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최악의 외화난으로 국가부도의 기로에서 헤매고 있던 작년말 미국에선 사상 최대의 M&A(기업매수합병)가 성사돼 세계 기업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M&A의 주인공은 미국내 제4위의 장거리 전화회사인 월드컴과 동종 업계의 2위 기업인 MCI. 4위가 2위를 먹은이번 M&A의 인수금액은 3백70억달러. 한국 돈으론 약 55조5천억원(1달러 1천5백원 기준)을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는 지난해 8월 미국 동북부 일원의 단거리 전화회사인 나이넥스(NYNEX)를 벨애틀랜틱이 인수하면서 수립했던 M&A인수금액 기록(2백56억달러)을깬 신기록이다.이처럼 미국에선 지금 몇백억달러 규모의 회사가 사고 팔리는 초대형 M&A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지난해 미국에서 발표된 10억달러 이상의 M&A건만 1백56건. M&A 총 거래금액은 1조달러를 넘어섰다. 지난 3년간 성사된 M&A건수를 모두 합치면 무려 2만7천6백여건에 달한다. 지난 80년대 10년간 일어났던 M&A건수보다도 많은 것이다. 가히 M&A천국이라 할 만하다.실제로 미국 기업의 역사는 M&A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제너럴모터스(GM) 제너럴일렉트릭(GE)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유수한 기업들이 모두 다른 기업의 매수와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워왔다. 미국에서 M&A는 자연스런 기업활동중 하나일 뿐더러 성장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지금 미국 기업의 세계적인 경쟁력도 그런 M&A의 역사 속에서 찾는 사람이많다. 1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기업의 M&A역사는 그래서 이제 막 M&A분야에서 걸음마를 뗀 한국기업에 참고가 될만한 점이 적지 않다. 지난 1897년이후 크게 4차례의 큰 물결로 분류되는 미국기업의 M&A역사를 선우석호 홍익대 교수의 저서 「M&A」를 참조해정리한다.◆ 제1차 물결(1897~1904년)1883년 미국 경제가 깊은 불황에서 벗어나 회복기에 접어들 무렵제1차 M&A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이때는 대량 생산기술의 확립과설비투자의 대형화가 필요했던 시기. 그래서 M&A도 경쟁기업을 매수해 시장을 지배하려는 의도로 이뤄져 주로 같은 업종안에서의 수평적 결합이 주종을 이뤘다. 제 1차 물결을 「독점을 위한 M&A시기」라고 칭하는 것도 이 때문. 실제로 이 기간중 3천여건의 기업 합병 매수가 이뤄졌는데 이중 3분의 2가 1차 금속, 식품 석유 등 주요 8개 산업에서 발생해 거대기업을 탄생시켰다. 당시 합병으로 세계적 기업이 된 회사는 USX GE 웨스팅하우스 이스트만코닥 듀퐁 아메리칸타바코 등이다. 이들 회사는 합병으로 인해 해당 시장에서 70~90%에 달하는 점유율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같은 1차 물결은 1900년대 초반 조선업에서의 트러스트 붕괴와 주식시장 침체로 급격히쇠퇴했다.◆ 제2차 물결(1916~1929년)2차 물결의 특징은 「과점을 위한 합병」으로 요약된다. 1차 물결에서 생겨난 독점기업에 대항하는 2대, 3대 기업들이 탄생한 것.당시엔 수송 통신의 발달로 원료에서 최종제품에 이르는 모든 공정을 일괄처리할 수 있는 대량생산체제의 이점을 얻기 위해 대규모회사가 작은 회사들을 매수하는 수직적 합병이 활기를 띠었다. 예컨대 US스틸에 대적할 만한 베들레햄스틸은 US스틸에 비해 소규모제철회사였으나 3,4,6,8위의 제철소를 잇달아 인수함으로써 거대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이같은 M&A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자본시장이 호황기를 맞았기 때문.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경제 붐을 타고 증권시장에 막대한 자금이 공급돼 가능했다. 2차 물결중인 지난 26년부터 30년 사이 총 4천6백여건의 기업합병이 이뤄졌다. 이때 커진 대표적인 회사가 IBM 유니온카바이드 등이다. 2차 물결은 지난 29년 주식시장붕괴로 막을 내렸다.◆ 제3차 물결(1965~1969년)주로 복합적인 합병이 많았다. 다른 업종의 기업을 인수 합병해 사업을 다각화하는 형태였다. 대표적인 게 ITT 같은 회사이다. ITT는렌탈카 호텔체인 은행 레스토랑체인 할부금융사 주택건설사 등 서로 관련이 적은 사업들을 비슷한 비율로 영위했다.이는 독점금지법 등으로 인해 수평 수직적 합병이 쉽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업종 기업을 M&A하는 3차 물결에는 경영학의 발달과 컴퓨터의 상용화 등이 크게 기여했다. 과거에는 관련사업에서의 대규모화 정도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됐지만경영기술이 발달하고 많은 경영대학원 석사 출신의 경영층이 형성되면서 여러 업종의 다양한 사업도 한 기업이 총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M&A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3차물결의특징중 하나다. 65년부터 69년까지 5년간 미국내 총 M&A사례는 1만7천건을 넘는다. 1,2차 물결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괄목할만한증가세다.◆ 제4차 물결(1981~1989년)7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감소했던 M&A가 지난 81년을 기점으로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이 4차 물결의 특징은 건수의 증가보다는규모의 증가가 눈에 띄고 적대적 M&A가 크게 늘어났다는 점. 거래규모의 경우 건당 평균 거래액이 지난 80년 2천3백만달러에서 85년6천만달러, 88년 8천5백만달러로 크게 늘었다. 10억달러 이상의 초대형 합병 및 매수도 84년엔 18건에 불과했으나 88년엔 상반기중에만 30건에 달했다. 지난 60년대 3차 물결 당시 복합적인 합병이 중소규모의 기업을 대상으로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업종별로는 석유가스산업이 총액기준으로 81년에서 85년 사이에 일어난 전체 합병중 21.6%를 차지했다. 85년 이후 5년 동안엔 약품과의료설비산업에서 거래가 가장 활발했다.또 80년대 미국에서 적대적 M&A는 기업확장을 위한 적절한 수단으로 인식됐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투기적 활동으로 높은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그 결과 상당수의 기업과 투기적인 투자자들은M&A를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게임으로 간주하기까지 했다.◆ 90년대의 M&A90년대 들어 미국기업의 M&A에선 전략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과거와 같이 단순한 기업 덩치 불리기 차원의 M&A가 아니라 투자수익이나 기업구조의 재편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특히 이런 전략적 M&A는 은행 보험 제약 도소매 부동산 소프트웨어생명공학 항공기제작 등 업종에서 활발하다. 규모의 경제와 기술진보가 빠른 업종에서 M&A가 성황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또 최대 라이벌 업체를 목표로 합병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특징.실제로 PANAM과 TWA 등으로부터 각각 항공노선을 매입한 유나이티드와 델타항공사는 초대형 항공사로 부각했으며 항공기 제작업체인보잉의 맥도널드 더글러스(MD) 합병은 유럽의 에어버스사에 큰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