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조직 개편 '죽도 밥도 안됐다'『한국이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정부개혁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개혁에 가장 소극적인 데가 정부 부문인 것 같다. 관료들 개개인이 기득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통령이아무리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더라도 한국의 개혁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제임스 루니 쌍용템플턴 투자신탁운용 사장)『기업들은 그래도 자기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그 방향은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관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무얼 해야 하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한 외국인 합작화학회사 수석 부사장)◆ 금정실 축소안 완전 백지화한국 관료들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선은 매우 차갑다. 작년말 대선직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강력한 개혁의지에 고무됐던 외국인들이 다시금 한국 개혁에 고개를 갸우뚱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은관료들의 개혁에 대한 「저항」을 확인하면서부터였다. 대표적인게 정부조직개편 결과다. 당초 야당 대통령이 나와 기존의 정부조직을 가차없이 슬림화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작 결과는 기대 이하라고 외국인들은 입을 모은다.사실이 그랬다. 새정부의 조직개편은 처음에 시끄럽게 외쳤던 작은정부도 못되고 효율성도 살리지 못한 누더기 개편으로 그쳤다는 게일반적 평가다. 외견상 몇개 부처가 없어지고 장차관 자리가 줄어든 것 같지만 정부의 호언과는 거리가 멀었다. 폐지대상이던 해양수산부가 되살아났고 재정경제원도 재정경제부로 이름만 바뀌었을뿐 웬만한 파워는 놓치지 않았다. 1급으로 낮추려던 조달청 산림청병무청 농촌진흥청 등 4개 청장 직급도 차관급을 그대로 유지했다.정부의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두기로 했던 중앙인사위원회 신설은 백지화됐고 기획예산처는 이분화돼 정책결정의 혼선만 야기하게 됐다는 지적을 낳았다.그중에서도 재경부의 파워 존속은 외국인들이 가장 이해를 못하는대목. 정부조직개편의 최대 관심거리였던 구 재경원의 군살빼기는완전 실패했다는게 외국인들의 시각이다. 실제로 조직 대부분이 그대로 살아남고 1급 자리 두개(제1차관보 금융정책실장)가 없어지는대신 차관급 자리(예산청장)가 하나 더 생겼다. 또 예산청을 외청으로 거느리는 외에 금융행정은 물론 세제 물가관리 경제정책기획 국고관리 등 기존의 업무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특히 관치금융의 상징처럼 여겨져온 금융정책실도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당초 대통령직 인수위는 금정실에서 국제금융국을 독립시키고 나머지 2개국은국내금융을 담당하는 1개과로 축소하는 파격적인 방안을 제시했다.그러나 완전 백지화됐다. 재경부는 오히려 내부직제 개편에서 국제금융담당 심의관을 신설하고 과(課)도 하나 더 추가해 금정실을 총2국2심의관 10개과 체제로 확대 개편해 버렸다. 이는 과거 재경원시절과 비교해 과장 자리는 2개 줄었지만 국장급은 1개가 늘어난것.정부가 우여곡절 끝에 공무원 10% 감축(일반 공무원 16만1천8백85명 중 10.9%인 1만7천6백12명을 감원)을 결정했으나 각 부처의「장난」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각 부처에선 할당된 감원 규모에 작년초 세운 기능직 감축인력을 포함시키는 편법 등을 동원했다. 그래서 감원의 칼날은 주로 하위직 기능직에만 집중됐다. 게다가 정부 비대의 대표적 예로 지목돼온 별도정원의 「인공위성」 공무원(97년8월말 현재 중앙부처에만 1천5백여명)은 이번 조정에서 아예 빼버렸다.예컨대 과거 재경원은 직제개편으로 모두 1백6명을 줄여야 했다. 1급 2명, 2~3급 3명, 4급 6명, 5급 41명 등 5급이상 간부 52명이 정리대상. 그러나 재경원 본부에 없는 국내외 파견 공무원은 5급 이상이 무려 1백33명이다. 이들은 이번 감원대상에서 제외됐다. 재경부는 자리가 없는 고위 공무원은 그대로 놔둔채 6급이하 38명, 기능직 16명 등 54명의 하위직을 감축해 전체 감원 숫자를 맞췄다.또 1천7백86명을 감축해야 할 교육부의 경우 실제 본부에서 나가는인원은 46 명뿐이다. 전체 감원대상의 68%를 51개 국립대의 청소경비 운전기사들로 채웠기 때문. 감축대상에 오른 사무직도 여비서등이 대부분이다. 완전히 「눈 가리고 아옹」이다.◆ 개혁은 제쳐 놓고 고스톱이나 쳐이처럼 정부개혁이 죽도 밥도 안된 것은 관료들의 저항이 근본 원인이지만 아직도 정신 못차린 정치권도 일조를 했다. 국회의원들이정부조직개편을 정치적 협상물로 이용하며 관료들의 로비를 반영한탓이다. 정부를 슬림화하려면 국회의원 수부터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런데도 국정은 제쳐 놓은채 의원회관에서 고스톱이나 치고 있는 한국의 국회의원들을 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개혁에도 순서가 필요하다. 그 순서는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책임의 순으로 정해야 한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정치-정부-금융-기업-노동 순이다. 만약 이 순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개혁이더 어려워질 뿐더러 용두사미가 될 게 뻔하다. 순서를 거꾸로 할수록 좋아하는 것은 기득권층이다.』(유승민KDI연구위원) 한국의 개혁이 외국인들 눈에 시원치 않게 보이는 것도 개혁의 순서가 잘못됐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