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말 재벌때리기 신드롬」잇단 부도사태와 금융위기로 하루하루 피를 말리고 있는 기업들은정부가 대기업 그룹에 대한 강력한 규제정책들을 최근 시리즈로 쏟아내자 「그럴줄 알았다」는 분위기다. 『한보사태 책임의 화살을기업의 과다한 차입경영 쪽으로 돌릴 때부터 알아봤다. 게다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재벌을 길들이려는 정책을 구사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지 않는가.』 모 그룹 관계자의 반응은꽤나 냉소적이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 6월이후 발표된 정부의 소위신재벌정책들은 마치 예정된 시나리오처럼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기업들의 목을 조여가고 있다. 신재벌정책 제1탄은 지난 6월말 재정경제원이 발표한 「기업재무구조 개선방안」. 재경원은 이 방안에서 차입금이 자기자본의 5배를넘어서면 초과 차입금에 해당하는 지급이자에 대해선 손비로 인정해주지 않겠다며 과다차입 기업에 대한 철퇴의지를 천명했다. 또대기업그룹이 선단식 경영을 못하도록 그룹 비서실과 기조실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전경련, “기업의욕 북돋우는 정책” 요구2탄으론 같은 계열기업군에 대한 여신한도를 금융기관 자기자본의45%로 제한해 기업들의 자금조달규모를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이어공정거래위원회는 8월초 부당내부거래 범위를 자금과 인력지원까지확대하기로 했다. 드디어 최근엔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을 통해 오너중심의 기업지배구조에까지 메스를 대겠다는의지를 분명히 했다. KDI는 8월18일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및기업지배구조의 선진화」를 21세기 국가과제로 선정하고 대기업그룹 총수에 법적 경영책임을 지게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처음엔 기업들의 지나친 빚경영을 겨냥해 재무구조 개선안들을 내놓으며 목을 서서히 조이다가 종국엔 대기업그룹의 급소인 오너체제에칼을 대는 식인 셈이다.그렇다면 정부는 왜 정권말기에 재벌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일까. 재계는 정치적인 복선에 주목하고 있다. 출발부터 그랬다는 것이다. 재계는 신재벌정책의 시발점을 한보사건 이후 지난 5월30일김영삼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로 본다. 김대통령은 이 담화에서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와 지나친 차입경영 제한을 통해 경제구조를바꾸는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정부가 기본적으로 한보사태를 대기업의 무분별한 차입경영에서 비롯된 경제문제로 축소해석해 접근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것. 정치자금이란 뇌관과 연결돼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한보사태의본질을 비껴가기 위해 정부가 우회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시각도그래서 대두하고 있다.또 정권말기에 재벌을 길들이는 고전적 레퍼토리의 재연이란 견해도 있다. 대기업정책을 강공으로 몰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계를 손아귀에 틀어쥐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내놓은 대부분의 방안들이 시간적으로 다음 정권에서 입안돼 시행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어서 더욱 그렇다. 과거 정권의 경우도 임기말에 공정거래법 등을 강화해 대기업들을 옭아맸던 전례가 있다.어쨌든 정부의 신재벌정책이 현실에서 얼마나 먹혀들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시기 자체가 경제불황기로 적절치 않은데다 재계의 반발 강도도 예전 같지 않아서다. 그렇지 않아도 재계는 전경련을 중심으로 『기업의욕을 북돋우는 정책도 모자랄 판에 대기업에 부담만 지우는 정책은 절대로 안된다』며 정부를 향해그 어느때 보다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PB 출신, '신재벌정책 3인방'강경식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취임이후 모든 경제정책은 철저하게 강부총리의 주도아래 이뤄지고 있다. 신재벌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에 강부총리가 경제기획원(EPB)에서 주요국장과 차관보를 지낸 시절에 함께 일했던 김인호 경제수석과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이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재계에서 메재벌정책3인방」으로 불린다.김수석과 전위원장은 강부총리와 직접 같은 라인에서 손발을 맞춘적은 없다. 강부총리가 기획원 차관보시절 김수석은 물가국의 과장을 지냈고 전윤철위원장은 초대 공정거래과장을 지냈다. 이형구 전노동부장관 한이헌의원 강현욱전농림부장관등 당시 강부총리의 핵심측근에 비하면 다소 거리가 있는 편이다. 그러나 『강부총리 재직시절 대부분의 부하 공무원들이 동조자였다』는 측근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들도 강부총리의 경제철학에 물들어 있었을 법하다.이들은 공교롭게도 서울법대와 고시(4회)동기이고, 과거 경제기획원 기획국출신들이 보기에는 『대그룹에 대한 규제밖에 모르는』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선임자와 후임자관계다. 특히 전위원장은사무관시절 법제처에서 경제기획원에 스카우트돼 신설된 공정거래과의 초대과장(담당관)과 공정거래국장(심의관)을 지냈고 공정위로 확대된 후에도 상임위원을 역임, 「공정거래의 어머니」로 자인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대기업정책을 포함한 모든 경제정책은강부총리가 오래전부터 갈고닦아온 소신에서부터 비롯됐고 김수석과 전위원장이 이를 보완내지 집행하는 관계로 보는게 타당하다.현 경제팀의 수장인 강부총리가 대그룹에 대한 강경론자라는 주장에 대해 핵심측근들은 펄쩍 뛴다. 그는 「프로(친)-대그룹」도아니지만 「안티(반)-대그룹」도 아니고 단지 시장경제-개방-자율론자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강부총리의 정책중 금융실명제보완과 생명보험업에 대한 5대그룹진출허용 등은 대그룹들의 요구와 상통한다는 것. 또 국내시장점유율을 기준으로 대기업을 규제하는 정책을 포기해야하며 은행도 주인을 찾아줘야한다는 것이 강부총리의변함없는 소신이라는 주장이다.『규제의 이면에는 규제로 인해 보호받는 기업이 있게 마련이다.규제철폐를 추진하다보니 규제의 보호막과 정부지원에 익숙해진 기업에는 결과적으로 반기업적으로 비쳐질 뿐이다.』 강부총리는 시장경제론자일뿐이라고 강조하는 한 측근의 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