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지속된 경기침체와 기업들의 잇단 부도, 지난 연말에 불어닥친 IMF한파와 기업들의 고용조정 등으로 실직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전국의 실업자는 55만6천여명.실업률은 2.6%에 이르렀다. 올해는 오히려 실업자가 더욱 늘어날전망이다. IMF와의 합의에 의해 실업률이 5%로 유지될 경우 1백10만명에 육박하는 실업자가 생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동계 일부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2백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노동시장에 실직자들이 급증하면서 덩달아 재취업도 그만큼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1월중 각 지방노동관서에 접수되는 구직신청자가하루 평균 2천5백명으로 평소보다 5배이상이나 증가했다. 서울지방노동청 고용안정과의 한 직원은 『실업급여신청을 위해 지난해에비해 4∼5배이상 늘어난, 하루 3백여명씩 찾고있다』고 말했다.실직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재취업을 하기가 어려워진다는것. 지난 3일 노동부가 내놓은 「고용보험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중에 구직자 8만6천여명중 취업에 성공한 실직자는 1만1천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급·중견경력인력의 취업알선창구를 운영하는 경총의 자료에는 지난해 구직등록을 한 1천7백4명중 2백23명만이 취업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구인업체 1천82개에서1천9백96명을 필요로 한데 반해 턱없이 낮은 채용실적을 보인 것이다.재취업이 이렇게 미미한 것은 취약한 고용정보망, 구직자와 구인업체간의 견해차, 경제난에 따른 기업들의 구인회피 등이 원인이라는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고용정보망의 경우 현재 취업정보를 알아볼 수 있는 공공정보망으로는 지방노동청 및 지방노동사무소의 직업안정과, 서울 대구 광주부산 인천 대전 경기(수원) 등 6곳의 인력은행, 시군구청의 취업정보센터, 한국산업안전관리공단의 지방사무소 등이 있으나 구직자의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기에는 부족하다는게 구직자들의 말이다. 그래서 경총 헤트헌팅업체 신문사 취업전문지 PC통신 등이 공공정보망을 대신해 고용정보의 젖줄역할을 하기도 한다. 실업급여신청과 구인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의 한 노동관서를 찾았다는김경태씨(29)는 『구인기업안내판에 게재한 정보가 PC통신에서 얻은 정보를 그대로 인용해 붙여놓고 있다』며 『취업정보제공에 너무 무성의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과유불급’ 재취업 신중하게인력의 수요자와 공급자에 있어 서로 필요로 하는 직종의 차이도원활한 재취업을 가로막는 벽이다. 『기술인력을 찾는 구인업체가많은데 반해 구직자들은 대개 일반사무직이 많아 실제 채용이 잘이뤄지지 않고 있다』는게 경총 인재은행 김영희씨(36)의 말이다.구직자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차장급 경리사원을 채용하려고 경총에 들른 (주)다락원의 정효섭사장(59)은 『대기업출신은 중소기업을 꺼리거나 근무조건을 따지는 등 인력충원에애로가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의 영세성을 설명하며 채용을 하려해도 보수가 낮다며 고개를 젖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취업정보기관의 관계자는 『구인자와 만나 대뜸 보수나 근로조건 등을 따져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며 『대개 그런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를 자주 본다』고 말했다.재취업을 위해 구직알선창구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하향재취업이나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관련교육기관을 찾는 발길도 늘고 있다. 「고용보험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에 전직 고위임원이나 관리자출신중 같은 직종으로 자리를 옮긴 사람은 38.1%인 5백38명에 불과했다. 반면에 나머지는 하향재취업으로라도 직장을 구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사무직원으로 재취업한 사람은 32.5%인 4백59명이었으며, 기능원으로 취업한 사람은 6.9%인 98명이었다. 관리직에서 단순노무직으로 옮긴 사람도 4%인 57명이나 됐다.하향재취업뿐만이 아니다. 