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에 놀아난 유치원학생」. 미국의 JP모건그룹 자회사인모건개런티(모건개런티트러스트오브뉴욕)와 금융파생상품 거래를하다 1억8천9백만달러(약3천억원)를 물어줄 위기에 처해있는 SK증권 한남투신증권 LG금속 등과 보람은행을 가리키는 말이다. 선물·옵션·스와프등 파생금융상품에 대해 무지에 가까울 정도로밖에 알지 못한 SK증권 등이 능수능란한 모건개런티에 「걸려」 엄청난 손해를 볼 지경에 빠져있기 때문이다.SK증권 등이 모건개런티의 「유혹」을 받은 것은 지난해 1월초. 동남아시아 국가의 채권에 투자할 경우 3∼4%포인트의 금리차를 얻을수 있다는 제안이 들어왔다.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할 경우엔 7%정도의 추가수익도 올릴 수 있다는 「미끼」도 함께 붙어왔다. 「뭔가 돈되는 것」에 혈안이 돼있던 국내금융기관에는 군침이 도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당시 국내의 회사채수익률이 연13% 정도였는데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선 17%선을 넘고 있었다. 태국은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도 거의 없었다.』(박문규 한남투신증권 이사)꿩도 먹고 알도 먹는 장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당시는 유행병처럼 진행되던 금융국제화 흐름을 타고 국내금융기관들이 앞다퉈 동남아등지로 투자에 나설 때였다. 투자금융사가 무더기로 종합금융으로 전환되면서 국제업무가 허용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홍콩의 카이탁공항에는 동남아에서 투자계약서 사인식을마치고 개선장군처럼 귀국하는 금융기관사람들이 북적댈 정도였다.』(강창희 대우증권상무)모건개런티의 제안을 받은 SK증권은 한남투자신탁 LG금속 등과 함께 3백억원(당시 3천3백50만달러)을 들여 역외펀드를 하나 설립했다. SK증권이 2백억원을 내고 한남투신과 LG금속은 각각 50억원을내 말레이시아의 라부안에 「다이아몬드펀드」를 만들었다. 다이아몬드펀드는 투자에 나서기 위해 모건개런티에서 5천3백만달러를 차입했다. 차입에 대한 담보용으로 다이아몬드펀드의 주식을 제공했다. 여기까지는 다른 역외펀드와 똑같다.비극의 씨앗은 5천3백만달러를 차입하며 모건개런티와 맺은 TRS(Total Return Swap)계약. 다이아몬드펀드는 엔화를 차입하면서 엔화가치가 상승할 경우에 대비해 엔화콜옵션을 매수했다. 엔화가치가어느수준 이상으로 오를 경우엔 옵션가격만큼만 손해를 보되 하락할 경우엔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다. 이것도 통상의 환율변동을 피하기 위한 헤지방법이다.문제는 바로 엔차입금액의 5배에 달하는 규모의 엔·바트화 선물환계약을 체결한 것. 당시까지 바트화가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을 이용해 엔화가치가 변동할 경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그런데 지난해 7월 태국이 「갑자기」변동환율제를 시행하면서 엄청난 손실이 생기게 됐다. 바트화가치가 엔화에 비해 50%가량 폭락하자 선물환계약에 따라 2백50%의 손실이 발생하게 되고 5천3백만달러의 2.5배인 1억3천만달러 이상의 추가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투자시 위험성에 대한 정확한 인지 필수모건개런티는 이런 계약을 하면서 만약의 경우 투자금액을 회수할수 있도록 보람은행에 대해 지급보증을 하도록 했다. 보람은행은지급보증을 해주는 대가로 SK증권등에서 출자확약서를 받았다. 또동남아통화위기 이후 손실이 우려되자 추가담보를 요구해 SK증권은지난해 11월28일 4백억원상당의 유가증권을 제공했다.SK증권등이 이같이 엄청난 위험성을 갖고 있는 TRS계약에 「서명」했다는 것은 거의 납득이 가지 않는다. 모건개런티는 투자에 실패하더라도 손실을 한푼도 입지 않도록 짜여진 반면 국내기관들은 위험에 발가벗은 채로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성질 급한 아마추어가환상에 젖어 덤벙대다가 노련한 프로에게 한방 얻어맞은 셈이다.이번 사건은 두가지 점에서 반성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나는 위험성격에 대해 명확한 인식이 없었다는 점이다. 통상 파생금융상품 계약을 할 때는 「Risk Disclosure」라고 해서 예상되는위험상황을 구체적으로 적은 뒤 쌍방이 확인한 뒤 서명한다. SK증권과 한남투신증권은 문제가 된 지금에 와서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받지 못했다』고 강변하고 있으나 계약서에 어느정도의 리스크가 기술돼 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다른 하나는 부대조건(Underlying)이다. 여기엔 「부도요건(Eventof Default)」이 세세하게 담겨 있다. 가격이 10%만 떨어져도 부도로 본다는 것등을 규정한 것으로 자세한 경우엔 깨알같은 글씨로 A4용지로 1∼2페이지나 된다. 