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선 상식을 초월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대기업이나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게 그동안 한국에서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기업그룹도 은행도 쓰러지고 있다. 환율이나 금리도 상상을초월할 정도로 급등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선 경영 역시 상식을 뛰어 넘어야 한다. 과거의 고정관념과 상식대로 경영을 해선 위기를극복할 수 없다. 특히 경영계획을 세우는 것에서부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사실 기업 경영의 탈상식화는 이제 선택조건이 아니다. IMF시대 한국 기업엔 숙명이 됐다. 과거엔 보통 연말에 다음해 경영환경을 예측하고 경영목표를 설정한 뒤 목표달성을 위한 수단을 강구하는 방식으로 경영계획을 짰다. 그래서 「전년대비 몇% 매출신장, 순익증가」와 같은 계획 안이 나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선이런 식의 경영계획이 먹혀들지 않는다. 경영환경 자체가 워낙 불확실해 예측의 의미가 상실되고 있어서다. 상식을 뛰어넘는 환경변화는 기업들에 경영환경 예측과 목표설정을 불허하고 있다.◆ 정교한 마스터플랜 더 이상 의미 없다그렇다면 위기상황에서 경영계획은 어떻게 수립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기존의 관행처럼 정교하게 마스터플랜을 짜는 것은 더 이상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 보다는 어떤 환경변화에도 대응할 수있는 대략적이고 유연한 계획을 세울 것을 권고한다. 치밀한 계획과 일사불란한 실행을 축으로 하는 경영패턴에서 탈피해 환경변화를 유기적으로 감지 해석 결정 실행하는 체제를 구축해야한다는 얘기다.『천천히 정확하게 하는 것보다는 대충 어느 정도만 정확하게 하면서 빨리 하는 것이 낫다』(퍼시 버나빅 ABB회장)는 말을 새겨봐야한다는 것이다. 불확실한 위기의 시대에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경영계획 기법들을 소개한다.●연동계획(Rolling Plan)전략수립을 계속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영행위로 보고계획 실행 점검 수정을 동시에 진행시키는 경영기법이다. 경영전략수립을 단선적인 과정으로 보지 말고 변화하는 시장의 니즈를 그때그때 반영해 수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경영계획을 실행해 나가면서도 환율이나 금리 등 계획의 전제조건이 바뀔때마다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기본적으로 전략적 사고를 통해 지속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감시체제를 가동해야 함은물론이다.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할 대상은 △고객의 니즈 충족여부△상품의 핵심적 가치 창출 △경쟁우위 및 고객확보 여부 △핵심여건의 변화 등이다. 이는 차별화돼 있는 목표시장 등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때 특히 유용하다.연동계획을 성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회사는 미국의 휴렛 페커드(HP)다. 이 회사의 지속적 성장의 배경엔 바로 연동계획적 전략수립이 숨어 있다. 실제로 휴렛 페커드는 분기별로 계획을점검하고 수정한다는 원칙에 따라 모든 경영전략 수립을 계속적인활동으로 전개하고 있다.●시나리오 기획장래에 일어날 사건의 줄거리를 몇가지의 가상적인 시나리오로 구성해 어떤 경우라도 신속히 대응하는 경영기법. 시나리오 작성을위한 중요변수는 「영향력」과 「불확실성」이란 두가지 요인에 따라 분류한다. 이를 바탕으로 영향력이 크고 불확실성도 큰 변수를전제로 시나리오를 만든다. 또 영향력은 크지만 불확실성이 크지않은 변수는 전제조건화한다. 반면 영향력이 적은 변수들은 불확실성과 무관하게 무시해 버린다. 이렇게 작성된 시나리오에 따라 여러 대안을 갖고 있으면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즉각 대응할수 있다.시나리오 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의 정유회사인 더치 셸. 이회사는 지난 70년대초 장기 경영 전망을 하면서 아랍 국가들의 담합에 의해 유가가 급등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 가상 시나리오를작성하기 시작했다.당시 시나리오 기법을 활용해 오일쇼크가 발생했을 경우의 행동요령을 만들었다. 73년초엔 원유확보 탱커운항 정유공장가동 가격전략 등을 포함한 전사적 시나리오 계획을 완성했다. 그러던 차에 73년10월 실제로 제1차 오일쇼크가 터졌다. 상세한 시나리오 경영계획을 갖고 있던 더치 셸이 다른 석유회사와 달리 기민하게 대응한것은 물론이다. 미국의 7대 석유메이저 회사중 최하위였던 더치 셸은 1차 오일쇼크후 2위로 급부상했다.●로드 맵(Road Map)전개법정글속에서 지도를 보며 목표물을 찾아가듯 경영을 해나가는 기법.여기선 최종 목표와 그 목표달성을 위한 중간 징검다리만 사전에확정한다. 나머지 실행계획은 환경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최적의 방안으로 결정한다. 예컨대 설날 고향인 부산을 내려간다고 생각해보자.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지도에 줄을 그어가며 귀성 길을결정해 놓고 출발을 해보았자 별 소용이 없다. 설날 귀성길이야 말로 어디가 막히고 어디가 뚫릴지 예측불허이기 때문이다. 이때는최종 목적지(부산)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 경유지(대전 대구 등)만대충 결정해 놓고 일단 출발하는게 상책. 그러면서 교통방송을 들으며 덜 막히는 길을 찾아 고속도로와 국도를 번갈아 가며 내려가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바로 이처럼 최종 목표까지의 실행계획을 그때그때 상황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바꿔가며 경영을 해나가는게 로드 맵 전개법인 것이다.미국의 반도체 칩 회사인 인텔은 로드 맵 기법을 잘 활용하고 있다. 이 회사는 신제품 개발 때 대충의 설계만 확정하고 우선 개발에 착수한다. 그 다음 2개월마다 시장동향과 경쟁사 제품 특징 등을 파악해 칩의 설계와 세부기능을 추가·삭제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완성하고 있다. 인텔이 80%이상의 시장점유율과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는 바탕엔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상품 개발 방식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원점기획(Zero Based Planning)과거 실적이나 전례에 구애받지 않고 완전 제로 베이스에서 계획을수립하는 것. 전년도 경영실적에 기초해 전략계획을 세우던 기존방식에서 벗어나 불필요한 업무를 과감히 정리하고 목표사업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다. 특징은 경영계획 수립이 밑에서부터 위로진행된다는 점. 일단 부서별로 개별 업무계획을 세우고 이를 사업부별로 종합한 뒤 그것을 바탕으로 우선 순위를 매겨 회사 전체의경영계획을 확정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전사원이 경영계획을 짜는데 참여한다. 하지만 예산은 계획 수립과 반대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짜여진다.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사는 집적회로(IC)를 생산해 고도성장을 구가했지만 70년대초 경영위기를 맞자 제로 베이스 기획을도입,과감히 사업을 정리하는 등 구조조정을 전개했다. 그 결과 매출액은 감소했지만 순이익은 늘어 경영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원점기획은 기업만이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에선 정부도 예산책정과중장기 공공사업 계획 수립때 적용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