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들이나 석학들은 지난 수년 동안 앞으로 많은 것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해 왔다. 특히 그들이 예견한 것 중에는 평생직장개념이라는 것도 들어 있었다. 이들은 많은 현상들을 실례로 들어가며 개인의 특정직장에서의 근무기간이 옛날처럼 길지 않으며 이것은 나쁜 소식이라고 주장한다.직장에서의 개인별 근속기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추정은 대개세가지 이유 때문으로 풀이된다. 세계화와 기술변화,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완화가 그것들이다. 점점 치열해지는 국제경쟁과 새로운 기술의 빠른 확산 때문에 기업들은 보다 유연한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 법률이 노동력의 구조조정을 손쉽게 허용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기업들이 임직원을 빈번히 해고하면서 대신 일시적이고 부정기적인 인력에 더 많이 의존하는 방법을 채택한다고 불평의 목소리를늘어 놓는 사람들도 있다.그렇지만 이런 우려들이 완전히 타당하지는 않다. 한 직장에서의근무기간이 길지 않다는 사실이 반드시 나쁜 일인 것만은 아니다.이런 풍토하에서는 사람들은 직업을 계속 바꾸는 길을 찾을 것이다.미국의 정책연구소인 고용정책재단이라는 곳에서 최근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부정기적인 직업을 갖고 있는 노동자의 4/5가 거취가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일시적 계약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물론 해고는 노동자들에게 뼈아픈 일이다. 하지만 빈번한 해고 경험으로 인해 사양산업에 속한 쇄퇴기업에서 근무하기 보다는 유망산업에 속하는 성공적인 직장으로 재빨리 옮길 수 있는 안목이 생길 수 있다.여기에다 근속기간에 따라 미국이나 영국같이 규제가 거의 없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떨어트린다는 증거도 없다. 미국 미시건대학의데이빗 뉴마크와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다니엘 폴스키, 그리고 크리스첸슨협회의 다니엘 핸슨이 공동으로 연구한 한 조사는 미국인들이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기간이 지난 80년대 이후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노동자들이 4년후 지금의 직장에서 그대로 근무하고 있을 가능성이 이전보다 약간 늘어난 것으로분석했다.◆ 80년대 이후 근속률 변화 거의 없어그러나 지금의 직장에서 8년동안 근무할 가능성은 이전보다 약간줄어든 것으로 조사했다. 지난 87년 특정한 회사에서 근무하던 노동자의 53.6%가 4년 뒤인 91년에 계속 그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던반면, 91년과 95년 사이의 4년근속비율은 54.45%로 올랐다. 이에반해 8년 근속비율은 83년∼91년 사이에 36.8%이던 것이 87년∼95년 사이에는 34.7%로 떨어졌다.영국에서는 노동자의 직업보유기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브리스털대학 교수인 사이먼 버제스와 헤들리 리즈는 75년부터93년 사이에 1년 미만 기간동안 특정 직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비율이 경제의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됨에 따라 늘어났다줄어들었다 하는 모습을 나타냈지만 뚜렷한 추세를 보여주지는 않았다는 것을 밝혀냈다. 5년 이상 지속된 직업의 경우 특정한 방향으로의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었다.그러나 일부에서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노동력의 노화가 근속기간의 하향추세를 숨기고 있을 것이란 주장을 한다. 즉, 노동자들이사실상은 이전에 비해 한 직장에서 근속하는 기간이 계속 짧아지고있지만 이것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노동력의 평균연령이 늘어나는데다 나이든 노동자들은 직업을 더욱 오래 갖고 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개인별이 아니고 경제전체로 볼 때는 노동자들의 근속기간이 아직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기때문이라는 것도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사례는 비록8년 근속률이 55세 이하에서는 하락했지만 어떤 연령대에서건 4년근속률에서는 중요한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어떤 연령대에서건 근속연수에 별 변화가 없었다. 또다른 전문가들 중에서는 무역과 노동시장이 자유화됨에 따라서 교육을 덜 받고 기술이별로 없는 노동자들은 특히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경우, 근속기간이 아주 짧아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있을 것이다. 미숙련 노동자들이 그때그때 일거리를 찾아서 직장을이리저리 전전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렇지만 실제로는 놀랍게도 예상과는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나고있다. 미국의 연구에서는 4년과 8년근속비율 증가추세가 모두 2년이하로 근속한 사람들의 비율증가보다 높아지고 있다. 지난 87년한 직장에서 2년 이하의 기간동안 근무하고 있던 노동자들의34.6%만이 4년 뒤에 같은 직장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 수치는 91년∼95년 사이에는 39.1%로 늘어났다. 8년 근속비율은 83년∼91년사이의 17.4%에서 87년∼95년 사이에는 20.5%로 크게 올랐다.◆ 규제와 고용상태 불안 상관관계 없어그런데 규제가 없는 노동시장에서의 고용상태가 규제가 심한 곳에서보다 더 불안정한 것이란 추측은 옳은 것일까? 이 가설을 실험하는 것은 통계학자들에게는 별로 내키지 않고 큰 타당성도 없는 일이다. 이 가설의 진위를 알아보려면 노동력에서의 다른 여러 차이점들을 고려하지 않고 노동시장 규제에 관련된 법률의 영향만을 연구대상으로 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이런 함정에도 불구하고 버제스와 리즈는 이탈리아 토리노대학의리아 파셀리와 함께 규제가 덜한 영국과 규제가 심한 이탈리아에서의 직장 근속기간을 비교했다. 이들의 연구결과는 많은 사람들이기대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영국노동자들의 고용상태가 이탈리아 쪽보다 결코 불안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5세 이상인 영국 남성노동자들의 58%가 현재 직장에서 5년 이상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52.3%만이 그런 것으로 나타났다.이 결과는 대부분의 연령대와 거의 전 산업에서도 그대로 들어맞았다. 다만 보다 젊은이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영국의 서비스 업종에서만은 예외로 나타났다.이런 연구들처럼 직장 존속기간의 단축, 혹은 존속기간과 노동시장규제가 별로 관계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니 고용안정에 대한 우려는별로 근거가 없는 것일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근속기간이안정하게 나타났다고 해서 실직에 관한 우려가 높아지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일례로, 노동자들의 안정된 근속기간을 나타내는 수치는스스로 직장을 그만 두는 노동자들이 줄어드는 것 대신 해고된 노동자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은폐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보다 타당성있는 또다른 걱정거리들이 있다. 노동시장의 규제철폐로 인해 계약이나 직업에 대한 공식적인보호를 이전보다 많이 받지 못하는 개인들은 자신의 지위가 취약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 두려움은 노동자가 자신의 직업을 잃는데 따른 대가가 클수록 더 커질 것이다. 미국과 영국에서의 실업구제 방안은 점점 더 노동자들에게 덜 관대하게 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버제스는 결국 실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강도를 높여갈 것이고 임금인상 주장도 자제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따라서 회사는 원가를 절감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종업원들의 근속기간은 길어진 것처럼 보이는데도 노동시장은 보다 더 유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