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가 17일부터 문서편집기인 「MS워드97」의 TV광고를시작한다.이미 지하철에서도 광고를 하고 있다. 주로 컴퓨터전문지를 통하던 사례에 비춰 볼때 상당히 이례적이다. 광고만이 아니다.TV광고를 시작하는 날부터 전국 60개 대학을 대상으로 순회 세미나를 펼친다. 정품과 기능은 똑같고 사용기간만 7월31일까지로 제한된 시험판도 무료로 배포한다.브라우저전쟁에 이어 워드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브라우저전쟁은마이크로소프트와 넷스케이프가 벌인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경쟁이다. 3차례에 걸친 브라우저전쟁은 「익스플로러 4.0」을 계기로 마이크로소프트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5%에 불과하던 익스플로러의점유율을 50% 가까이 높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브라우저전쟁과 워드전쟁은 여러모로 닮은데가 많다. 우선 대결상대가 비슷하다. 직원수 2만2천여명, 연매출 1백13억달러에 순이익규모가 34억달러나 되는 거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상대가 매출액이10분의1에도 훨씬 못미치는 신생소프트웨어업체라는 점이다.브라우저전쟁의 상대였던 넷스케이프의 매출규모는 5억3천만달러이고 워드전쟁의 상대인 한글과컴퓨터 역시 지난해 매출액이 2백억원에 불과하다. 1달러를 1천5백원으로 환산할 경우 1천3백만달러밖에 안된다. 매출규모가 경쟁상대의 순이익규모에도 훨씬 못미친다.◆ 기본 S/W 장악해야 시장 주도다만 워드전쟁은 한국시장을 배경으로 한 국지전이란 점이 다를 뿐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워드프로세서시장을 석권하고 있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한글과컴퓨터에 주도권을 뺏긴 상태다. 지난해 2월 갤럽이 일반인과 기업체들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따르면 아래아한글의 사용률이 75.9%인데 비해 MS워드는 6.5%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지난해 12월 컴퓨터전문지인 PC라인이 구독자들을 상대로한 조사결과와 유사하다. PC라인의 조사 역시 현재 사용중인 워드프로세서로 80.5%가 아래아한글인 것으로 나타났다. MS워드는 11.5%만이 사용중이라고 답했다.마이크로소프트가 브라우저나 워드시장에서 「전쟁」을 벌이는데는그만한 이유가 있다. 브라우저와 워드는 컴퓨터 사용의 기본이 되는 소프트웨어다. 브라우저는 인터넷사용의 기본이 되는 소프트웨어고 워드프로세서는 업무의 기본이 되는 소프트웨어다.기본이 되는 소프트웨어는 손해를 보더라도 사용자수를 되도록 많이 확보해야 한다. 사용자가 많아야 표준을 주도할수 있고 표준을주도해야 신제품개발과 판매에서 유리한 입장에 설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가 대부분 상당한 경쟁력을 갖는 것도 운영체제의 표준을 바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주도하는데서 오는 경쟁우위때문이다.워드프로세서는 당초 「여러 응용프로그램중 하나」였지 「다른 프로그램의 판매로 이어지는 기본 소프트웨어」는 아니었다. 그러나오피스웨어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사정이 달라졌다.오피스웨어는 업무용소프트웨어를 여러개 묶어 꾸러미로 파는 소프트웨어다. 워드프로세서 표계산프로그램 프리젠테이션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돼 있다. 당초 오피스웨어는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묶어파는데 불과했지만 최근들어서는 개별 소프트웨어간 기능이 통합되고 있다. 워드프로세서에서 작성한 문서라도 표계산프로그램에서가공할수 있도록 하는 등 데이터의 호환성을 높였다. 특히 사용자인터페이스를 일관되게 구성해 각기 다른 소프트웨어라도 한 프로그램에 익숙하면 다른 프로그램도 쉽게 친숙해지도록 했다.오피스웨어를 구입할 때는 판매가격 뿐 아니라 기본소프트웨어를보고 구입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글오피스97」은 표계산 프로그램인 엑셀, 「한컴오피스97」은 아래아한글이 중요한 구입동기가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피스웨어시장에서 한글과컴퓨터를크게 앞서고 있지만 MS워드의 부진이 추가적인 시장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한 점이 없지 않았다.