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7일 정식 출범한 기획예산위원회.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된 이 위원회 사무실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 경복궁 옆 코오롱 빌딩에 입주해 있다. 청와대와는 걸어서 5분 거리. 당초 과천 정부청사근처의 사무실을 물색했으나 막판에 청와대 근처로 결정됐다.정부 및 산하단체 개혁의 칼자루를 쥔 기획예산위가 청와대 바로옆에 자리잡은 것을 놓고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해석한다. 실제로 김대통령은 ASEM(아시아 유럽정상회의) 참석차 런던 출장중이던 지난 1일에도 김중권 비서실장에게 『주요 공기업 사장에 민간 기업인을 공모하는 방안을강구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공공부문 개혁에 의욕을 보였다. 여기에 힘을 얻어 진념 기획예산위원장도 『공기업을 외국기업에도 팔겠다』『세금을 헛되이 쓰고 있는 정부기관은 과감히 폐지하겠다』는 등 연일 「무시무시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아직 확실한 마스터 플랜은 나오지 않았지만 정부 및 산하단체에조만간 개혁의 태풍이 불어 닥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그개혁 태풍의 중심엔 기획예산위가 서 있다. 뒤에선 대통령이 밀고있고 옆에선 청와대 정책수석실(수석 비서관 강봉균)이 돕고 있다.태풍의 진행속도는 의외로 빠르다. 기획예산위는 정부와 산하단체등 국민 세금을 쓰는 공공기관에 대한 개혁을 일단 올해 안에 마무리지을 예정이다. 특히 4월중엔 1백1개에 달하는 정부 출연기관을정리하고 6월까지 공기업 정부출자기관 등 나머지 산하기관 개혁마스터 플랜을 마련할 방침이다. 그리고 나서 하반기에 지방자치단체와 지방 산하단체를 개혁하고 여력이 있으면 중앙정부의 행정개혁도 함께 단행할 계획. 어떻게 해서든 올해안에 모든 공공부문을한바퀴 돌며 개혁하고 미진한 부분은 내년에 2단계로 시행한다는복안이다.정부가 이렇게 공공부문 개혁을 서두르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부와산하단체가 먼저 개혁하지 않으면서 민간기업이나 금융기관들에만개혁을 강요할 순 없어서다. 게다가 공공부문의 비대와 저효율은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극에 달해 있다. 이런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는 IMF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정부를 재촉하고 있는 셈이다.실제로 소위 정부산하단체로 분류되는 정부관련 기관의 규모는 엄청나다. 기획예산위가 최근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 예산이 직간접적으로 들어가는 산하단체는 총 5백52개. 직원 수만 38만5천5백71명에 이른다. 이들이 한해동안 쓰는 예산은 1백43조1천1백33억원(98년 기준) . 정부예산의 2배 규모다. 그중에서 중앙정부의 예산으로 지원되는 규모가 9조4천5백38억원이나 된다.문제는 이렇게 국민들의 혈세를 쓰는 기관들이 과연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느냐다. 대답은 「결단코 노(No)」다. 감사원은 최근 한국전기통신공사 조폐공사 산업은행 등 18개 공기업이 임금을 편법인상했거나 퇴직금을 과다 지출했다고 공개했다. 이들 기관은 지난93~96년 4년간 임금을 예산편성 지침에 의한 기준인상률(18~24.5%상당)보다 10.3~46.2%씩 초과 인상했다. 또 시간외 수당, 휴일수당,교통비 등을 급여성 인건비로 지급하고 이 초과인상분을 다음해 기준보수액에 반영하는 편법을 동원했다.이뿐 아니다. 주택공사 도로공사 수자원공사 등 건교부 산하 4개공기업은 올해 명예퇴직한 6백62명에게 1인당 평균 2억9천만원씩총 1천9백34억원을 퇴직금으로 지급했다. 이는 일반 공무원의 1.4배에서 2.5배에 이르는 규모다. 정부 예산을 갖다 쓰면서 마치 「눈먼 돈」 만난 듯 펑펑 써댄 것이다. 그것도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데….어쨌든 기획예산위는 『이번엔 그냥 대충 넘어가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다. 그러나 역대 정권들도 초반엔 공공부문에 대해 서슬퍼런 칼을 뽑았었다. 그러다 번번이 용두사미로 끝났다. 이번 정권에선 과연 어떻게 결론날지 두고볼 일이다.