정비사 1종운전면허 요리사 등 창업이나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증부터 무역협회의 국제비즈니스전문가과정과 같이 재취업에 유리한 교육과정에 실직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하향재취업이나 자격증취득을 통한 재취업·창업을두고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계속된 실직상태로 생계가곤란해져 단순기능직의 자격증을 이용한 재취업이나 하향재취업을한다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지만, 주위시선이나 실업에 대한 불안감등으로 섣불리 재취업을 하는 것은 앞뒤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특히 앞으로는 정리해고시 해고노동자를 우선 채용한다는 리콜제가도입될 예정이어서 경기회복과정을 신중히 고려해 재취업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한양대 경제학부 김재원교수(48, 노동경제학)는 『준비된 실직자만이 먼저 좋은 직장을 차지할 수 있다』며 『어려울수록 돌아가는지혜, 서둘지 말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IMF구조조정이 언제 끝나느냐가 중요하지만, 성급히 하향재취업을 하거나단순히 자격증에 매달려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가 후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아울러 『오랜 기간 교육과 실무로 숙련된 화이트칼라출신 실직자들의 섣부른 하향재취업은 일에 대한 몰입도·동기유발·생산성의저하는 물론 실직과 재취업의 악순환만 가져오는 인적자본의 감가상각으로 개인 기업 국가 모두에게 큰 인력손실』이라는게 김교수의 주장이다. 따라서 『조급하게 움직이기 보다는 심사숙고하고,고용적격자로서의 능력(employability)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연세대 김농주취업담당관도 『고급인력이 하향재취업이나 단순기능의 자격증을 갖고 창업이나 재취업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노동인력의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김취업담당관은 또 자격증을 판매사 속기사 워드프로세서 등 재취업에는 다소 유리하지만 반드시 취업을 보장하지는 못하는 것, 선물거래사와 같이 취업에 유리한 자격증, 회계사 국제변호사 등과 같이 무조건 취업이 가능한 자격증등으로 구분하고 『자격증을 맹신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느냐로 판단되는시대로, 가능하다면 능력을 더 쌓고 세계경제의 틀안에서 경쟁할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는게 김취업담당관의 말이다.◆ 실직, 히든카드 갖출 기회재취업을 준비하거나 실직걱정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지금 「히든카드」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장기적으로 본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보다 나은 조건의 직업을 가질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더 뛰어나다고 인정받을수 있는 능력을 갖추라는것이다. 경총 고급인력정보센터의 전대길소장은 『이제 평생직장은없어지고 평생직업이 있을 뿐』이라며 『화이트칼라출신 실직자들의 경우 직무관련 자격증을 따두거나 전문지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헤드헌팅업체인 KK컨설팅의 김국길사장(55)은 『외국기업의 경우깊이만 갖춘 인재는 재고하는 경향이 있다』며 『깊은 지식과 함께MBA와 같이 경영전반에 대한 넓이와 관리능력을 갖춘 인재를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국내외를 불문하고 MBA와 같이 보다전문적이고 폭 넓은 공부를 해두는 것이 장래를 위해 더없이 좋은준비라는 것이다. 결국 실직기간을 전화위복으로 바꿀 수 있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직장인의 경력 관리·개발컨설팅업체인 BH커뮤니케이션의 김부흥사장(41)은 『재취업은 총칼없는 전쟁』이라며 『실직전에 자기능력을 개발하고 경력을 관리하는게 최선이지만 실직을 당했다면 안식년이라고 생각하고 푹 쉬는 여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마냥 쉬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더라도 퇴직금을 자기계발에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이제는 진짜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로 외국에서 MBA코스를 밟거나전문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재취업방법』이라는게 김사장이 실직자들에게 주는 장기적인 자기관리법이다.한편 재취업노동시장에서 인력이동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앞으로 정리해고시 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김재원교수는 이제껏 재취업이나 고용조정이 기업 스스로의 경영판단에 근거해 자율적으로 이뤄졌다기 보다는 정부의 사회보장차원에서 이뤄져 관리직의 슬림화만 강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앞으로는 정리해고시 기업이 직원의 실적과 업무수행능력으로 판단해 결정하고 능력을 갖춘 실직자에게는 리콜에 대한 확실한 언질을주는 것이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