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 아무리 급해도 순서가 있다.양말 먼저 신고 신발 신는 이치일 것이다. 양말은 신지 않고 급한대로 신발만 걸치는 수도 있지만 날씨가 추우면 오래 갈수 없는 것이다.지금 우리는 내일이 보이지 않는 불안감 속에서 위기를 극복하기위해서는 개혁과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배우고 있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져 어쩔 수 없이 하는 변화는 피동적 의미의 구조조정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이 정도로는 나라를 살리지 못할 것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계획을 짜고 구조조정을행동으로 실천해내는 것, 이것이 필요한 때이다. 개혁이라는 거창한 이름도 그 본질은 능동적 의미의 미래지향적 구조조정인 것이다.정부 금융 기업 노동의 4대부문이 구조조정의 대상이라는 점에는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듯하다. 이번에도 정치권력과 언론이 개혁대상에서 빠진 것은 우리 사회의 후진적 권력관계 때문이지만, 어쨌든 4대 구조조정 대상만 두고 볼 때 지금 미시적인 아이디어는 백출하는데 청사진은 없는 형국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그동안 범람한 아이디어 메뉴를 가지고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그리되, 과연그림대로만 하면 잘 되는지 검증하고 국민이 납득할만한 설명이 따라야 할 것이다.개혁의 밑그림을 그릴 때 새 정부가 신경써야 할 대목은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새 정부가 이 그림에서 개혁의 순서를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고 믿는다. 정부 금융 기업 노동의 구조조정은 각각 방을 따로 차리고 추진할 수 없을만큼 서로 밀접한 함수관계가 있다. 그동안 속속 발표된 세부과제들의 면면을 보면 정부 금융 기업 노동의 구조조정이 가지는 상호간의 연관성이 중요함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이러한 과제간 상관관계와 함께 개혁의 순서를 정함에 있어서는 모종의 기준이 필요할 것인데 그 기준이 무엇일까? 우선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책임의 순서를 생각해보면 정치-정부-금융-기업-노동의순으로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책임의 근원을 따져서 개혁을 추진한다면 이 순서에 따르면 된다.그런데 정치는 개혁대상에서 비켜서 있고 정부개혁은 아마도 대충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모양이다. 정부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걸린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남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정치권과 정부보다 책임은 작지만 더 만만한 금융 기업 노동이 되었다.금융 기업 노동의 구조조정만이라도 순서를 제대로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위기발발 이후 처음에는 금융개혁을 강도높게추진하는 듯 했으나 실제로 금융개혁을 행동에 옮기는 속도는 매우느려 우리가 지금 과연 위기상황에 있는지조차 헷갈린다. 그러는와중에 노사정위원회라는 정치적 협상테이블이 마련되어 정리해고입법의 대가로 재벌개혁이 화두가 되었고 빅딜이니 회장실 폐지니어설픈 아이디어에 매달려 입씨름하느라 날을 새고 있다.현재의 위기를 벗어나는 동시에 지속성장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새 정부가 개혁을 추진한다면, 금융개혁 없는 재벌개혁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이야기인지를 절감하고 금융개혁에 1번이라는 번호를 매겨야 할 것이다. 사실 재벌의 구조조정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금융개혁만 제대로 추진되더라도 절반의 성공을 보장할수 있다. 현실적으로 금융개혁이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닐 것이고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지 않고 시장을 통해서만 금융을 개혁할 수는없을 것이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금융개혁이 1번임을 알고 바로 지금 국가역량을 금융개혁에 결집해야 한다.순서라는 관점에서 보면 재벌개혁 안에서도 순서를 지켜야 한다.재벌개혁의 1번은 투명성이고 이에 관한 한 시간을 늦출 필요가 없다. 정부가 재벌의 사업구조 재무구조 지배구조에 특정한 모델을설정해서 이를 강요하려는 허튼 짓을 할 게 아니라 우선 투명성제고라는 1번 과제에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1번 과제도 제대로 하지 않고 2번 3번을 앞당겨 추진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나? 개혁이 더 어려워지기도 하겠거니와 사상누각,용두사미가 될게 뻔하다. 순서를 거꾸로 할수록 좋아하는 것은 기득권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