심하면 3∼4페이지에 달하는 경우도있다. 계약할 때 세세하게 정해두지 않으면 사후에 분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파생금융상품, 회사 존립 좌우금융파생상품은 자칫 잘못하면 회사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한다. 지난 95년1월 1백년 역사를 자랑하던 베어링증권이 리슨이라는 딜러의 투자실패로 네덜란드의 ING그룹에 넘어간게 대표적인 예다. 손실금액이 큰만큼 잘못됐을 경우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미국의 P&G는 지난 94년4월 뱅커스트러스트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해 손실금액의 83%인 1억5천만달러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깁슨그리팅스도 94년4월 뱅커스트러스트를 상대로 소송을 내 1천4백50만달러를 보상받는다는데 합의했다.이들 회사가 소송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은 「상품내용을정확히 설명받지 못했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제시한 덕택이었다.SK증권등이 소송을 해서라도 손실규모를 최소화하려는 것은 여기에희망을 두고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경우는 일반기업체와 다르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똑같이 「전문가」로 게임을 벌이는데몰랐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가 과제로 남아 있다.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3∼4%포인트 정도의 이자놀이를 할수 있다는 「소탐(小貪)」에 눈이 어두워 동남아에 투자한 국내금융기관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유가증권에 투자된 금액은 약 41억~56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있다. 이중 이번 사건처럼 파생금융상품에 관련된 것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역외펀드에 출자한 규모가 약10억달러에 이른다는 증권감독원의 조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그러나 파생금융상품은 투자금액은 적더라도 차입금에 의한 추가손실이 엄청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피해규모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분석되고 있다. 이번사건에서도 투자금액은 3백억원이나 손실금액은 3천3백억원으로 11배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증권업계에선 이번 사건과 비슷한 형태로 손실을 입어 대신 물어줘야 할 돈이 10억~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당국의 대응도 문제다. 국내금융기관들이 해외에서 벌이고 있는 위험한 「파티」에 대해 실태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증감원이 최근 역외펀드 실태조사에 나서 투자금액이 9억9천만달러에이르고 있다는 것만 밝혀냈을 뿐 이들이 얼마를 빌려 어느곳에 투자했는지에 대해선 캄캄하다. 역외펀드의 관할권이 외국에 있기 때문에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SK증권과 보람은행등이 이번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회계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아 피해가 우려되는데도 대책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사전준비는 물론 사후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IMF시대엔 리스크관리가 가장 큰 경영과제다. 걸음마단계에 머물고있는 리스크관리체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게 이번 SK증권 사건의 교훈이다.한 국가의 규제나 세금을 피하기 위해 특정지역에 설립되는 투자펀드. 통상 조세천국(Tax Heaven)으로 불리는 말레이시아의 라이부안등지에 설립된다. 이번에 SK증권 등이 JP모건그룹과 송사를 벌이게된 다이아몬드펀드도 역외펀드다. 역외펀드가 위험한 것은 설립할때의 자본금을 종자돈으로 해서 3~5배의 돈을 빌려 투자에 나선다는 점이다. 또 국가의 규제가 없어 자산운용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실상파악이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 증권27개사는 69개 역외펀드에 9억9천6백만달러를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