인터넷시대는 곧 전자문서의 시대다. 종이로 출력할 때 어떤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아래아한글로 작성한 문서와 MS워드로 작성한 문서를 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전자문서일 때는 사정이 다르다. 아래아한글로 작성한 문서를 MS워드로 읽어들이지 못한다. 역으로 MS워드로 작성한 문서 역시 아래아한글로 읽어들이지 못한다. 몇시간에 걸쳐 깔끔하게 장식하고 표를 만들어 놓아도 워드프로세서의 종류가 다르면 허사다. 그런데인터넷사용이 확산되면서 전자문서형태로 교환하는 일이 잦아졌다.문서교환 수단으로 팩스대신 전자우편이 빠른 속도로 자리잡고 있다.소프트웨어판매는 사용자가 많은 상품이 더욱더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는 전형적인 부익부빈익빈구조다. 사용법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의 확산으로 이 부익부빈익빈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현재의 사용자수대로라면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문서의 80%는 아래아한글로 작성될 것이다.아래아한글을 사용하지 않는 20%는 10건의전자문서를 접수할때 8건은 제대로 읽을수 없다는 뜻이다. 불편을느낀 20%가 아래아한글로 바꾸게 될것이란 추론은 쉽게 나온다. 인터넷사용이 확산될수록 사용률 1위 소프트웨어의 지위는 더욱 공고해 지는 것이다. 인터넷시대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한국시장이 걸림돌이 아닐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상당한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MS워드공급에 나서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브라우저전쟁과 워드전쟁의 다른 점도 있다. 브라우저전쟁은 신기술을 적용하며 벌인 기술개발전쟁이었다. 2.0판부터 최근 4.0판까지 2년사이에 무려 3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매번 판올림마다 적용된 기술의 발전속도도 눈부실 정도다. 단순한정보검색기능부터 동영상검색까지 인터넷을 통한 정보전송과 검색기술의 발전은 획기적이었다. 익스플로러와 내비게이터는 매번 판올림마다 성능을 두고 사용자들의 평가를 통해 승부를 가름했다.반면 워드전쟁의 양상은 크게 다르다. 이미 워드프로세서기술은 오자수정부터 사용자인터페이스까지 상당수준에 이른 상태다. 가장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소프트웨어인만큼 완성도가 높다. 아래아한글이나 MS워드의 성능차이는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브랜드인지도와 사용법의 차이에서 오는 선호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자문서시대 표준주도 경쟁또한 마이크로소프트가 자금력을 연구개발비에 투입했던 브라우저전쟁과 달리 이번 워드전쟁은 단지 판촉비용만 들어간다. TV·지하철광고나 시험판 무료배포 등이 워드전쟁의 주요 양상이다. 한글과컴퓨터 역시 다음달부터「한컴오피스97」이나 「한컴홈97」등의 형태로 다른 소프트웨어들과 함께 묶음으로만 팔던 아래아한글을 단품으로 팔기로 결정했다. 가격도 크게 내릴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번 공세로 국내 워드프로세서시장이 어떻게 재편될지는두고 볼일이다.마이크로소프트의 물량공세에 한글과컴퓨터가 대응할 무기는 많지않다. 국내소프트웨어시장은 내수기반이 취약하다. 정품사용비율이30%선에 불과한 불법복제관행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엔 IMF한파로다른기업들과 똑같이 자금압박을 받고 있다.그렇다고 아래아한글을 해외각지로 수출할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래아한글은 한글이라는 특수성을 기반으로 국내시장을 확보한 소프트웨어다. 국내업체가 외국업체보다 한글처리에 유리한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화시대에 국제적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에서나 아래아한글이지 세계 각지에서는 MS워드다. 외국기업들과 거래할 때는 MS워드가 주종이지 아래아한글이아니다. 국내시장에만 의존한 소프트웨어마케팅의 한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