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재 에넥스 회장은 스키광이다. 겨울철이면 주말마다 어김없이가족과 스키장으로 향한다. 찬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쾌감은 도심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털어내는데 그만이다. 일단 스키장에 갔다하면 최소한 30차례이상 리프트를 탄다. 하루 최고 67번이나 오른적도 있다.스키를 배운건 4년전. 환갑이 되던 해이다. 둘째 아들 부부가 용평스키장에 모시고 간다기에 마지못해 따라갔다가 설경과 스키어들의멋진 포즈에 반했다. 그 자리에서 배우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노인네가 웬 스키냐고 주위에서 말렸지만 그의 도전정신은 아무도 꺾지 못했다.이같은 도전정신은 그의 사업역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사업에처음 나선 것은 71년 서울 신정동에서였다. 생산제품은 스테인리스싱크대. 당시엔 고급 싱크대를 전부 수입해 왔는데 이를 국산화하겠다고 나선 것.제조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위생도기류를 수입해 팔고 있었다. 국산은 조잡했다. 자신이 직접 제조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막판에 위생도기 대신 싱크대로 방향을 틀었다. 도기는 자본투자가 적어 위험부담이 적은 반면 발전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봤다. 반면 싱크대는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품목이지만 성장성면에서 훨씬 유망하다고 판단해서였다.초창기에 일본 이탈리아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을 다니며 제품에 대해 연구, 품질을 웬만큼 올려놨다. 브랜드는 오리표로 정했다.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도무지 팔리질 않는 것이었다. 싱크대는 아파트를 비롯한 입식부엌문화의 산물. 당시엔 아파트가 별로 없을때인만큼 싱크대의 수요가 적을수 밖에 없었다. 장래성은 있지만당장 팔리질 않았다.설상가상으로 K그룹이 거북표라는 브랜드로 싱크대시장에 뛰어들었다. 직원들은 경쟁사가 싱크대 시장을 독식하기 위해 가격을 후려치고 있으며 오리표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며 불안해했다.그는 싱크대는 업종 특성상 대기업에 적합한 분야가 아니니 걱정말라며 직원들의 동요를 막았다. 그의 예상은 먹혀들어 몇년만에 K그룹은 싱크대 사업에서 손을 뗐다.◆ 기업제휴확대로 해외개척 나서이어 그는 입식부엌의 장점을 설교하고 다니는 전도사역할을 했다.주부들이 모인 곳엔 어김없이 그가 나타났다. 그러길 몇해. 여의도를 시작으로 점차 아파트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강남등지에 하루가멀다하고 아파트가 올라갔다.아파트붐은 곧 싱크대 붐으로 이어졌다. 76년부터 78년까진 하루도안빠지고 야근을 해야 할 정도로 물건이 달렸다. 공장이 비좁아지자 충북 황간에 3만평의 부지를 구입, 이곳으로 옮겼다.극도로 경기가 침체됐던 80년대초반엔 경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87년엔 극심한 노사분규에 휘말려 공장폐쇄라는 고통을 받기도했다.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성장가도를 달리던 오리표는 92년 기업이미지 통일화작업(CI)을 통해 제2의 도약에 나선다. CI에 나선 것도도전정신의 발로라고 할수 있다.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오리표라는상호와 브랜드를 갖고 있는데 이를 에넥스라는 신규상호로 바꾼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도대체 몇십억원을 들여가며 사명과 브랜드로고 등을 바꿀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게 임직원과 대리점들의 주된반응이었다. 더욱이 오리표는 주부들 가운데 99%가 알고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다.그럼에도 밀어붙였다. 단순히 얼굴을 바꾸는게 아니라 제품과 기업문화 이미지를 통째로 바꾸지 않으면 제2의 도약은 불가능하다는판단에서였다.CI작업과 더불어 전장 1백20m짜리 전자동 자외선경화방식 직접광택라인을 도입, 기존제품보다 50% 저렴한 가격의 도장제품을 개발했다. 또 튼튼하지만 투박했던 종전제품과는 달리 세련된 감각에첨단기능을 부가한 다양한 신제품을 대거 출시했다.소재및 도장기술 첨단기능의 신제품 개발을 위해 중앙연구소도 개설, 매출의 10%를 연구개발비로 쏟아부었다.전략은 기가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CI작업을 마친뒤 에넥스의 매출은 급신장, 연평균 20%이상의 높은 신장률을 기록하며 지난해엔 1천1백91억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올해는 1천3백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연속적으로 히트상품을 개발한데이어 금년에도퍼스트클래스라는 부엌가구가 굿디자인제품과 히트상품으로 뽑힐정도로 좋은 성과를 거둬 효자상품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해외시장공략에도 공세적으로 나서 중국 북경에 3개의 대리점을 열었고 천진에 전시장을 개설하는등 시장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뿐만 아니라 일본과 필리핀등 동남아지역, 호주 미국 등에도 대리점을 개설키로 하는등 해외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덕분에 수출도지난해 7백만달러에서 올핸 1천만달러로 늘 전망이다.◆ 다각화보다 전문화 주장그는 사업을 도전적으로 해왔지만 그렇다고 여러 분야에 나서진 않았다. 부엌가구 한우물을 팠다. 사업다각화에 대한 유혹이 많았어도 그때마다 부엌가구분야의 세계 제패를 꿈꾸며 자제해왔다. 이같은 한우물전략은 우직하게 보였지만 IMF구제금융시대를 맞아 서로 다른 분야로 다각화에 활발히 나선 많은 기업들이 맥을 못추며주저앉는 것과 비교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박회장은 이제 2001년 매출 5천억원, 세계 10대브랜드 진입이라는포부를 갖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치밀한 중장기계획도 수립해놓고 있다.우선 미국 캐나다 호주 홍콩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 대한 수출확대와 이중 일부지역에 생산거점마련, 외국선진기업과의 기술제휴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생산기술은 이미 세계수준에 도달해있지만 디자인력은 조금 뒤진다는 판단에서이다. 이를 위해 98년중 이탈리아및 독일의 톱브랜드 수준의 업체와 디자인부문 제휴를 맺고일본업체와 인테리어분야 기술제휴도 맺을 예정이다.부엌가구 업계 최초로 기업을 공개한 에넥스는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과 15년이상 장기근속사원 1백37명을 대상으로 주식매입선택권(스톡옵션)제를 도입, 실행하고 있다. 사기진작과 동기유발을 통해자연스럽게 중장기비전을 달성하자는 취지에서이다.또 토요격주휴무제를 도입했고 각종 복리후생제도를 만들었다. 한때 파업과 직장폐쇄까지 경험했던 노사는 이제 회사발전을 위해 협력하는 모범적인 체제로 바뀌었다.「사업을 할때는 자신이 잘아는 연관분야에서 시작하라. 스스로 전문가가 되기 전에는 절대로 어떤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경영모토를 갖고 있는 그는 다각화보다는 전문화가 한국기업이 나아갈 길이라는 주장을 20년이상 줄기차게 해오고 있다. 굳이 다각화에 나서려면 자금과 기술 인력면에서 능력을 충분히 축적한 뒤 뛰어들어야 한다는게 그의 지론이다.또 기업은 무리한 차입경영보다는 건전한 재무구조를 갖추기 위해노력해야 하며 수출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요즘과같은 IMF시대를 맞아 더욱 힘을 얻어가고 있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