다』는 신씨. 열정과 자신과 집념으로똘똘 뭉친 신씨가 앞으로 어떤 신기록을 보여줄지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