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과 국제전자센터 등 PC 조립업계에 환율 비상령이 떨어졌다.환율폭등이라는 충격파에 대해 이렇다할 완충 내지는 여과장치를갖고 있지 않은 영세 조립업체들이 대책을 못찾고 있다. 중소 조립업체들은 평소 부품 재고를 많이 갖고 있지 않다. 일주일 혹은 길어야 열흘 단위 부품을, 그것도 소규모로 보유하고 있는게 보통이다. 이때문에 영세업체들은 환율이 오르면 오른 만큼을 빠른 시일내 판매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이러한 현상은 특히 국산화 비율이 낮은 부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서 전혀 생산되지 않는 CPU(중앙처리장치)의 경우 달러 환율이 9백원대였을 때는 MMX 166MHz 가격이 14만5천원선이었으나 1천7백원대에는 23만원까지 치솟았다.펜티엄Ⅱ 266MHz는원래 68만원 정도였던 것이 한때 1백40만원까지 올랐다. 국내 제품이 있기는 하지만 조립업체들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하드디스크의경우 3.2GB(기가바이트) 가격이 23만원에서 35만원선으로 올랐다.세계 1위의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는 메모리도 8만원에서 13만원(32MB SDRAM)으로 뛰었다. 다만 국산화 비율이 높은 모니터(17인치)는 3∼4만원 정도 소폭 올랐다.이에 따라 조립세트의 가격도 최근 두달사이에 큰 차이를 보이고있다. 가장 보편적인 사양이라고 할 수 있는 MMX 166MHz에 32MB 메모리, 3.2GB 하드디스크, 3D VGA 비디오 카드, SB 16 사운드카드,33.6Kbps 모뎀, 24배속 CD롬, 고급형 17인치 모니터 등으로 시스템을 꾸밀 경우 11월초에는 1백80∼1백90만원선이었으나 지금은 2백10∼2백2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거의 20%나 오른 셈이다.◆ 오전·오후 가격다를 정도그나마 이 정도의 가격 인상은 아직 일부 부품의 가격이 움직이지않고있기 때문이다. 국산화 비율이 각각 달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어렵지만, 어쨌든 PC 가격을 결정하는 주 요소들인 메인보드나 비디오 카드, 사운드 카드, 모뎀 등도 국내 공급업체들의 재고가 소진되는 올초쯤에는 불가불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모뎀은국산화율이 30∼40% 정도에 불과해 꽤 오를 전망인 반면 CD 드라이브는 국산화율이 상당한 수준이어서 큰 변동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종합적으로 볼 때 환율이 조만간 안정되지 않는다면 앞서 예를든 시스템의 조립 가격은 올 1월 중순께에는 최고 2백80∼2백90만원선까지 오를 수도 있다는 게 상인들의 예상이다.상황이 이렇다보니 시장 풍속도도 많이 달라졌다. 얼마 전만하더라도 사양만 말하면 견적서가 즉각 나오다시피했지만 이제는 견적서를 작성해놓지 않고 있다. 가격이 하루하루가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환율제한변동폭이 없어져 널뛰기 장세가 연출되곤 했던 때는오전 가격과 오후 가격이 달랐다고 한다. CPU같은 제품은 한때 아침 저녁 사이에 최고 5만원까지 차이가 났었다는 후문이다.가격이 올랐으리라 예상했기 때문인지 당연히 손님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용산 선인상가에서 비교적 규모있는 조립업체인 (주)사람과 셈틀 대표 김정기씨는 『통상 12월말부터 신학기초까지가 성수기지만 올해는 매우 추위를 타고 있다』면서 『96년 연말 경기가전년도에 비해 70% 가량 줄어들었는데 97년 연말에는 전년 동기 대비 80% 이상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이미 상당수의 업소에서는 이번 겨울 방학을 마지막 승부처로 보고있다. 연중 가장 경기가 좋은 철이므로 한번 기대를 걸어보되 경기가 없으면 가게 문을 닫는 등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김씨는 『요즘에는 1주일에 2개 조립하기도 힘들다』며 『사람과 셈틀보다 작은 업체는 더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조립업체를 괴롭히는 것은 불경기만이 아니다. 대기업 PC와의 가격차가 좁혀져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도 견디기 어렵다. 엎친데 덮친 격이다.지금까지 고객들이 조립업체를 찾게 만든 요인은 업그레이드가 용이하다는 점과 자신의 취향에 맞춰 조립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A/S의 불리함을 감수하는 대신 저렴한 가격으로 보상받는다는 점 등에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 제품 가격은 아직 오르지 않고 있다. 비슷한 사양으로 조립제품과 대기업 제품을 비교해볼 때 현재 양자간의 가격차는 크지 않다. 기껏해야 20∼3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기술진보 따른 가격인하’ 돌파구될지도대기업이 PC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각도로 파악할수 있다. 우선은 환율이 크게 오르기전에 구입해놓은 재고가 남아있어 즉각적인 가격인상 요인은 없다는 것이다. 또 많은 업체들이겨울 방학 특수를 노려 대대적인 할인 판매에 돌입했기 때문에 중간에 가격을 변경하기가 쉽지 않은 점도 있다. 이밖에 대기업 제품은 권장 소비자가와 실제 판매가가 매장마다 천차만별이어서 가격변경의 의미가 그렇게 크지 않은 측면도 있기는 하다.그러나 대기업 제품 역시 환율이 안정되지 않는한 가격인상은 피할수 없다. 대기업 제품의 수입품 비율은 평균 30∼4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재고가 떨어지거나 세일 기간이 지나면이 부분에 대해 오른 환율을 적용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삼보컴퓨터측은 올리더라도 한자리수 % 이상은 안 올릴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LG도 최대 10%를 크게 초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대우측도 인상을 검토중이기는 하지만 얼마 정도 올릴지에 대해서는아직 결정된바 없다며 시장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전하고 있다.대기업들이 수입품 비율이나 환율 상승폭에 비해 판매가 인상폭이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은 그만큼 탄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즉 A/S나 교육, 광고, 이윤 등을 줄이면 가격을 적게 올리더라도충분히 대응 가능하다는 얘기인 것이다.용산 조립업체들은 1천2백원선이 자신들의 환율 마지노선이라고 보고 있다. 1천5백원선이면 만들 수도 없을뿐더러 만들어봐야 팔리지않을 것으로 본다. 1천7백원선이 계속되거나 그 이상이면 대기업도손을 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게 정설이다. 극심한 불황속에 3백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주고 컴퓨터를 살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아무리 컴퓨터가 시대적 필수품이라지만 먹고 사는 생필품까지는안되기 때문이다.용산이나 국제전자센터에는 사실은 벌써 내놔야할 가게들이 널려있다. 만일 올 봄까지 환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들 조립 PC메카는 최악의 경우 일대 공동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게상인들의 우려다.그렇다고 돌파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인텔 등 CPU 업체가 저가 정책을 펴고 있어 이로 인한 가격 인하폭이 환율 상승폭을 상쇄할 정도가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또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가격이계속 떨어져 온만큼 기술진보가 급속하게 일어나면 활로는 열릴 수있다.하지만 이같은 희망사항이 하루 이틀에 현실화될 수는 없는 일이고보면, 조립업계는 당분간 환율 한파를 정면으로 맞을 수밖에는 없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