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곬」. 다른 것에 한눈팔지 않고 한가지 일에 몰입하는 것을 말한다. 한나라당 이상희 국회의원(60, 부산 남구 갑)이 그렇다. 과기처장관을 역임한데다 3선의 중진의원이지만 오로지 한 길, 「과학기술」이란 외길에 옹고집으로 천착하는 국회의원이다. 그래서여의도정가에서 「튀는 의원」 「이상한 의원」으로 통하는 외곬이다.지난달 19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이의원은 그날도 국회도서관 지하강당에서 3시간반에 걸친 전자상거래법안 제정을 위한토론회를 마치고 막 사무실로 들어온 참이었다.『정보·기술·지식 등으로 만들어지는 부가가치의 창출이 오늘날의 경제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부가가치들이 거래되는 공간은 시장처럼 구체화되고 형태를 갖춘 공간이아니라 가상의 공간으로, 이렇게 부가가치를 만드는 요소들과 그들이 거래되는 공간을 연구하자는 취지로 만든 모임입니다.』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국회가상정보가치연구회에 대한 이의원의 설명이다. 지난 96년, 이의원이 산파역할을 하면서 만든 모임으로 여야의원 35명(준회원 포함)의 회원을 가진 의원연구단체다.이의원은 여의도에서 일에 대한 욕심이 많기로 소문난 의원중 한사람. 온 나라가 대선분위기에 휩싸였던 지난 연말, 자신이 참여하는국회상임위(통신과학기술위원회)에 한번의 결석도 없이 개근을 한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하는 일도 많다. 정보화특위위원장, 첨단게임산업협회장, 우주정보소년단총재, 발명진흥회장, 영재학회장, 녹색삶기술경제연구원이사장 등등. 이처럼 가뜩이나 많은일을 하고 있는 이의원이 또 일을 벌인 이유가 궁금했다.『역사상 강국의 조건중 하나는 과학기술로 역사가 흐르면서 그와비례해 과학기술도 발전했다. 과학기술이 모든 문제해결의 실질적역할을 했다』며 모임을 만든 동기를 설명했다. 과학기술로 강국을만드는데 한몫을 하겠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뿌리, 다른 분야 조화 이뤄야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가상정보가치연구회가 설립된지 돌을 갓 넘겼지만 정보화, 멀티미디어, 영재육성, 가상대학, 생명공학 등 과학기술과 관련된 화두들을 금과옥조로 삼아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지난해만해도 가상대학, 게임산업, 영재육성, 전자상거래, 기술사양성, 대중교통난해결, 정보산업육성, 국가표준, 생명공학 등을 주제로 13회에 걸쳐 세미나를 열었다.이러한 세미나에서 얻어진 결과들을 바탕으로 이의원은 지난해에영재교육진흥법안, 한국과학기술연구원법, 멀티미디어폴리스육성을위한 특별법, 국가표준기본법, 생명공학육성법개정법률안 등 5개의법안을 상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분위기에 국회가 휩싸여 법안통과가 안됐다』는게 이의원의 아쉬움을 풍기는 말이었다.여의도에서 「과학기술입국」이란 이데올로기전파에 전도사역할을자처하고 나선 이의원이지만 현재와 같은 정치문화속에서 왠지 부대낄 것이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 동료의원들이나 요즘의 정치문화 속에서 어려움이 없는지 궁금했다.『그동안 정치인들이 어느 정도 패거리정치 현실정치에 몰입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앞선 생각」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의원의 말이다. 지금의 노동·금융위기도 이미 예측했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렇지 못해, 즉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정치가 부족해서 생겼다는 것이다.이런 상황속에서 『극히 일부지만 동료의원들로부터 비현실적이라거나 그런 정치는 핵심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듣기도 했으며 그런정치현실이 슬펐다』고. 하지만 『최근 IMF로 시대상황이 변하면서주변 동료의원들이 이해하고 격려를 해준다』는 것이 이의원의 말이다. 그나마 이의원이 힘을 얻는 「보양제」인 셈이다.지난 총선때 부산 남구 갑선거구에 출마했을 때 이의원이 내건 공약도 도로나 다리건설 등이 아니라 기술전문정치 국방정보화 가상대학 등 온통 생소한 말들이었다. 도로나 다리건설이니 하는 것은이제 구·시의원이 할 일이고 국회의원은 국가발전을 위해 일해야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전 선거에 떨어진 경험으로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내건 공약들이었다. 의외로 최고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됐다.『우리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하다는것을 느꼈다』는 이의원에게 기술전문정치에 대해 물었다. 백발에어울리는 선한 웃음을 머금은 이의원은 『정치도 경영』이라며 『민주 독재 등 이데올로기보다 환경 국민건강 복지 식량 산업경쟁력첨단기술 등을 뒷받침해주는 정치』라고 설명했다.크기가 일정한 절대파이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경제라면 기술전문정치는 절대파이의 크기를 키우고 내부갈등을 줄여주는 정치라는 것이다. 정보고속도로나 유전체 관련 법안 등 첨단과학기술을국가경쟁력의 핵심으로 다루는 미국, 기술개발을 바탕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일본, 강택민 이붕 등 엔지니어출신 지도자들이 선도하는 「과학대장정」을 추진하는 중국 등을 예로 들기도 했다.그렇다면 테크노크라트라는 또 다른 계층에 대한 편향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의원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절대 과학지상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과학기술은 뿌리로, 뿌리가 튼튼해야 영양분을 끌어올리고 과실을 맺을 수 있으며 이는 문화 예술 등 다른 분야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기술전문정치 주장, 「정치는 사업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범죄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등 파격적인 발언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한 이의원의 정치관이 궁금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국민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정치인은 이를 위해 국가발전이라는 공약수를 갖고 유권자들에게 표로 심판받고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 이의원의 말이다.정치인이 돈이 필요하다고 이권에 휘말리면 그에 뒤따르는 부패구조의 사슬에 얽매이게 되고 결국 법을 만드는 입법부가 법을 범하는 집단으로 국민들에게 비치게 된다는 것이다. 지역구민들의 경조사에 전보 한 통으로 버텨온 이의원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매달 한차례씩 토론회나 세미나를 개최하다시피 하는 이의원은 정치하는데 있어 자금에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했다. 『가능하면 최소한의 비용을 갖고 치른다는 생각으로 장소도 돈이 안 드는 국회도서관 지하강당과 같은 곳으로 하고 발표자들에게는 교통비나 참석비대신 감사패로 인사를 대신한다』는게 이의원의 설명이다.(이날도 토론회 발표자 8명에게 봉투대신 감사패 하나만 손에 쥐어줬다.)또 식비를 감안해 시간도 오후 2시이후로 잡는 등 비용절감을 가장먼저 고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자인쇄비 등 들어가는 돈이아직도 적지 않아 힘든게 사실』이라는 것이 이의원이 털어놓는 어려움이다.IMF로 모두 허리띠를 졸라맨 요즘, 과학기술에 관한 한 「도사」소리도 시원찮은 이의원이 나름대로 생각하는 탈출구가 무엇인지 물었다. 『튀는 기술, 튀는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면 된다』는 의외로간단한 답이 나왔다. 기술이 제자리걸음을 하면 경쟁력을 잃고 결국 「한국주식회사」의 적자가 누적되며 다른 나라에서 돈을 빌리려해도 빌릴 수 없는 악순환이 계속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