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적인 시민운동 단체인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지난 14일 서울 정동빌딩 별관 5층에서 사무실 이전식을 가졌다.지난 89년 창립이후 9년간 사용하던 종로 5가의 낡은 사무실을 정리하고 시내 중심의 번듯한 빌딩으로 이사해 행사를 연 것. 경실련은 기념식을 당초 조촐하게 계획했다. 그러나 실제 행사는 본의 아니게 무척 성대해졌다. 참석 인사들의 면면이 행사장을 크게 빛냈기 때문. 김태동 청와대 경제수석, 윤원배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이진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김성훈 농림부장관 등 새정부의 쟁쟁한 경제브레인들이 모두 이날 행사장에 얼굴을 비쳤다.사실 이들은 모두 이른바 「경실련 학파」로 분류되는 재야 학자출신. 새정부의 경제팀에 이들 경실련 출신 교수들이 대거 발탁돼그렇지 않아도 화제다. DJ경제개혁을 이들이 주도할 것이란 관측과함께 이들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있다. 일부에선 경실련이DJ노믹스(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정책)의 메카로 부상했다며 입방아를 찧기도 한다. 물론 경실련 멤버들이 정부에 참여한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에 들어갔던 박세일, 이각범 전 수석, 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 안병영 전 교육부 장관도 원래 경실련에참여했던 교수출신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새정부 출범 초기 주요경제정책 결정 라인에 경실련 학자들이 대거 포진한 것은 이례적인일. 특히 그들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전부터 소위 「DJ노믹스」의 골간을 기초한 경제 브레인들로 알려져 더욱 이목을 집중시키고있다.새정부 경제라인에 진입한 경실련 멤버는 김태동 수석, 윤원배 부위원장, 이진순 원장, 전철환 한은총재, 김성훈 장관 등 모두 5명.이들 중에서도 김수석 윤부위원장 이원장 등 세명은 경실련 창설멤버로 핵심 경실련 사람이다.김수석의 경우 지난 89년 경실련 창설 당시 발기인이었다. 이후 정책연구위원회 토지분과장, 정책연구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경실련을 통해 한국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기 가입반대, 한은 독립등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윤부위원장 역시 경실련 창설 멤버로 정책연구위원장 경제정의연구소장 등을 거치며 정부의 지지부진한 금융개혁 조치에 강한 비판을 제기했었다. 경실련 출신으로 정부의대표적 싱크탱크인 KDI원장에 입성, 화제를 모았던 이원장도 경실련 출발때부터 참여해 최근까지 경제정의연구소장을 맡아왔다.또 농림부 장관으로 새정부 첫내각에 입각한 김성훈 장관은 경실련창설 멤버는 아니었지만 90년말부터 참여, UR(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 쌀개방 반대에 적극 앞장섰던 사람. 충남대 교수에서 한은총재로 발탁된 전철환 총재도 경실련에서 지도위원을 맡으며 다른 학자들과 호흡을 같이 했던 인물이다.이들은 대부분 지난 92년과 작년 대선때 김대중 후보에게 직간접적으로 정책자문을 해주며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경실련 출신 학자 5인방이 청와대 내각 한은 금감위 KDI 등 경제정책결정의 핵심 내지 중심권에 각각 한명씩 골고루 자리를 잡은 셈.이제 관심은 과연 경실련 참여 당시 이들의 철학이나 주장이 현실정책에 어느정도 조화돼 반영될지에 쏠린다. 경실련쪽 학자들이 경제를 보는 시각은 그동안 정부정책을 주도했던 기존의 제도권 이코노미스트들과는 분명히 달랐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들을 제도권과 비제도권으로 편 가르는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KDI를중심으로 한 기존의 제도권 이코노미스트들이 자유시장경제에 대한신뢰를 바탕으로 효율성을 중시했다면 경실련 참여 학자들은 경제정의를 위한 분배와 형평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한KDI 연구위원)◆ 효율보다 형평성에 관심단적인 예가 땅 문제를 보는 관점. 경실련 출범 직후 김수석과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가 함께 쓴 <땅-투기의 대상인가 삶의 터전인가 designtimesp=7731>라는 책은 경실련 학자들의 경제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김수석과 이교수는 이 책에서 경제정의를 위해 토지공개념의 확대와 보유과세 강화, 토지양도세 감면대상 축소, 토지실명제 확립 등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런 정책대안에선 기존의 제도권 그룹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의 원인에 대한 시각엔 차이가있다. 『경실련 학자들은 한국의 땅 문제는 재벌의 부동산 투기로인해 시장이 왜곡돼 발생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종합토지세를강화하는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땅값을 인하시켜야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KDI 등에선 토지 규제로 인한 공급축소로땅값이 상승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해법도 정부의 시장개입보다는 규제완화를 통한 토지공급 확대에서 찾는게 일반적이다. 양측의정책대안은 비슷할지 몰라도 문제를 보는 각도는 완전히 다르다.』KDI에 오래 몸담았던 손재영 건국대 교수의 설명이다.물론 그동안 재야에서 목청만 높였던 경실련 학자들이 제도권에 진입함으로써 정부 정책에 균형이 잡힐 것이란 기대를 하는 사람도적지 않다. 그동안 효율과 성장 일변도의 경제정책에 형평과 정의라는 요소가 가미될 수 있다는 것. 이는 김대통령이 강조하는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조화와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균형을 이뤄야할 한쪽 저울 추(錘)는 자칫하면 마찰과 갈등의원인이 될 소지도 있다. 새정부 경제팀의 인적구성이 보수에서 개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로 채워졌다는 점도 그런 우려를 자아낸다.과연 경실련 출신 학자들이 정부 경제정책에서 균형의 한쪽 추가될지, 아니면 마찰의 씨앗이 될지는 그들의 제도권 연착륙 여부에달렸다고 볼수 있다.★ 인터뷰 / 유종성 경실련 사무총장『새정부에 과거 관치경제 인물들이 포진한 가운데 경실련 출신 학자들이 주요 포스트에 진출함으로써 그나마 견제와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유종성 경실련 사무총장(42)은 경실련출신 교수들이 새정부에 참여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평가했다.『특히 이번에 정부 경제팀에 들어간 교수들은 모두 경실련 활동을통해 현실 경제문제를 분석하고 정책대안을 고민해온 「준비된 학자」들』이라고 강조했다. 일부에서 경실련 출신 학자들이 너무 급진적이라고 우려하는 데 대해 유사무총장은 『그분들을 잘 모르는사람들이 하는 소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경실련이 그동안 무조건적인 비판만이 아니라 시장원리에 근거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왔다는게 그의 주장. 앞으로도 새정부의 잘못된 정책방향 등에대해선 건전한 비판을 지속하겠다는 유사무총장은 대통령 경제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는 유종근 전북지사의 친동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