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서울지방법원 제50민사부는 국내최초로 「소비자파산」신청을 받아들였다. 친정오빠의 빚 보증을 선 현모씨(44)를 파산자로 선고한 것. 현씨는 친정오빠의 사업실패로 2억5천7백만원을 대신 물어줘야 할 처지가 됐다. 현씨는 14년간 간호사로 근무하던 병원을 퇴직하면서 받은 3천4백만원으로 급한 불을 껐다. 그런데도채권자들에게 계속 시달리자 법원에 구제신청을 냈다. 서울지법은부동산이나 금융재산 등이 한푼도 없고 시아버지집에서 거주하는것을 확인한후 파산선고를 내렸다. 이들의 경제상태로는 더이상 채무를 갚기가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씨는 법원의 판결로나머지 1억8천3백만원에 대해서는 갚을 책임이 없어졌다. 현씨가족을 괴롭히던 빚보증의 망령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이처럼 빚보증이나 카드연체 등으로 과대한 채무를 지게 된 소비자가 더 이상 빚을 갚을 능력이 없을 경우 법원에 호소하는 제도가바로 「소비자파산」이다. 과다한 채무 때문에 한 개인과 가족의삶이 파탄에 이르는 것을 방지하자는데 의의가 있다고 법조인들은설명한다. 최근 기업의 연쇄부도에 따른 실직사태와 20%대를 상회하는 고금리로 자금운용에 차질을 빚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이에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추세다.●재산 은닉시 인정 안해소비자파산은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회사가 부도나거나 해고당한샐러리맨, 자영업자, 가정주부, 학생 등도 가능하다. 친척이나 친구의 빚보증을 선후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을 때도 신청할 수 있다. 「소비자파산」제도의 취지가 바로 은행대출이나 신용카드 빚보증 등으로 능력을 벗어난 부채를 짊어진 채무자에게 경제적으로갱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즉 「소비자파산」신청은 특혜가 아니라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는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다만 법원은 고의로 재산을 은닉하거나 의도적인도박 등으로 채무를 지게 될 경우에 한해서는 신청을 받아들이지않는다.●빚잔치후 나머지 부채는 탕감채무자가 소비자파산을 선고받기 위해서는 거주지 민사지방법원에신청하면 된다. 신청이 접수되면 법원은 채무자의 재산액수에 따라두가지 결정을 내린다. 먼저 채무자의 재산이 있을 경우다. 법원은「파산관재인」을 선임한다. 파산관재인은 법원으로부터 채무자의부동산이나 보석 그리고 금융상품의 조사를 의뢰받는다. 조사가 끝난 다음 이를 채권자들에게 나눠준다. 한마디로 법원은 파산절차를통해 성대한 「빚잔치」를 벌이게 된다. 빚잔치를 하고 남은 채무에 대해서는 면책결정을 통하여 채무자의 변제책임이 사라진다. 가령 전재산이 5억원인 A씨의 부채가 10억원일 경우 법원은 채권자들에게 5억원을 나눠준후 나머지 차액에 대해서는 갚지 않아도 된다는 면책결정을 내린다.현씨의 경우처럼 재산이 한푼도 없을 경우는 파산신청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파산폐지결정을 내린다. 즉 파산관재인을 선임하여 조사할 재산이 없으므로 파산신청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파산절차를 종료하고 면책결정을 통해 채무를 면제시켜 준다.●각종 공·사법상의 권리 제약받아법원은 파산신청자의 부채를 탕감시켜주는 대신 각종 공·사법상의권리를 제약한다. 파산자는 우선 공민권 행사에 제약을 받는다. 국가공무원법이 규정하는 공무원이 될 수 없다. 일반 행정공무원은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에의 출마자격이 없어진다.사법고시 응시자격도 박탈당한다. 또한 사립대학교수나 사립학교교사 등 국가공무원법에 준해 선발되는 자리에 임명되지 못한다. 변호사가 소비자파산을 선고받으면 자격이 박탈된다. 이밖에도 주식회사의 이사에 취임할 수 없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신용카드를 발급받기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한마디로 채무를 탕감받는 대신 거의 모든 활동에서 제약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소비자파산제도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도 이같은 응보적 성격 때문이다. 그러나 샐러리맨의 경우는 파산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이후의 급여와 상여금은 채권자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이것으로 재기를노리면 된다.●정상인으로 복귀하기이같은 공·사법상의 권리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법원에 면책신청을 제출해야 한다. 현씨처럼 재산이 없는 경우 파산폐지결정후1개월 이내에 신청할 수 있다. 파산관재인이 선임되는 경우에도 면책신청을 할 수 있다. 이때에는 법원에 채권자 명부를 제출해야 한다. 면책신청이 접수되면 법원은 파산자를 심문하고 채권자들의 이의신청 및 의견을 청취한후 면책여부를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허위채무△사기파산△허위진술 등이 없으면 면책결정을 내리는게 관행이다. 면책결정이 내려지면 채무자는 채권자들에 대한 부채상환의무가 없어진다. 또한 면책이 확정되면 파산자는 파산선고를 받기전과 동일한 신분으로 돌아간다. 즉 공·사법상의 불이익이 없어진다.●소비자 파산제도를 둘러싼 논란현행 소비자파산제도에 대해서는 상반된 입장에서 문제가 제기되고있다. 일부 법조계인사들은 소비자파산이 채권자들의 희생아래 채무자의 재기를 돕고 있다고 비판한다. 파산자에 대한 철저한 사후관리가 되지 않아 의도적으로 면책적 특권을 악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자기책임으로 과도한 신용을 얻고 자기 스스로 면책하기 위해 소비자파산을 신청하는 것도 국민법감정에 어긋난다고주장한다. 즉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 법적 제도를 통해 채무부담에서 벗어남으로써 합법적인 채무탈피 수단을 마련해 주는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이에 대해 대법원의 한 재판연구관은 『소비자파산은 일시적인 과다채무로 고통받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기회를 제공한다는데 의의가 있다』면서 『빚보증이나 신용카드의과다사용에 따른 가정파탄비용이 채무를 면제시켜 주는 비용보다크다』고 긍정적 측면을 강조했다.현행 소비자파산제도가 소극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파산법의 취지에 맞지않게 파산자에 대한 제약이 너무 많다는 입장이다. 강현중변호사는 채권자의 채무변제에 동원되는 파산자의 재산범위가 너무넓어 재기기회가 박탈되고 있다고 주장한다.『한국에서는 △의복 가구 부엌가구 등 생활필수품 △2개월간의 식료품 △의료기구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채권자의 채무변제에 동원된다. 반면 미국은 △7천5백달러 미만의 주거용 부동산 △1천2백달러 이하의 자동차 △4천달러 이하의 가구△각종 연금이나 실업급여중에서 최소생활에 필요한 액수 등은 압류재산에서 제외된다. 한국보다 파산자가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셈이다.』강정면 변호사도 『IMF의 한파로 직장인들이 소비자파산을 신청할가능성이 많아지고 있다』며 『개인 또는 한 가정이 붕괴되는 것을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소비자파산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벼랑끝에 내몰린 서민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