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아시아는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세계를 놀라게 했던 「아시아식경제」가 실패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아시아의 경제 기적」을 일궈냈던 아시아적 가치, 아시아적 성장모델, 유교적 자본주의 등이무능과 비효율, 부패의 온상으로까지 평가 절하되고 있는 상황도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아시아식 모델이 실패했다 하더라도 완전 개방과 자유 경쟁으로 표현되는 미국식 자본주의 역시 아시아의「모범」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식 경제의 성공 케이스로꼽히는 국가보다는 역설적이게도 비교적 서구화와 개방이 잘 진전된 아시아 국가부터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대표적인 예가 태국이다. 태국은 수십년동안 자본과 상품 시장을개방하면서 과감한 세계화를 추진해왔다. 그 「세계화」의 보답으로 결국 태국에 돌아온 것은 아시아 위기의 근원지라는 「불명예」뿐이다. 태국의 너무 빠른 개방은 무차별적인 자본의 유입을 불러들여 허약한 태국 내 금융시장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던 셈이다. 반면 전형적인 아시아 경제모델인 싱가포르와 대만 그리고 아직도 자본주의 국가에 대해 어느 정도 폐쇄정책을 유지하고 있는중국은 위기 속에서도 그나마 영향을 덜 받으며 버텨왔다.◆ 고도성장전략·중국 등 위기 주범그렇다면 아시아 경제 위기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미국 MIT대의 레스터 서로 교수는 일본의 경제주간지인 <닛케이 비즈니스 designtimesp=7672>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위기를 「영양 이론」으로 설명했다. 영양떼는 수풀에서 사자 기척만 나도 실제 사자이든 아니든 일단 도망치고 보는 속성이 있는데 아시아가 바로 영양의 속성을 지녔다는 것이다.서로 교수는 영양떼(아시아)에 위기를 몰고온 주범으로 「4마리의사자」를 꼽았다. 첫번째 사자는 동남아시아가 추구해온 고도 성장전략이다. 연 7∼8%대의 성장을 위해 아시아는 해외에서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와 국제 수지 불균형과 통화 절하를 유발시켜 왔다는지적이다. 두번째 사자는 중국이다. 동남아시아의 주력 산업은 노동력 집약적인 경공업이다. 중국은 거대한 인구와 값싼 인건비로동남아 국가들의 수출시장을 잠식해 들어왔다. 아시아 위기의 근본원인이 일본이라기 보다는 중국이라는 주장은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지적돼 왔다. 서로 교수가 지목한 세번째 사자는 아시아의부동산 시장이다. 가난한 개발도상국의 부동산 가격이 풍요로운 선진국 기준을 상회했다는 것은 아시아의 경제가 그만큼 과대평가(버블경제)됐다는 지적이다. 마지막 사자는 아시아의 과대망상적인 팽창주의다. 외국에서 자금을 들여와 화려한 빌딩과 공항 등을 건설하며 자금을 비효율적으로 사용, 낭비를 초래해왔다는 고언이다.결론적으로 아시아는 과대 평가된 버블을 걷어내고 팽창과 성장 위주의 경제 모델에서 돌아서 내실을 탄탄히 다지는데 주력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이런 의미에서 무분별한 서구식 세계화와 개방은 오히려 「독약」이 될 수도 있다. 무분별한 국제단기투기자본(핫머니)의 유입으로금융 기반이 더욱 허약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식 「족벌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도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인도네시아를 낭떠러지로 몰고 있는 「범인」도 권력과 돈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수하르토 「족벌」이다. 아는 사람끼리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적당히 봐주는 자본주의로는 아시아는더이상 위기의 해결 실마리를 찾기가 힘들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