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애로호소에 '동문서답'『얼마 전에 노동부가 기업에 대해 30% 이상의 감원은 자제해 달라고 하자 전경련에서 반발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여기서도 드러나듯 정리해고는 한국 기업의 문제다. 그런데 한국인은 정리해고 등의 IMF 고통을 우리 외국 사업가와 연관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정부 발표나 언론을 보면 한국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것같지만 실제로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반 외국인(Anti-foreigner) 감정을 상당히 강하게 느낀다. IMF와 외국 기업은 한국을 도와주고한국에 투자하려 하는데 왜 위기의 주범으로 몰려야 하는가.』지난 3월17일 아침 서울 하얏트호텔 리전시 룸. 산업자원부 주최로11개 정부부처 공무원들이 주한 미국-유럽연합(EU) 기업인 40여명을 초청해 연 간담회에서 아드리안 폰 멩거슨 바스프코리아 사장은마이크를 잡고 한국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이에대해 산업자원부김종갑 국제산업협력심의관이 답변에 나섰다.『새 정권 이후 많이 바뀌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외국인 투자가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고 언론도 정부의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데 적극적이다. 정리해고 문제는 노동부 소관이라서 뭐라고 말하기어렵지만 협조를 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답변이 끝나자 마자 멩거슨 사장은 다시 일어났다. 『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해 얘기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행사 진행 관계상 멩거슨 사장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멩거슨 사장은 잠시 후 기자들에게 다가와 『상당수 한국인이 정리해고를 외국 기업만이 요구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에 대해 지적했는데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동문서답만했다.』고 하소연했다.한국 정부가 외국인들의 불만을 직접 듣겠다며 개최한 이날 간담회는 외국 기업인들의 한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정부의 안이한 자세를 극명하게 보여준 에피소드가 돼 버렸다. 실제로 간담회는 시종 정부측의 동문서답과 『잘 모르는 사안이라서 추후에 서면으로답변하겠다.』 『담당자가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에 의논해알려주겠다.』는 식의 무책임한 발언이 이어지다가 막을 내렸다.멩거슨 바스프코리아 사장의 뒤를 이어 질문에 나선 사람은 김&장법률사무소의 J.Y. 리씨. 리씨는 한국에 파견 근무하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임금을 받을 때 겪는 세금 문제에 대해 물었다. 외국인의근로소득세와 관련된 새로운 규정이 최근 만들어졌는데 부당하다는것이 요지였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 열심히 답변하기시작했다. 그러나 영어가 한국어로, 한국어가 다시 영어로 바뀌면서두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엔 문제가 생겼다. 통역자는 전문용어를잘 이해못한 듯 리씨의 질문을 자기 나름대로 요약했고 그 과정에서 내용을 상당 부분 왜곡했다. 한국말을 잘 하는지 리씨가 통역중간에 한국말로 『그런 뜻이 아니다.』라고 정정할 정도였다. 결국정부측의 최종 답변은 『돌아가서 잘 검토한 후 답변해 주겠다.』는 것이었다.이어 제리 화이트 IDK사장이 『한국 정부가 올 하반기부터 모든공산품에 대한 가격 표시제를 폐지하기로 해놓고 오는 4월1일부터오히려 주류에 대해서는 가격 표시제를 시행하기로 한 것은 앞뒤가맞지 않는다.』며 답변을 요구했다. 국세청에선 『그 문제는 국세청에서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대답했고 재경부 관계자는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종갑 산업자원부 심의관은 『관련 부처와 충분히 협의해 답변해주겠다.』고 밝히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마지막 질문자는 디트마 네거 바이엘코리아 전무. 『화학제품 수입때 수입 추천을 받으려면 영업기밀까지 조합에 신고해야 한다.』며시정을 건의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서로 이 문제가 어느 부처 소관인지 의견을 나누다가 결국엔 또 『관련 부처와 의논해 보겠다.』며 답변을 마쳤다.이런 식의 질문과 답변이 반복되다보니 예정된 2시간은 꽤 지루했다. 정부측은 『각 부처 담당관이 모든 질의 내용을 파악할 수가없다.』며 『앞으로 현안별로 소규모 모임을 활성화해 외국 기업들의 애로 사항을 해결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만5천원씩돈을 내고 간담회에 참석했던 외국 사업가들의 표정은 떨떠름해 보였다. 한 외국인 참석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렇게 내뱉었다.『마치 IMF 한국의 현주소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