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경제팀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걱정입니다. 외채만기협상 등외환위기 관리에 나섰던 비상대책위원회 멤버들은 어디로 가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김용환 전비대위위원장이 실제로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식으로 대응하고는 있지만 외국인의 불안감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것같습니다.』(외국계증권사 A이사)지난 2일 지각출범한 김대중 정부의 경제팀에 대한 우려감이 적지않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개혁」이라는 이름아래 중책을 맡고 있어서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다보니 비대위에서결정했던 정책들이 일관성있게 추진될지에 대한 불안감이 나오고있다. 일부에서는 정책에 대한 예측이 어렵다는 불평도 내놓고 있다. 『준비된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고 내각은 준비되지 않은 것 같다』(미국계은행 서울지점장)는 혹평도 있다.전철환 한은총재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1월 『IMF(국제통화기금)는 우리의 희망도 비전의 상징도 아니다. 89년 사회주의 붕괴이후 갑자기 커진 국제(투기)금융자본의 첨병이며 국제경제권력의 대명사일 뿐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경제의 목줄을 죄고있는 IMF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말이다. 전한은총재는 경제학계에서 「운동권」으로 통하고 있다.80년대 운동권학생들의 「필독서」였던 「사회정의와 경제의 논리」 「한국경제론」같은 책을 썼다. 일부에서 『전철환교수가 한은총재로 임명된 것은 최악의 선택』(서울대학교 B교수)이라는 평가가 이래서 나온다.김태동 경제수석은 대통령선거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김대중 대통령후보(당시)의 「IMF재협상론」을 적극 지지했다.(이것이 그를경제수석으로 발탁하게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은총재 참여, 한은독립에 타격입을 듯새경제팀에 대한 불안감은 새로운 얼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과 출신성분등을 안분한 「짬뽕팀」이라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있다. 이규성 재정경제부장관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회위원장은 옛재무부출신이다. 진념 기획예산위원회위원장과 강봉균 정책기획수석은 옛경제기획원 출신이며 김태동수석과 전철환총재는 「개혁이미지」를 가진 재야출신이다.출신성분이 다른 여섯명이 끄는 「6두마차」는 호흡이 잘 맞으면상호보완, 협력을 통해 효율적인 경제정책이 가능할 것이다. 반면쓸데없는 힘겨루기로 무엇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최악의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특히 6두마차가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동정권」원칙에 따라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런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자민련의 김용환 부총재가 이 재경장관과 이 금감위원장의 뒤에서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고 국민회의 쪽에선 진기획예산위원장 강수석, 김수석 등을 통해 주도권을 잡으려고 신경전을 벌이다 보면 꼬일 공산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짬뽕팀의 문제점은 정책결정과정이 복잡하다는 점과 직결되고 있다. 6명의 경제팀이 모두 장관급이다.(정책기획수석과 경제수석은차관급이지만 실권면에서는 장관급에 버금간다) 옛날처럼부총리(재정경제원장관)가 경제팀장을 맡아 정책을 조율하던 것과는 다르다. 사공이 많다보니 배가 산으로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김대중 대통령은 이같은 문제점을 「대통령직할」로 해소키로했다.지난 11일 첫회의를 가진 경제대책조정회의가 그것이다. 대통령이의장을 맡아 현안을 직접 신속하게 챙긴다는 뜻이다. 미국의 국가경제위원회(NEC)를 본딴 것이다. 김대통령은 경제대책조정회의를『지시나 정책결정을 내리는 곳이 아니라 자유스럽게 토론하는 곳』이라고 규정했다. 강봉균 정책기획수석은 『경제부처 실무선에서업무협의가 이뤄질 경우 마땅치않은 것은 1∼2개월이 걸렸다』며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는만큼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진다고 밝혔다.그러나 경제대책조정회의를 중심으로 한 정책결정과정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하나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 정책결정의 범퍼(완충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수석비서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일단 지시를 내리면 해당부처에서는 아무런 토를 달지 못하고집행하게 됨으로써 내각의 기능을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 C국장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 정책의 자율성이 크게 저해된다』며 『경제정책을 청와대가 직접 챙기려는 김대통령의 생각은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또 경제정책조정회의에 한은총재를 참여시키고 있는 것도 문제다.한은독립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한은독립은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이지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은 아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 한은총재가 참석해 어떤 사안을 확정했을때 한은은 어쩔수 없이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한은이 그토록절실하게 부르짖었던 한은독립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는 셈』(모전부총리).이라는 지적이다.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전인 지난 1월18일 TV를 통한 국민과의 대화에서 『위기는 넘겼지만 방심할 때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지난 2월25일의 취임사에서는 『지금은 땀과 눈물이 필요한 시대』라며 고통분담을 호소했다. 국가부도(Default)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으나 외환위기의 전단계로 회복하려면 가야할 길이 멀기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얘기였다.◆ JP총리서리 임명에 행정공백도 문제그러나 김대통령의 이같은 상황인식과 호소는 새정부 출범과 함께상당히 변질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를 총리로 지명, 정국을 꼬이게 만들었다. 「국민과의 약속」을 내세워 거야(巨野)인 한나라당의 적극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명을강행했다. 대통령이 취임해 정권이 교체됐는데도 새정부가 출범못하는 기현상을 낳았다.결국 「총리서리(Acting Prime Minister)」라는 편법을 통해 뒤늦게 내각이 출범했다. 그것도 총리서리는 장관제청권이 없어 물러나는 고건 전총리의 제청을 받아서 말이다. 「헌법도 지키지 못하는무력한 정부」라는 식으로 대내·외 이미지가 크게 악화된 것은 물론이다.(그렇다고 숫자를 내세워 총리인준을 거부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무책임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때문에 주양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부동산투기 「의혹」을 받아 경질하려고 해도 후임장관을 제청할 사람이 없어 경질을 못하는 기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엄청난 행정공백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신정부 주요자리가 거의 대부분 호남(MK·목포광주)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정책기획수석실과 경제수석실은 물론 재정경제부에서도 호남출신이 「약진」하고 있다. 『30여년간 지속된 영남정권에서 살아남은 몇몇 호남출신 관료들이 두각을 나타내는것을 보고서야 정권이 바뀌었음을 실감하게 됐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김영삼 전대통령이 취임초기 90%가 넘는 인기를누렸음에도 환란까지 겪고 운동권학생으로부터 체포위협을 받을 정도로 된 것의 근인(根因)은 PK(부산경남)출신위주의 인사정책 때문』(모민간연구소소장)이었다는 지적에 귀기울여야 할 대목이다.미국의 시사주간지인 비즈니스위크는 최근호(3월16일자)에서 「낡은 형식의 정치가 한국을 침몰시킬수 있다」고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부실기업을 지원하는데 돈을 모두 써 우량기업이 무너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로인해 경제침체위기가 닥치고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외국언론의 시각은 김대통령이 당선자로 있던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것이다. 김대통령이 위기의식을 갖고 문제해결에 나섰던 과거의 모습과는 달리 공동정권이라는 「생태적한계」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지적이기도 하다.김대통령의 말대로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각한경제 환란(換亂)이 올지도 모른다. 정치권의 신선놀음(권력분점투쟁)속에 행정공백이 계속될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고통분담을 내세워 근로자들에게만 정리해고나 급여삭감을 요청하고 정치권은 변하지 않으면 경제공황에 빠져 초가삼간이 다 타고 말 것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