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양대축인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이 숙명의 한판승부에 들어갔다. 승부처는 기아자동차 인수이다. 지난해 한국 자동차업계의 「빅3」중 하나인 기아자동차가 좌초한 이후 물밑에서 은밀하게 사태추이를 예의주시해오던 삼성과 현대그룹은 최근 정부가 조속처리로입장을 정리하자 기다렸다는 듯 기아인수전에 뛰어들었다.기아인수전은 두 그룹이 70년대 이후 벌여왔던 업종경쟁의 마지막완결편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현대그룹은 삼성의 강점인 금융등 「소프트」한 업종에, 삼성그룹은 현대의 강점인 중공업등 「하드」한 업종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출하며 세를 불려왔다. 결과두 그룹은 비슷한 업종구조를 가지게 됐다.이제는 경제환경이 달라졌다. 과거의 세몰이식 팽창은 하려고 해도할수 없는 상황이 됐고 이제는 기존의 업종을 어떻게 전문화해서살아남느냐는 것이 최대 과제로 등장했을 뿐이다. 이런 경제흐름에서 변수는 다름아닌 기아자동차이다.기아자동차를 누가 인수하느냐에 두 그룹의 명암이 갈린다. 현대가인수할 경우에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굳히는 것과함께 세계 자동차메이커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이렇게 될 경우 삼성자동차는 군소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기아인수전이 서로간에 물러날 수 없는 한판이고 양 그룹이 역량을총동원,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는 것은 다 이런 절박한 이유때문이다.현대그룹이 먼저 선제공격을 하고 나섰다. 현대그룹은 지난 22일「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방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갖춘 자동차업체의 육성은 기존업체의 생산능력증대보다는 기존업체간의 합병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기아자동차인수의사를 공식선언했다.일부에서는 현대의 발표가 있고 난 뒤 삼성견제구용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었으나 일련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기아인수에 대한 의지는확고하다. 기아인수가 정주영그룹명예회장의 지시에 의해서 이뤄진것이나 기아인수팀이 정몽규회장, 박세용종합기획실장 등 그룹내핵심경영진들로 짜여진 것이 이를 잘 반영한다. 현대가 기아인수를 위해서 넘어야 할 벽은 많다.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고 기아인수시 발생할 공정거래법상 독과점금지조항저촉 등이장애요소이다. 인수자금과 관련해서는 별문제가 없다는 것이 현대의 반응이다. 이미 고로제철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자금을 확보했고 부족한 자금은 해외에서 조달하면 기아인수에는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 발전위한 인수돼야공정거래법상 저촉부문도 『한국 자동차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방안이 무엇이냐』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큰 장애요소가 아니라는 것이 현대의 입장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자동차산업이이 지경이 된데는 삼성이 원죄라는 시각이 없지 않다』며 기아자동차 문제는 부실기업 하나 정리한다는데서 벗어나 21세기 한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강화라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삼성그룹은 현대의 선제공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채 조심스런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대의 기아인수 방침에 대한 삼성의 입장은『미국 포드사와의 기술제휴 등을 통해 자동차산업을 적극 육성하는데 주력할 뿐 현재로선 기아 인수전에 뛰어들 의사가 없다』는것이다.삼성의 이같은 입장에는 다분히 복선이 깔려 있다. 먼저 포드와의기술제휴 등에 주력한다는 대목이다. 현재 포드사는 기아자동차의대주주로 기아문제처리와 관련,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따라서 포드와의 협력관계만 원만히 성사시키면 기아인수는 시간문제로 삼성은 내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기아인수 우회전략인 셈이다.「현재로선」기아를 인수할 의사가 없다는 대목도 되새김질을 요구한다. 사실 삼성은 자신들이 기아인수를 전제로 자동차산업 구조조정보고서가 유출돼 당사자인 기아는 물론 기존업체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기아사태에 대한 삼성의 원죄론은 여기서 비롯됐다. 이런 경험이 있는 마당에 또다시 현대의 선제공격에 맞불을 놓으며대응할 경우 기아의 감정만 자극할 뿐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삼성은 하고 있다. 정부의 기아처리방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굳이 맞대응을 해 화를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차원에서 마이동풍식반응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삼성은 이런 내부전략아래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내부적으로는 현대자동차가 기아인수를 했을 때 단점과 삼성이 기아를 인수했을때 장점 등을 분석한 자료를 마련, 언론 및 정부, 채권단을 상대로 우호적인 분위기조성에 총력을 쏟고 있다. 이 여론몰이에는삼성자동차 임원진은 물론 그룹비서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현대가 기아를 인수할 경우에는 차종, 판매조직,연구인력,부품업체등이 중복돼 합병효과가 미흡하나 삼성이 기아를 인수할 경우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삼성측의 입장이다. 자본과 영업력이 강한 삼성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기아의 결합이 한국 자동차산업 발전을위한 해법이라는 것이 삼성의 여론몰이 논리이다.앞으로 기아문제가 매듭되기까지에는 대략 6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의 기아인수 전격선언과 이에 따른 삼성의움직임은 전초전적인 성격이 강하고 본게임은 정부와 채권단에 의한 기아처리방법이 확정된 뒤 벌어질 공산이 크다. 재계관계자들은기아해법이 어느 그룹이 인수하느냐는 차원을 떠나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이라는 큰 방향에서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