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의 정치불안이 가중되면서 아시아의 경제 위기가 또다른국면으로 악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습니다. 인도네시아 사태가 다른 아시아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십니까.세계 각 나라의 경제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한 국가의 어려움이 다른 나라로 빠르게 파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꼭그렇게 볼 수만은 없습니다. 각 국가의 경제 주체들이 서로 분리된단위로 각자의 경영전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 하나의경제 주체 스스로가 자신의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조절하느냐가오히려 문제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인도네시아가 지불불능(Insolvency) 상태가 되면 아시아 국가를 포함한 많은 나라의 경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위기는 일단 인도네시아에 돈을 빌려준 각 은행들로 분할, 세분화되면서 자체적으로 분산됩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인도네시아에투자한 금융기관이나 기업이 자사에 닥친 리스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의 기업과 금융기관들도 나름대로의 선택권을 가지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는 정도가달라질 것입니다.▶ 현재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IMF 한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대전제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한국기업의 구조조정 핵심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우선 두 가지를 먼저 지적하고 싶은데 첫째는 구조조정에는 단 하나의 정해진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각 기업의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해결책을 연구해야 한다는 말이죠. 두번째는 정부의 각종 조치에 대해 마음 내켜서 따라하는 기업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거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시도해야 한다는 큰 공감대에서 살펴보면 정부나 기업이 함께 추구해야할큰 패턴을 잡을 수는 있습니다. 그 큰 흐름이란 장기적으로 이익이떨어지는 사업은 포기하거나 다른 기업과 전략적으로 제휴, 위험을분산시켜야 하고 핵심사업은 강화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경쟁력이있으면 키우고 없으면 줄여나간다는 것은 세계 어느 기업에나 통용되는 원리입니다. 또 하나 한국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 얘기하고싶은 것은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돈의 흐름을투명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한 기업내에서도 개별 사업부별로 어느부서가 얼마를 쓰고 얼마를 벌어들였는지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한국의 재벌은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가장 먼저개혁해야할 대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 때 한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재벌이 한계에 봉착하게 된 원인은 무엇이라고생각하십니까.저를 포함한 BCG에서는 한국의 재벌 자체가 문제였다고는 생각하지않습니다. 한국의 재벌이라는 경제 모델은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빠른 발전을 이룩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재벌은 한국이 급성장하던 시대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 기간산업에 투자할 수 있게 해줬던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델은 성장위주로 형성됐기 때문에 성장의 폭이 둔화되면 투자 효율성이 크게떨어진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더 이상 급성장이 가능한 개발도상국이 아닙니다. 적절한 때 저성장 시대를 예상하고거기에 맞는 시스템으로 변화를 시도했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위기가 이렇게까지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경제가 큰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기업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차원에서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요.현재가 일상적인 경영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일종의 비상경영 조직, 또는 태스크포스팀(Task Force Team)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경영 방식대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업의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위기에 대처해나가는팀을 구성하는게 효과적이죠. 저희 BCG에서도 위기에 직면한 한국기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위기관리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태스크포스팀을 조직하는데도 어떤 노하우가 있을 것 같은데요.태스크포스팀을 조직하는데 있어서 정해진 원칙은 없지만 탑 매니지먼트(Top management)가 그 조직의 장이 돼서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려 신속한 결정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또하나는 기업 내에서 각 사업별 책임자와 재무 담당자가 협력해서상황에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유동성 위기에서는 재무담당자와 각 부서간의 긴밀한 협조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합니다.한국 기업을 볼 때 우려되는 점 중의 하나는 너무 단기 위기 대처에 급급하다 보니 중장기 비전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쏟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상경영팀을 구성할 때도 그 때 그 때의 특별한 이슈를 처리하는 단기 조직만 염두에 둘 것이 아니라 중장기전략을 수립하는 조직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단기 이슈를 중장기적인 경쟁력으로 연결시켜 통합함으로써 기업전체의 비전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합니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한다고 그 기업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계 시장에 나가서 쟁쟁한 기업들을 이겨야 한다는 더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업의 2∼3년 앞을 바라보는 비전을 가지고 장단기 문제를 함께 조절해나가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현재 한국 재계와 노동계에서는 감원 문제가 최대 관심 사항으로떠오르고 있습니다. 전체 구조조정의 차원에서 볼 때 감원이 어떤효과를 가져오는지 말씀해 주십시오.감원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전체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은 더욱 그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원은 쉽게 감행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실행할 때도 다른 어떤 사안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인원을 감축하기 위해서는 일단 경영진이 원가 구조를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전체 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이고 인원을 줄여도 기업의 전체경쟁력에는 문제가 없는지 철저히 검토해야 합니다. 인원 감축이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감원후에 인건비가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다시 높아지는 기업을 여러차례 봐왔습니다. 사업 구조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사람을줄이는데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감원은 기업에 득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군요.감원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필요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회사의 장기적인 미래를 고려했을 때 감원 뿐만이 아니라 경쟁력 향상도 함께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원과 함께 임직원에 대한 교육과 전체적인 조직의 역량 강화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감원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경쟁력이 없는 사업에 대한 매각이나 축소가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이 때는 필수적으로감원이라는 어려운 결정이 동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감원을 할 때기업 내부의 주관이 너무 많이 작용하는 것도 문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때는 객관적으로 그 기업의 조직을 평가할 수 있는 외부업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출이 최선이라는 목소리가높습니다만.자국의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상품의 국제 가격이 떨어져 수출이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아시아 국가의통화 가치도 함께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수출이 한국의 만능 처방전이 될수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운용 자산에 투자를 하면서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데 자금난으로 인해 한국 기업에 그럴 여력이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국 기업이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단기적으로 투자를 줄일 수도 있고 수출을 늘리기 위해 가격 덤핑을 시도할 수도 있겠지만 기존에 쌓아왔던 기술력이나 상품력을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당장 어렵다고 투자를 소홀히 하면 그동안 축적해왔던 산업 기술에 대한 기반이 금세 허물어질 수도 있습니다.▶ 많은 한국 기업이 유동성 악화로 투자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습니다만.결국 장기적인 수출 증대나 국제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기업으로서는 힘든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 하나를 선택한다면 하나를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일테고요. 이 부분에서도 기업마다 해결책이 다르겠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왜 그 선택을 했는지 명확하게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검토를 통해 왜 이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결정의 과정이 구체적이고 투명하게 정리돼야만 이후 상황에 적절히 대처해 나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